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수신료 분리징수 위한 방송법 개정령안 의결김의철 KBS사장, 여전히 '꼿꼿'…'사퇴불가' 입장 고수KBS 안팎서 "'사태 원흉' 경영진 물러나야" 여론 빗발
  • ▲ 김의철 KBS 사장이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김 사장은 대통령실이 추진 중인 TV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자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김의철 KBS 사장이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김 사장은 대통령실이 추진 중인 TV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자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973년 문화공보부에서 독립,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기관'이 된 KBS가 개국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1994년 도입한 'TV수신료 통합징수 방식'이 30년 만에 사라질 운명에 놓이면서 연간 7000억원에 육박하는 KBS의 수신료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5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에 따르면 그동안 전기요금 납부 청구서에 합산됐던 월 2500원의 수신료가 빠르면 이달 중으로 별도 고지서를 통해 청구될 전망이다.

    '수신료 분리징수'를 못 박은 이 개정안은 차관회의·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치면 유예기간 없이 즉시 공표돼 시행된다.

    KBS는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해 징수하면 징수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징수원 운용에 따른 징수비용이 대폭 늘어 수신료 수입이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수신료 분리징수제가 시행될 경우 KBS가 재정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KBS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까닭에 KBS 직원들은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를 떠나 "수신료 분리징수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편파방송은 국민의 수신료를 도둑질하는 것"


    다만 작금의 위기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선 사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2노조)는 "윤석열 정부가 수신료를 매개로 공영방송을 흔들고 자신들 입맛에 맞는 경영진을 꽂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일종의 '언론탄압'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반면 KBS노동조합(1노조)은 "KBS가 이 같은 위기에 처한 것은 KBS 경영진의 무능·방만경영과 특정 진영에 편향적인 불공정·편파보도가 지속되면서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했기 때문"이라며 KBS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KBS의 '편파방송'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견해는 수신료 분리징수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여당의 시각과도 일치한다.

    앞서 한 달간 온라인상으로 수신료 징수방식에 대한 여론을 수집한 대통령실은 "국민 참여 토론 과정에서 (KBS)방송의 공정성 및 콘텐츠 경쟁력, 방만경영 등의 문제가 지적됐고, KBS를 시청하지 않는 시청자에게 수신료를 강제로 내게 하는 징수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약 97%로 높게 나왔다"며 지난달 5일 전기료에 포함된 수신료를 분리해 징수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

    국민의힘도 사태의 원인을 KBS 내부로 돌리는 모습이다. 박성중·윤두현·홍석준 의원 등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원내대책회의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KBS의 편파방송은 막대한 국민의 수신료를 도둑질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KBS의 공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현행 통합징수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여러 차례 냈다.

    "위기 자초한 김의철 사장 퇴진해야" 사내 여론 빗발

    이처럼 수신료 분리징수제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KBS 안팎의 여론은 사실상 위기의 발단으로 지목된 KBS 경영진의 '책임론'으로 옮아가고 있다.

    전임 양승동 사장 시절부터 KBS의 '편파보도'와 '방만경영'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온 데다, 올해 들어 수신료 분리징수나 폐지 여론이 부쩍 높아졌음에도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시간만 보낸 김의철 KBS 사장의 '무능함'이 분리징수제 도입의 당위성을 제공한 만큼, 사태 해결을 위해선 '원인 제공자'가 먼저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

    앞서 KBS 내 8개 직능단체 중 경영협회·아나운서협회·영상제작협회·기술인협회 등 4개 단체가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 PD협회의 경우 자체 설문조사로 이 같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힌 상태다.

    KBS 기자들 사이에서도 김 사장의 사퇴를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KBS 기자협회가 협회원 504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투표에 참여한 418명(82.9%) 가운데 198명(47.3%)이 현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그런데 KBS 기자협회를 탈퇴한 기자들 중 38명이 같은 기간 별도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사장 퇴진'에 찬성하는 의견을 개진해, 양측의 조사결과를 모두 합하면 총 236명의 KBS 기자들이 김 사장의 사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본사와 계열사를 통틀어 총 1101명의 KBS 직원들도 김 사장의 전면 사퇴를 요구하는 '기명 성명'을 냈다.

    KBS노조원(1노조)들과 현업 방송인들이 연대한 '새로운 KBS를 위한 KBS 직원과 현업방송인 공동투쟁위원회(새KBS공투위)'는 지난달 21일 "KBS 직원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인 결과 총 1101명의 직원들이 김 사장 등 KBS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위기를 자초한 김 사장이 즉각 사퇴하는 것만이 KBS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자 시작점"이라고 주장했다.

    새KBS공투위는 "김 사장의 불공정방송과 무능경영을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은폐·방치했으므로 현 이사진 역시 당연히 총사퇴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경영진과 이사회가 끝내 사퇴하지 않을 경우 공투위 집행부부터 농성, 삭발투쟁에 돌입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KBS 전체 이사(11명) 중 '소수파(현 여권 추천)' 이사들도 발벗고 나섰다. 권순범 전 KBS 정책기획본부장, 김종민 변호사, 이석래 전 KBS 미디어텍 대표이사, 이은수 전 KBS 심의실장 등 4명의 KBS 이사는 지난달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압도적인 여론은 지난 수년간 KBS가 보여준 모습의 결과로, 앞으로 몇 달 동안에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이사회와 집행부의 동반 총사퇴, 이것만이 KBS의 생존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KBS, "자구 노력하겠다"면서 '김의철 거취' 언급 안 해"


    그러나 이 같은 사퇴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김 사장은 "물러날 의사가 없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달 8일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철회하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조건부 사퇴 입장을 밝힌 김 사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 "수신료 분리징수가 철회되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면서도 "현 상태에서 당장 사퇴하는 게 국면 전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가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떼어 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한 당일에도 KBS는 "자구 노력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밝히면서도 경영진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KBS는 5일 오후 배포한 입장문에서 "현재의 상황에까지 이른 배경에는 KBS를 향한 국민 여러분의 지적과 비판이 있었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고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으나, "시행령 개정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많고, 개정 시행령은 수신료 납부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오도할 수 있다"며 일사천리로 수신료 분리징수제가 시행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KBS는 "대통령실 권고안의 근거가 된 온라인 투표 결과의 정당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방통위는 공영방송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령안을 행정절차법상 일반적인 입법예고기간 40일의 1/4에 불과한 10일의 예고만으로 통과시켰다"며 "지난 30년간 적은 비용으로도 가장 효율적으로 대한민국 공영방송을 지탱해 온 재원 조달 체계를,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나 대안 마련도 없이 이처럼 극도로 긴박하게 폐기해야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따져물었다.

    이어 "정부는 시행령 개정 추진 목적이 '국민불편 해소'라고 밝힌 바 있으나, 수신료를 내고 싶지 않은 국민들은 안 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가 생각하는 '국민불편 해소'인가"라고 다그친 KBS는 "방송법에 따라 수신료 납부 의무는 여전하며, 특별부담금인 수신료에 대해 납부 선택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절차가 남아있다"며 "지금이라도 입법예고 기간에 제출된 국민 의견들을 비롯해, 학계와 시민사회, 지역사회 등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우려 의견들을 차분히 경청해달라"고 호소한 KBS는 "공영방송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단기적 극약처방이 아닌 근본적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