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때마다 정신없이 외워대는 것 보면… 정신이 잘못된 것 아닌가 걱정된다"
  • ▲ 2018년 3월 5일 김정은을 찾은 대북특사 일행.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8년 3월 5일 김정은을 찾은 대북특사 일행.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항상 연단이나 촬영기(ENG 카메라)·마이크 앞에만 서면 마치 어린애 같이 천진하고 희망에 부푼 꿈 같은 소리만 토사하고(토해내고) 온갖 잘난 척, 정의로운 척, 원칙적인 척하며 평화의 사도처럼 처신머리 역겹게 하고 돌아가니 그 꼴불견 혼자 보기 아까워 우리 인민들에게도 좀 알리자고 내가 오늘 또 말폭탄을 터뜨리게 된 것이다.”

    사실상 김정은의 권한대행으로 나선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목해 한 말이다. 김여정은 17일 자신 명의의 담화를 통해 문 대통령의 6·15선언 20주년 기념사를 맹비난함과 동시에 “대북특사를 제안하기에 단호히 거절했다”고 선전매체를 통해 폭로했다.

    “문재인, 정의용-서훈 특사 보내고 싶다... 다급하게 통지문"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남조선 당국자가 지난 15일 특사 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하기에 단호히 거절했다”는 김여정의 담화를 전했다.

    통신은 “우리의 초강력 대적 보복공세에 당황망조(唐慌罔措, 당황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모르는 태도)한 남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 특사를 보내고 싶다며, 특사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으로 한다면서 방문 시기는 가장 빠른 일자로, 우리 측이 희망하는 일자를 존중할 것이라고 간청해왔다”고 폭로했다.

    “남측이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다급한 통지문을 보내온 데 대해 김여정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여정은 이어 “남조선 당국이 특사 파견과 같은 비현실적인 제안을 집어들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시늉만 하지 말고 우리를 계속 자극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언동을 엄격히 통제 관리하고 자중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통신은 이어 “남조선 집권자가 위기극복용 특사 파견 놀음에 단단히 재미를 붙이고 걸핏하면 황당무계한 제안을 들이밀고 있는데, 이제 더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 ▲ 2018년 2월 11일 국립중앙극장에서 삼지연 악단 공연 당시 김여정과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8년 2월 11일 국립중앙극장에서 삼지연 악단 공연 당시 김여정과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여정 “문재인의 철면피한 감언이설 듣고 있자니 역겹다”

    김여정은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직접 담화를 내놨다.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역겹다)”는 그의 담화는 철저히 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의 6·15선언 20주년 기념행사 영상 메시지를 언급한 김여정은 “남조선 당국자(문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니 속이 메슥메슥해졌다”고 폄하했다. 

    김여정은 “선언 서명 시 남측 당국자가 착용했던 넥타이까지 빌려 매고 2018년 판문점선언 때 사용했던 연탁(탁자) 앞에 서서 상징성과 의미를 애써 부여한 것 같은데 그 내용은 혐오감을 금할 수 없었다”며 “한마디로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놨다”고 문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문 대통령을 향한 김여정의 폄하와 비난, 모욕은 A4용지 4장 분량에 달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와 대북제재 유지를 모두 문 대통령의 책임으로 미루면서 “반성”을 요구했다.

    또한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과 오그랑수(겉과 속이 다른 말이나 행동으로 나쁜 일을 꾸미거나 남을 속여 넘기려는 수법)를 범벅해 놓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일관돼 있다”거나 “멋쟁이 시늉을 해보느라 따라 읽는 글줄 표현을 다듬는 데 품깨나 넣은 것 같은데, 현 사태의 본질을 도대체 알고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해댔다. 최근 진중권 전 교수가 “A4용지에 써준 대로 읽는다”고 문 대통령을 비판한 것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정신은 잘못된 거 아닌가”

    김여정은 한국이 미국과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거나 “국제사회의 제재 틀 속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한 것도 트집했다. 그러면서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시달리며 오욕과 자멸로 줄달음치고 있는,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는 더이상 남북관계를 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 ▲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참관을 위해 한국에 온 김여정. 심한 다이어트로 해골 같은 모습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참관을 위해 한국에 온 김여정. 심한 다이어트로 해골 같은 모습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어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미련한 주문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연설 때마다 꼭꼭 제 정신없이 외워대고 있는 것을 보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정신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고 문 대통령을 모욕한 뒤 “앞으로 남조선 당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후회와 한탄뿐일 것”이라고 협박했다.

    청와대 “김여정 담화는 몰상식한 행위…강한 유감 표명한다”

    김여정의 이 같은 문 대통령 비난 담화에 청와대는 유감을 표하는 데 그쳤다. 윤도한 청와대 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측은 우리 측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대북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이는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이며 대북특사 파견 제안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이어 “(문 대통령의 6·15선언 기념사를)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며 “이는 그간 남북 정상이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며, 북측의 이러한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더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수석은 앞으로 북한의 행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