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공기업 임직원·가족 등 조사 대상 수만 명… 셀프 조사로 차명·편법 못 걸러"검찰 수사 대상 중대범죄… 권력에 약한 경찰엔 못 맡겨… 변창흠 면책 의도도 의심"
  •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 소재 토지에 4일 오후 작물들이 매말라 있다. ⓒ권창회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 소재 토지에 4일 오후 작물들이 매말라 있다. ⓒ권창회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의혹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수조사를 지시했지만, 실상은 ‘국토부 셀프 조사’에 불과해서다. 졸속처리에 그칠 것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커지면서 결국 검찰 수사 여부로 눈길이 쏠리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야말로 진정한 부패·경제범죄에 해당하는 중요 범죄라며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 조사에 따른 불신은 우선 정부합동조사단에 수사 권한이 없어 단순 조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시작된다. 게다가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및 가족 등 조사 대상이 수만 명에 이르러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변창흠 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국토부가 조사단에 포함되면서 변 장관 면책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일었다. 

    정부는 지난 7일 열린 부동산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국무총리실 주도로 국토부·행정안전부·경찰청·경기도·인천시가 참여하는 합동조사단을 꾸렸다. 행안부는 각 지방자치단체 총괄이고, 경찰청은 의심내역 조사와 향후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국토부·LH 직원 등 배우자·직계존비속 포함 조사 대상 수만 명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합동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부동산투기가 확인될 경우 수사의뢰·징계조치 등 무관용 하에 조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우선 조사 대상인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및 가족들로부터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를 받아 3기 신도시 토지 소유 여부 확인에 들어갔다. 국토부 직원 4000명, LH 직원 1만 명, 지방 주택 및 도시공사 전 직원, 각 지자체 3기 신도시 담당부서 근무자 등에 더해 이들의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까지 포함하면 조사 대상은 수만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사전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음성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를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신이나 부모·자식이 아닌 친인척, 지인들 명의로 투기한 경우 과연 걸러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8일 통화에서 "비공개정보를 이용한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들의 투기사례는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차명을 이용한 거래는 수면 밑에 잠긴 빙산의 나머지 부분처럼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토부 셀프 조사는 변창흠 면책부 주려는 것"

    변 장관이 수장인 국토부가 조사 주체가 된 것과 관련한 부정적 시각도 있다.  LH 직원들의 투기 당시 사장으로 재임한 변 장관에게 면죄부를 주고 하위 공직자들만 처벌하는 '꼬리 자르기 식' 조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경변) 공동대표인 홍세욱 변호사는 "국토부의 감사에 대한 문제보다 변창흠 장관이 조사에 개입할 우려 등 제 식구 감싸기 감사가 될 가능성이 너무 커 보인다"고 우려했다.

    홍 변호사는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것은 아닐 것'이라며 직원들을 감싼 변 장관의 발언은 이미 국토부 감사의 신뢰를 떨어뜨린 것"이라며 "감사원 감사로 바로 넘어가거나 국회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 ▲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변 장관 책임론을 강조했다. 황 평론가는 "문재인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던 공정과 정의를 깨부수는 사태가 벌어져 국민들이 분노하는 상황에서 변 장관도 분명 책임질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고 즈장했다.

    "국토부는 따지고 보면 LH와 큰집, 작은집 사이인데 '제 식구 감싸기 식' 조사밖에 더 되겠느냐"고 비판한 황 평론가는 "국토부나 LH 등 부동산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건을 크게 벌이지 않고 서둘러 마무리하려 한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응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 불가"

    이와 관련해 여권은 검·경 수사권 조정 때문에 검찰이 조사에 나설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사건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에 한정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행위자의 신분(주체), 범죄 내용상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의 6대 중요 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여론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이번 사건에 검찰이 투입돼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게끔 법·제도가 바뀌어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LH 직원들의 투기의혹은 '경제범죄' '부패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이 직접수사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통화에서 "아직 검·경 수사권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중대범죄가 무엇인지 해석하기 어려운 데다 검찰 수사 범위 규정에 명시된 범죄 분류도 내용이 너무 압축돼 판단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이번 LH 투기 사건처럼 대형범죄 사건이야말로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LH 임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100억원대 투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무상 비밀누설 및 그에 따른 뇌물 등 범죄 정황이 추가로 드러날 소지가 다분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LH 사건은 명백한 중대범죄… 검찰 수사 가능하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인 김태훈 변호사는 "조응천 의원이 검찰 수사권을 너무 좁게 해석한 것 같다"면서 "LH 사건은 명백한 경제범죄이자 부패범죄"라고 일갈했다. 

    김 변호사는 "경찰은 아직까지 이런 대규모 경제범죄 사건을 수사할 경험과 체계가 부족하다"며 "이런 대규모, 조직적으로 벌어진 범죄행위를 검찰이 수사하지 않으면 누가 수사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홍세욱 경변 대표 역시 "중대범죄를 법리적으로 판단할 때 너무 좁게 해석하면 안 된다"면서 "이번 사태를 경제범죄, 부패범죄로 보지 않으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홍 변호사는 "경찰이 아직 이런 거대한 사건을 수사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검찰을 배제하는 것은 수사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국민들의 분노와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검찰을 통한 수사에 나서지 않으면 사건을 적당히 덮으려 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