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동결·입학금 폐지·강사법 등 '삼중고' 빠진 대학… 교육계 “대안 없이 희생만 강요”
  • ▲ 교육부 전경. ⓒ뉴데일리DB
    ▲ 교육부 전경. ⓒ뉴데일리DB
    등록금 인상 여부가 대학가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학들은 재정난 해소를 위해 10년 넘게 동결했던 등록금 인상 방침을 밝혔지만, 교육당국은 등록금 동결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등록금 인상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교육계는 대학 재정난이 지속될 경우 대학경쟁력과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입학금 폐지와 강사법 도입 등으로 재정 압박의 한계치에 도달한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전국 모든 4년제 대학이 참여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최근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운용방식 개편' 등을 요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 전국 4년제 대학들이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을 겪는다며 정부 지원금을 더 자유롭게 쓰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교협·사총협, 처음으로 등록금 인상 한목소리

    대교협 건의문의 주요 내용은 △대학기본역량진단 개편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운용방식 개편 △국가장학금Ⅱ유형 참여조건 완화 등이다. 교육부의 대학 규제를 철폐해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교협이 각 대학 총장의 동의서를 받아 교육부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4년제 사립대 총장 모임인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사총협)는 지난달 15일 정기총회를 열고 "2020학년도부터 법정 인상률 범위 내에서 등록금 자율책정권을 행사한다"고 결의했다. 사립대 총장들이 등록금 인상에 대한 뜻을 모아 결의문을 내놓은 것도 처음이다.

    사총협은 "지난 10여 년간 등록금 동결정책으로 인해 대학 재정은 황폐화됐고 교육환경은 열악한 상황에 처했다"며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시설 확충과 우수 교원 확보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교육계는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요구가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특히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등록금 의존율이 높아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할 경우 재정적 어려움이 더욱 크다. 게다가 학령인구까지 감소해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수도권 4년제 사립대학 한 관계자는 "반값 등록금과 함께 입학금 폐지와 강사법 도입 등 대학 재정의 씨를 말리는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며 "삼중고를 겪는 국내 대학들은 이제 막다른 길목에 섰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현재로선 법에 정해진 대로 등록금을 인상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며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등록금 의존율이 두 배 더 높은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내년도 등록금이 인상된다면 2008년 국가장학금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12년 만에 오르는 셈이다. 대학 등록금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직전 3개년도 소비자물가상승률 평균의 1.5배 이하 수준에서는 인상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국내 대학들에 등록금 법정 인상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교육부가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대학평가에 등록금 인상을 연계시키기 때문이다.

    사립대 12년 만에 등록금 인상 추진 vs 교육부 '동결'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교육부는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들에 재정지원 선정이나 국가장학금 지급 등에 불이익을 줘왔다"며 "이러한 이유들로 사실상 등록금 인상이 거의 불가능해 대학 등록금은 10년 넘게 동결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4년제 일반대학과 교육대학 196곳 중 올해 등록금을 인상한 학교는 5곳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2023학년도부터는 입학금도 폐지돼 대학의 재정 압박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 입학금 폐지를 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 정부가 2017년 11월 대학·학생·정부 협의체를 통해 입학금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사립대학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교육당국이 대학의 재정난을 해소할 뾰족한 대안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의 희생만 강요한다"고 개탄했다.

    대학들의 호소에도 교육당국은 내년 등록금도 동결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정부의 등록금 부담 완화 노력에도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하는 대학 등록금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등록금 동결정책과 관련해 교육부와 대교협 간 테스크포스를 구성·운영하면서 고등교육재정 확충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규제 완화를 통한 자체 재원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육당국이 등록금 동결에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는 만큼 사립대가 자율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대학의 재정난이 지속될 경우 줄어든 재정만큼 교육의 질이 저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서울 4년제 대학의 교육학과 A교수는 "대학의 재정적자가 악화할수록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며 "교육당국은 대학의 ‘혁신’을 강조하지만, 재정을 확보하지 못하면 교육여건은 점점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