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집사' 김백준 '경도인지장애' 진단… 구속 후 진술내용 바뀌어 신뢰도 의문
  • ▲ 법원. ⓒ박성원 기자
    ▲ 법원. ⓒ박성원 기자
    “검찰이 작성한 조서를 던져버려라.”

    '우리법연구회'를 주도한 이용훈(77) 전 대법원장의 말이다. 2011년 퇴임한 이 전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법원이 주도적으로 형사재판을 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했다. 공판중심주의는 형사소송 절차의 대원칙으로 재판의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키고, 법정에서 형성된 심증만 토대로 사안의 실체를 심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용훈 대법원장, '공판중심주의' 강조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244조 1항(피의자 진술은 조서에 기재돼야 한다)에 따라 조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다. 그러나 법정증거로 사용되는 검찰조서에 대한 신뢰도엔 의구심이 많다. 검찰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맞춰 수사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과거부터 이 같은 문제를 꾸준히 지적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한 ‘핵심 증인’이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MB 집사’로 불렸던 그는 2018년 1월 구속 이후 돌연 입장을 바꿔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검찰은 그의 진술을 근거로 이 전 대통령이 삼성에 다스의 미국 소송비 67억여 원을 대납하게 했다며 이 전 대통령을 뇌물죄로 기소했다. 1심은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 전 대통령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김 전 기획관은 1940년 1월생이다.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이미 79세의 노인(老人)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법원에 제출한 요양급여 내역을 보면 김 전 기획관은 2017년 10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고 구속 전까지 치료받고 있었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의 전 단계로 기억력이나 기타 인지기능의 저하가 뚜렷하게 관측되는 상태다.

    구속 후 돌연 입장 바꾼 김백준…檢 조사 전 '치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의 신빙성 문제를 제기하며 그에 대한 증인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8일 공판에서 증인신문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이 여섯 차례의 소환에도 응하지 않으니 더이상 신문기일을 지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인지장애를 겪는 노인을 상대로 받아낸 검찰의 조서만 믿고 전직 대통령의 혐의를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 대법원장이 퇴임한 지 8년이 지난 2019년에도 공판중심주의 구현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는 것은 지금 형사법정에서 검사는 물론 판사 역시 제 역할을 못한다는 방증이 아닐까. 법원은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아낸 조서가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는 이 전 대법원장의 충고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