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 파업 왜 했나" 기자들 불만… '나훈아 KBS 디스 발언'이 달라진 분위기 반영
  • ▲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 화면 캡처. ⓒKBS 제공
    ▲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 화면 캡처. ⓒKBS 제공
    "우리 KBS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 기대하십시오. KBS 거듭날 겁니다."

    "KBS가 거듭날 것"이라는 '가황(歌皇)'의 예언이 실현된 걸까? 양승동 사장 체제 이후 '땡문뉴스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KBS가 현직 장관의 배우자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KBS "강경화 남편, 요트 사러 미국行" 대서특필


    지난 3일 KBS는 요트 구입 차 미국으로 출국하는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를 단독으로 포착해 보도했다.

    아내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코로나19 감염 및 확산을 막기 위해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한 상황이라 현 정권에 큰 부담을 지우는 내용인데다가, 강 장관이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부친이 명망높은 고(故) 강찬선 전 KBS 아나운서실장이라는 점에서 KBS 입장에선 대단히 뼈아픈 보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KBS는 프라임타임인 오후 8시와 9시, 총 3꼭지의 기사를 쏟아내며 이 명예교수의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했다. 이후에도 KBS는 "강 장관 남편의 출국은 국민을 모욕한 것이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야권의 격앙된 반응을 소개하며 비판을 이어갔다.

    통상적으로 KBS 주말 뉴스는 상당수 담당 부장과 팀장 선에서 기사 출고가 이뤄지나, 중요한 사안일 경우 당직 주간을 거쳐 당직 국장이 보도용 큐시트를 사전 점검하는 절차를 거친다. 지난 3일 뉴스9에서 비중있게 다뤄진 이 명예교수의 '출국 뉴스' 역시, 국장 라인의 허락이 떨어져야 보도가 가능한 리포트였다.

    이는 현 정권에 해가 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 KBS '지휘 라인'의 결재를 타고 황금시간대에 방송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경화 남편' 비판‥ 사내 '기류 변화'와 무관치 않아"


    이와 관련, 한 KBS 관계자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줄곧 친정부 성향을 보여온 KBS가 이런 보도를 내보낸 것은 최근 KBS 기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기류 변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젊은 기자들 사이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KBS의 경영 상태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양승동 사장의 신인도는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고, 비판의 칼날이 무뎌진 2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에 대한 불만까지 터져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노조에서 만든 '노보'를 봐도 이같은 사내 여론이 읽힌다"며 "입사 3~4년차 된 2노조 조합원들이 노조집행부와 대담하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새로운 노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작심발언한 내용이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지난 6~7월 2노조가 발행한 노보에는 "최근 들어 노조(2노조)와 회사의 팽팽한 긴장 관계가 허물어진 것 같다"며 "어떨 땐 공영노조(3노조)나 KBS노동조합(1노조)이 더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 같다"는 젊은 조합원들의 성토가 빗발쳤다.

    "노조와 회사, 팽팽한 긴장관계 유지해야"


    A씨는 "노조는 애초부터 회사와는 입장이 다른데, 지금 조합이 실제로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다"며 "정필모 부사장 논란 때는 (2노조가) 왜 우리가 과거에 욕했던 대로 하고 있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B씨는 "예전에는 조합원들이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노조에서 움직여 비판하고 목소리를 냈다면, 지금은 목소리가 최대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나서야 뒤늦게 어쩔 수 없이 나서는 느낌이 강하다"며 "지금은 우리 노조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최대한 공격을 자제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느낌이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보도본부에서도 여러 가지 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계속해서 내부적인 갈등이 있는 상황인데, 노조의 모습은 아예 안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사실 저희끼리는 노조가 지금 뭐 하는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왜 파업을 했으며 노조가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이제는 관성적으로 그냥 한다"고 토로했다.

    "경영진 쇄신 없는 '무늬만 혁신'‥ 노골적 '코드 인사'도 문제"


    C씨는 "파업했던 선배들이 부장이 된 것 자체에 불만은 없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던 분이 갑자기 임원이나 간부로 오는 경우들이 꽤 있었다"며 특정 노조 위주의 '코드 인사' 문제를 꼬집었다.

    '적자 타개'를 위해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밝힌 양승동 사장의 고강도 경영혁신안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한 직원은 "직원을 해고까지 하려는 혁신안을 경영진이 시행하려면 적어도 본인들 자리 정도는 내놓고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KBS를 망쳐버린 무능 경영진으로 기록에 남고 싶지 않다면 모든 걸 걸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또 다른 직원은 "혁신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리더로부터 시작돼야 하는데, 리더인 사장은 경청만 하고 있으니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며 "임원들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없이 직원들에게만 전가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검언유착 오보' '유시민 외압 의혹' 등으로 기자들 불만 팽배"


    이 같은 심상치 않은 사내 분위기를 본지에 전한 KBS 관계자는 "▲타사에 취재 정보를 흘린 사회부장이 부국장급으로 영전하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 마디 했다고 법조팀 해체를 운운하는가 하면 ▲'검언유착 오보'로 신뢰가 생명인 공영방송의 언론보도에 흠이 가도록 만든 지경에도 아무런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 현 경영진과, 이를 비판하지 않는 2노조에 대한 일선 기자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방송사 수장이 경영을 못해 천억씩 적자를 내면 좌파우파를 떠나 누구나 싫어할 수밖에 없다"며 "후배들을 총알받이로 앞세워 회사를 장악하자, 보도 및 경영 개선은 뒷전이고 자리보전에만 힘쓰는 선배들의 모습에 후배들이 염증을 느낀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뉴스의 '비판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일선 기자들의 맹렬한 요구를 보도국 지휘부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요트 여행' 기사의 보도 배경을 추정한 이 관계자는 KBS를 향한 나훈아의 '쓴소리'를 편집없이 내보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나훈아, 5억원 뿌리치고 '노개런티' 선언 '노편집' 당부


    이 관계자는 "최근 '이래선 안되겠다'는 각성의 움직임이 사내에 일고 있고, 나훈아 콘서트를 제작한 제작본부 역시 이 같은 기류를 감지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놓고' KBS의 변화를 촉구한 나훈아의 작심발언이 가감없이 전파를 탈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5억원 정도를 개런티로 받을 수 있는 나훈아가 '노개런티'를 선언하며 '내가 한 말을 자르지 말고 그대로 방영해달라'는 당부를 했기 때문에 제작진이 토씨 하나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을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이나 사실상 'KBS 경영진'을 겨냥한 발언이 고스란히 방영된 것은 CP 이하 직원들의 암묵적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양승동 사장이 영입한 제작본부장, '가황' 작심발언 '無편집'


    지난달 30일 방영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총괄 지휘한 이훈희 KBS 제작2본부장은 2006년 KBS를 퇴사해 유수 예능 프로덕션에서 일하다 지난해 양승동 사장이 야심차게 스카웃한 인물이다. KBS 2TV 간판 예능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 '여걸식스', '뮤직뱅크' 등이 그의 작품이다. 퇴사하기 직전까지 2노조에서 정책실장을 지냈다.

    1993년 KBS 19기로 입사해 장기간 KBS 예능PD로 활동했으나 퇴사 후 SM C&C의 대표를 역임할 정도로 '업계 거물'이 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양 사장이 직접 삼고초려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