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가 국가 되기 이전, 이승만이 가장 아낀 노래독립 염원이 가사 속에 영글어 있다'태극기'와 '독립가'를 아끼고 활용한 건국 대통령
  • ▲ 청년 이승만이 배재학당  시절 
직접  작사한   가사 ⓒ 이현표
    ▲ 청년 이승만이 배재학당 시절 직접 작사한 <독립가> 가사 ⓒ 이현표
    청년 이승만의 애창곡은 직접 작사한 <독립가>

    청년 이승만의 애창곡은 무엇이었을까요?
    프란체스카 여사는 남편이 결혼 후 미국에서 동포 아이들과 <아리랑><도라지타령>을 자주 불렀고,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한편, 이승만 박사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멀리 멀리 갔더니> 등의 찬송가들을 애창했다, 혹은 1898년에 손수 지은 신체시 <고목가>(古木歌)가 <애국가><독립가>의 효시(嚆矢)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렇까요?

    이와 관련, 그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승만의 결혼 전 애창곡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직결되므로 상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우선, 여러분을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건축물의 머릿돌을 놓는 행사)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 1896년에 선보인 <독립가>

    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펴낸 영문 월간지 <Korean Repository> (한국휘보) 1896년 11월호는 그날의 행사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1896년 조선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발전 중의 하나는 봄에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독립협회가 창설된 것이다.
    현재 이 클럽은 약 2,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왕세자도
    독립협회에 기꺼이 1,000달러를 기부했다.

    1896년 11월 21일에는 독립문 정초식이 개최되었다.
    그 부지는 조선이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던 문으로 사용되다가 1895년 기둥만 남기고 철거된 ‘영은문’에서 불과 몇 피트 떨어진 곳이다.
    이날 날씨는 좋았고, 청중도 4∼5천 명 정도가 참석했으며, 각국의 외교사절과 민간인들도 참석했다.
    행사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1) 배재학당 학생들의 <죠선가’> 합창
      2) 독립문 머릿돌 설치
      3) 아펜젤러 목사의 기도
      4) 안경수 독립협회 회장의 연설
      5) 한성판윤 이채연의 연설(‘우리의 독립을 영원히 유지할 방법’)
      6) 배재학당 학생들의 <독립가> 합창
      7) 외부대신 이완용의 연설(‘우리나라의 미래’)
      8) 서재필 박사의 연설(‘한국의 외국인들’)
      9) 배재학당 학생들의 <진보가> 합창
    10) 육영공원 학생들의 체조 시범
    11) 다과.”


    이 기사에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당시 배재학당의 학생들이 합창했던 <죠션가> <독립가> <진보가> 세 곡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승만 학생도 참석해서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배재학당은 합창을 위해 가사지(歌詞紙: 노래 가사를 적은 종이)를 인쇄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 ▲ 이승만 대통령의 서예. '자주독립'을 쓴 필체에서 독립을 향한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 이승만 대통령의 서예. '자주독립'을 쓴 필체에서 독립을 향한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 배재학당 졸업식의 이승만 영어연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한지(韓紙)로 만든 한 장짜리 가사지에는 <죠션가> <독립가> <진보가> 등 세 곡의 노래 가사, “만세만세만만세”로 시작되는 ‘환호’, 그리고 배재학당의 구호가 담겨있습니다.
    위 사진은 세 곡 중에서 유일하게 태극기라는 단어가 들어간 <독립가> 가사입니다.

    또한, 이듬해인 1897년 7월 8일에는 배재학당 대학부 학생들이 2년간의 신학문 공부를 마무리하는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태극기와 상록수로 장식된 서울 정동 감리교회에서 치러진 졸업식에는 조선정부 각료 중 한명을 빼고는 모두 참석했으며, 주조선미국공사, 영국총영사 등 약 600여명의 축하객이 모였습니다.

    졸업생 대표는 이승만이었는데, 그는 <The Independence of Korea> (조선의 독립)라는 주제로 영어 연설을 했습니다.
    존스(George Jones) 목사는 <Korean Repository> (한국휘보) 1897년 7월호에 그날 졸업식을 매우 비중 있게 다뤘는데,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오후 3시가 약간 지나, 배재학당 교장 아펜젤러 목사가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는 찬송가를 한글로 부르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졸업식이 시작됐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한문학과 학생 약 50명 중에서 3명이 한문교과서를 암송하는 것이었다.

    이날 메인 프로그램은 영어과 학생들 몫이었다.
    신흥우<Somebody's Mother> (누군가의 어머니: 미국 여류시인 메리 브라인의 시)를 영어로 읊은 다음, 학생들이 노래를 불렀다.
    이어 송언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경기병대의 돌격: 영국 기병대의 러시아 군영 돌파)라는 시를 낭송했다.

    이날 가장 야심찬 프로그램은 이승만의 독창적인 영어 연설이었다.
    이승만 [조선의 독립]이란 주제를 택했는데, 이는 조선 최초의 대학 졸업식에 걸맞은 것이었다.
    그는 국가의 독립만이 이곳에서 교육받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일자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독립이란 진정하고, 영구적이며,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정신을 고취함으로써 전체 졸업식 행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영어 어법은 훌륭했고, 거침없이 감정을 표출했으며, 발음도 분명하고 정확했다.

    행사는 주조선미국공사의 연설, [서구 문명을 동양이 받아들여야 할 시점인가]라는 주제 토론, 배재학당 학생 중 한 명(one of the pupils)이 작사한  <독립가> <Happy Day> 곡조에 맞춰 노래, 서재필의 연설, <조선가> 합창, 리셉션 등 저녁 8시까지 계속되었다.
    이날 학위증은 수여되지 않았으나, 졸업생들은 교장과 교사들의 서명이 담긴 학위증을 조만간 받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1906년 미국 학생행사에 등장한 <독립가>

    배재학당
    학생들은 독립문 정초식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졸업식에서도 <독립가><조선가>를 불렀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존스 목사가 <독립가> 가사를 배재학당 학생 중 한 명이 작사했다면서, 곡조는 <Happy Day>에 따라 불렀다고 기술한 것입니다.
    과연 <독립가>를 작사한 학생은 누구이고, <Happy Day>는 어떤 곡일까요?

    우선, <Happy Day>는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림볼트(Edward F. Rimbault, 1816-1876)가 작곡한 <O Happy Day, That Fixed My Choice> (주의 말씀 받은 그 날)라는 제목의 찬송가입니다.
    그다음, <독립가>의 작사자는 이날 [조선의 독립]이란 주제로 연설했던 이승만 학생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추정할 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배재학당에서 <독립가>를 불렀던 이승만이 10년 후인 1906년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의 학생 신분으로 <독립가>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최근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는 그 감격적인 날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 기사 보기 : <이승만 건국사> ⑨ 미국유학: 7대 독자 잃고···세계 신기록 세우다 (2022.12.20, 인보길 기자)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12/20/2022122000206.html

    “1906년 6월 말, 이승만은 매사추세츠주 노스필드에서 열린 <만국 기독학생 공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조지 워싱턴 대학 대표로 참석했다.
    미국 독립을 기념하는 이 행사에는 각국 깃발이 걸린 홀에 남녀 학생 3,000여 명이 각기 제나라 의상을 입고 연설을 들었으며, 미국 국가와 만세를 불렀다.

    이어서 국가별로 순서에 따라 일어나 경축하는 차례가 되었다.
    일본 학생 4명이 ‘일본 만세’를 부르고, 중국 학생 10여 명이 일어나 국가와 만세를 불렀다.
    그때 이승만이 벌떡 일어나, “나는 한국 학생인데 혼자 경축하겠습니다”라며 무대에 올라 힘차게 <독립가>를 부르고, "대한제국 만만세’, ‘아메리카 만만세’를 각각 세 번씩 불렀고, 청중들은 환호했다.

    이승만은 이날 행사를 편지로 서울에 알렸으며, <제국신문>은 3일 연속 크게 보도했고, <대한매일신보>도 다뤄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손세일 지음, <이승만과 김구>  제2권,  2015. 요약)
  • ■ 8절에 10분 이상이 걸리는 노래

    <독립가>
    는 8절이고, 각각 후렴이 붙어서 전부를 노래하려면, 10분 이상이 소요됩니다. (찬송가 <O Happy Day>는 3절이고 3분 50초) 따라서 독립문 정초식과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학생들은 <독립가>를 외워서 부르지 않고, 가사지를 보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10년 후 이승만은 가사지 없이 <독립가>를 불렀을 텐데, 이는 작사가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끝으로 이승만은 미국에서 1906년 6월 말 <만국 기독학생 공회>에서만 <독립가>를 불렀을까요?
    그는 유학 시절부터 미국 교회를 중심으로 [한국의 독립]에 관해서 수없이 많은 강연을 했습니다.
    따라서 그때마다 태극기를 선양하고 <독립가>도 많이 불렀을 것입니다.

    자,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하며, <O Happy Day, That Fixed My Choice>의 곡조에 맞춰 <독립가> 중 세 개의 절만 불러 봅시다.


    <1절>
    일천팔백 구십칠년 건양원년 십일월에
    아시아주 독립조선 독립문을 새로세(우)네
    (후렴)
    기쁜 날 기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일월같이 빛나도다
    기쁜 날 기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6절> 
    우리 독립 지키려면 충군애국 제일이라
    애국심이 있는 이는 자주독립 잊지 말자
    (후렴)
    기쁜 날 기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일월같이 빛나도다
    기쁜 날 기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8절> 
    태극기를 높이 달고 독립가를 불러보세,
    이천만중 일심으로 승평악을 화답하네.
    (후렴)
    기쁜 날 기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일월같이 빛나도다,
    기쁜 날 기쁜 날 우리나라 독립한 날

    참고로 ‘이천만중 일심으로 승평악을 화답하네’ ‘이천만 민중이 한마음으로 태평성대를 노래 부르네’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