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민주주의에 부는 변화의 바람기성정치세력(이스태블리시먼트)에 대한 의미 있는 도전한국은?
  • ▲ 김창준 전 美연방하원의원. ⓒ연합뉴스
    ▲ 김창준 전 美연방하원의원. ⓒ연합뉴스
    공화당 리더십의 역사, 그리고 발전하는 미국 민주주의

    초선의원 시절 주변 공화당 동료의원들에게 늘 듣던 불평이 있다.
    "민주당이 다수당으로 40년간 전권을 휘둘러도, 우리는 그저 멍하니 쳐다 보고 있어야만 한다.
    의정 활동 할 기분 안 난다"

    미국 의회제도는 대한민국과는 달리 다수당이 모든 권한을 갖는다.
    의장부터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
    심지어 소위원회 위원장까지 다수당이 모두 차지하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회처럼 각 당에서 위원장을 배출할 수 없다.

    1992년 11월,
    최초의 한국 출신 미국 연방의회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을 때의 기쁨은 잠시였다.
    1993년 1월 Tom Foley국회의장 앞에서 선서하고 의정 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로 소수당 의원의 설움을 알게 됐다.
    1949년부터 내가 당선되던 1992년까지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공화당은 계속 소수당이었다.
    40년 넘도록 선배의원들은 뭘 했는지 물어봤더니,
    민주당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다 지치면 의원 생활을 그만 둔다고 했다. 

    깅리치의 리더십

    당시 조지아 주 출신 뉴트 깅리치가
    압도적 표차로 당 대표 (Minority Leader)로 당선되자,
    공화당 의원들은 그를 중심으로 반드시 다음 선거에 승리해 다수당이 되자고 뜻을 모았다. 
    깅리치 대표는 뛰어난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화당을 창당한 링컨에 대한 반감으로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이 득세하고 있었던 남부 지역 의원들과 접촉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들 소속이 민주당이지만 사고방식이나 정치철학이 공화당과 비슷,
    명분만 주면 공화당으로 전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다른 한편, 현역 민주당 의원 지역구 중 민주당 지지도가 낮은 곳에 대한 공략을 강화해 나갔다.
    깅리치를 중심으로 공화당은 단단히 단합했다.
    소위 '대국민 계약 법안 (Contract with America)’을 공약헀다.
    공화당을 다수당으로 선택해준다면,
    ▲절세 ▲국가안보 강화 ▲중소기업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10개 법안을 100일 안에 통과 시키겠다는 대(對)국민 약속이다.
    의사당 앞 계단에서 공화당 의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를 발표했다. 

    공화당, 46년만에 다수당 되다

    그 결과 의석 수는 공화당 230 대(對) 민주당 204!
    26석 차이로 46년 만에 공화당이 다수당이 됐다.
    미국 정치사를 뒤바꿔 놓은 역사적 쾌거였다.
    우리 공화당 의원들은 서로를 칭찬하며 46년만에 승리 축제를 즐겼다.
    지도력과 명철한 판단력으로 공화당을 승리로 이끈 깅리치는 하원의장이 됐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제 118대를 맞이한 미 하원 의회에서
    4년만에 다시 공화당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다수당이 됐다.
    이렇게 다수당 자리를 되찾았지만,
    시작은 30여년전과 견주어도 덜하다 하지 못할 만큼 순탄하지 않았다.
    의장 선거서 무려 15번이 넘는 재투표를 거치고 난 후에야
    공화당 케빈 맥카시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의미 있는 도전

    맥카시가 선출되기까지 당내에선 끊임 없는 협상전이 벌어졌다.
    공화당만의 보수적 색깔을 조금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케빈 맥카시는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강경 보수파 의원들의 의견을 들어주어야 했디.
    2년 임기 공화당 주도 하원에서 어떤 의제를 형성하고 어떤 정책을 추구해야 할지도 협상해야 했다.

    직전 하원의장이었던 낸시 펠로시 때 까지만 해도,
    의장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하원을 이끌어 갔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민주적 방법으로 '선(先) 자당 설득 - 후(後) 반대당 협상'을 이끌어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깅리치를 포함 기존 정치인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공화당내 몇몇 세력들(맥카시에 반대한 프리덤 코커스 등)이 분열을 조장하고 당내 단합을 방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보수 언론에서는 오히려,
    이런 진통이 무너진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시 잡아 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118대 하원 출범의 진통은,
    의회의 민주적 운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평소 권력을 행사하던 당내 중진의원들 뿐 아니라 일반(Rank-and-file) 의원들까지도,
    지역 유권자를 대표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의회로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2024년 총선후 한국 의회민주주의는?

    미국 의회정치는,
    이른바 ‘establishment’, 즉 기득권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그들만의 줄다리기를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기득권 세력 중심 정치운영 구조가,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큰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모든 지각 변동에는 흔들림이 수반되듯,
    지금 미국 의회 정치에도 이러한 흔들림이 나타나고 있다.

    더 굳건한 민주주의 기반 정치적 토대가 다시 세워지기 위해,
    이러한 흔들림은 불가피해 보인다.
    의회민주주의 본고장 미국의 정치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다.

    미국 정치 심장에서 한 때의 역사를 함께 했던 나에게,
    이런 변화는 큰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미국의 변화를 보며,
    2024년 총선후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도 변화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