천주교, '탈시설 정책' 허구성 비판 첫 강연
  •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날 전장연은 보도자료를 내고 천주교가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왜곡하고 있다며 활동가 2명이 종탑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의 시설 밖 자유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폄하한 천주교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전장연 / 연합뉴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날 전장연은 보도자료를 내고 천주교가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왜곡하고 있다며 활동가 2명이 종탑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의 시설 밖 자유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폄하한 천주교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전장연 / 연합뉴스
    천주교가 지난달 30일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탈시설 정책의 허구성을 알리는 첫 강연을 열었다. 이날 강연은 천주교 주교회의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하 '전장연'), 민주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이 밀어붙이고 있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허구성을 일반 신도들에게 처음으로 설명하는 자리였다.

    강연을 맡은 이기수 신부(수원교구)는 전 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였으며,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인 중증장애인거주시설 '둘다섯 해누리'의 시설장을 맡았던 천주교 내 장애인 복지 전문가다.

    이 신부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일부 장애인단체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주장하고 있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자립이라는 이름 아래 다수의 발달 장애인을 시설에서 강제 퇴소시키고 있다"며 "가족이나 보호자가 없는 무연고 중증 발달장애인은 퇴소이후 적절한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다 결국 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돼 있는 장애인 가운데 발달 장애인은 전체 10%인 약 25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외부와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으며, 혼자서 먹고 자고 입을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들이다.

    천주교에 따르면,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시절 중증 발달장애인 1200명을 탈시설 정책 시범사업을 명목으로 시설에서 강제 퇴소시켰다.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후, 탈시설 당한 약 700명을 실태조사한 결과, 무려 24명이 사망했다.

    이 신부는 "현재 조사가 안된 500명의 중증장애인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의료지원, 생활지원이 체계화된 시설에서조차 생활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이 시설 밖에서 제대로 지원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셨는데 너무 비통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문재인 정권에서 전장연 등 장애인 인권단체라고 하는 사람들이 중증 발달장애인들을 강제 퇴소시키기 위해 동의서를 위조하고, 의료진의 퇴소 반대 의견 등을 묵살시켜왔다"며 "가족과 당사사의 의사는 철저치 배제한 채 장애인은 시설에 있으면 비정상이고 집에 있으면 정상이라는 단순한 구호로 장애인들을 죽음에 내몰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은 장애 정도에 따라 크게 경증장애인과 중증장애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증장애인은 가족만의 힘으로는 돌보는 것이 불가능해, 그동안 정부가 '중증장애인요양원'을 마련하고 지원해 왔다.

    전장연이 이른바 '수용시설'이라고 악마화하는 것은 사실 장애인요양원, 현재의 '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격은 심한 장애인(과거 1~2등급 중증장애인), 즉 최소한 양다리를 못 쓰거나, 전신마비, 지능이 낮아 정상적인 의사 결정과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 등이다. 이 신부는 "이들 중증 장애인에 비한다면,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등은 거의 비장애인과 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민주당과 전장연 등 일부 장애인 인권단체는 문재인 정권때인 2019년부터 UN장애인권리협약(CRPD)의장애인 탈시설 가이드 라인인 '일반논평 제5호'를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며 '장애인 탈시설'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해 왔다. 문재인 정권의 보건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5년 모든 장애인들을 시설에서 내보낸다는 계획을 수십했다. 하지만 천주교 등 종교단체, 장애인 부모 단체 등을 중심으로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반대가 심해지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년 늦춰 2026년부터 탈시설을 강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인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국제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200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 인권 조약이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협약의 이행 상황을 감독하고 평가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감시기구다. 즉, 'CRPD'은 '규범'이고,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를 감시·감독하는 '기구'다. '탈시설 가이드라인' 자체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발표한 권고적 성격의 지침이다.

    이 신부는 "유엔 CRPD 제19조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게 맞다"며 "다만, 이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선택할 권리, 자립생활에 필요한 지원서비스를 제공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결국, 장애인 본인의 의사와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고, 시설 중심의 생활을 강요하지 않을 의무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며 "탈시설 정책의 핵심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 보장인데, 마치 모든 장애인을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모두 시설에서 내쫒으라고 규정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신부는 "전장연, 민주당, 보건복지부 등은 유엔의 일반논평 가운데 아주 일부의 문구를 선별해서 장애인 탈시설의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며 "일반논평이 곧 국제법이라고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모든 종교단체와 시설 관련자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부는 "허위로 점철된 주장으로 장애인 탈시설을 주장하는 전장연 등 시민단체와 이를 그대로 따르는 민주당과 보건복지부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신부는 장애인 탈시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유럽 14개국을 조사한 결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신부는 "오스트리아, 독일, 덴마크, 프랑스 등 복지 선진국들들은 대부분 다양한 거주시설을 제공하며 탈시설을 전혀 강요하지 않는다"며 "영화관, 수영장, 목공 작업장, 원예센터 등이 함께 하는 지역기반형, 통합형 공동장애인 시설이 다수였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유럽에서는 장애인 시설이 감옥이라면, 자립이 준비되지 않는 주택은 지옥이라고 말한다"며 "장애인의 자립이 목적이라면, 먼저 잘 살 수 있는 기반시설과 공간을 마련하고, 특히 자립할 수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이 신부는 "전장연이나 일부 장애인 인권 단체 등은 천주교가 장애인 시설을 많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장애인 탈시설을 반대한다고 모욕하고 있다"며 "천주교가 완벽하지 않고 잘못도 실수도 많지만, 이 땅에 뿌리 내린 이후 역사속에서 언제나 사회적 약자편을 들었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교회는 그동안 고아원, 나병(현 한센병)환자 시설, 노숙민 쉼터, AIDS 보호소 등 시설이 필요한 분들을 국가와 사회의 도움이 없어도 꿋꿋이 운영하며 약자들을 위해 일해 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신부는 전장연의 혜화동 성당 점거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신부는 "엄혹했던 전두환 군부독재시절에도, 성당은 한번도 군화에 밟히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점거되지 않았다"며 "사회적 약자를 참칭하면서, 성당의 기물을 부수고 들어가 점거하고 있는 전장연은 자신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참칭하는 인권 독재자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교회와 일반 신도들이 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중립'이나 '침묵'으로 일관하면 안 된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앞서 전장연은 앞서 사순절 기간이자 성금요일인 지난달 18일 오후 4시쯤 혜화동 성당 내 폐쇄된 종탑 문을 장비를 사용해 파손한 뒤 십자가에 탈시설 주장 문구를 걸고 종탑에는 탈시설에 대한 요구사항이 적힌 현수막을 설치했다. 또 지난달 24일 수원교구 정자동 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선종을 애도하는 빈소 내부로 들어와 기도 중인 신자들 앞에서 점거시위를 벌이다가 관계자들의 제지로 해산했다.

    이에 대해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는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전장연은 중증발달장애인들을 사업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이권을 탐하고 있다"며 "전장연은 천주교에 대한 만행을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