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전하는 수용소 참상... 대외적 '평화' 이미지와 무관한 '인권 부재' 여전
  • ▲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혹한 실태를 고발한 그림
    ▲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혹한 실태를 고발한 그림

    지난 8월 30일 미국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북한 함경북도 청진의 정치범 수용소인 '25호 관리소'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된 수감자들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미 국무부가 2017년 발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는 정치범 5000여명이 수감 중이며, 수용소의 면적은 최근 몇 년 새 580㎡에서 1000㎡로 72% 확장됐다고 한다.

    HRNK는 지난 2013년과 2014년에도 고해상도 위성사진 제공업체인 ‘올소스 어낼러시스’가 촬영한 25호 관리소의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수용소가 확장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은 2014년 보고서에서 북한이 현재 4개의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를 운용 중에 있으며, 8만~12만 명을 수감 중이라고 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운영의 형태와 방법, 관리주체에 따라 마을 형태, 교화소 형태,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 당사자만 수용하는 관리소와 가족단위 수용 관리소, 국가안전보위성(국정원 격)이 관리하는 곳과 인민보안부(경찰 격)가 관리하는 곳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완전통제구역’은 사회 정상인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한마디로 공화국 공민권을 완전히 박탈해 주민등록이 말소된 북한 사회의 영구 제명자들이 수감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혁명화구역’은 사회로의 복귀 기회가 주어진 구역으로 간부들이 과오를 범하거나 직무 태만, 및 상부에 대한 교만 등의 이유로 끌려오는 사상개조 구역이다. 이번에 인공위성 사진으로 공개된 청진 25호 수용소는 가족 단위로 수용하는 ‘혁명화구역’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위성사진으로 일부가 공개된 북한의 정치 수용소는 어떤 곳일까. 수감자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김정일, “정치범들은 마음껏 때리고 죽여라” 직접 지시

    "정치범들은 때릴 수도, 사살할 수 있다. 너희 맘대로 할 수 있다." 

    김정일이 정치범 수용소 경비병들에게 하달한 직접 지시다. "도주하는 자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 프로레타리아 독재 맛을 톡톡히 보여줘야 한다." 김일성도 정치범들을 엄격히 처벌할 데 대한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정치범 수용소 경비병 출신 안명철 씨의 증언이다.

    지난 1994년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입국한 안명철 NK워치 대표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함북 종성에 있는 13호 정치범 수용소와 회령의 22호 수용소, 평양시 승호구역에 있는 26호 수용소 등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정치범들이 겪는 참상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다. 그는 탈북 후 출간한 '완전통제구역'이라는 책을 통해 8년간의 정치범 수용소 경험담을 수기로 펴냈다.

    안씨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 경비병들은 정치범들이 도주하거나 반항하면 현장에서 즉결 사살해도 무관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수시로 때려도 된다'고 교육을 받는다. 오히려 정치범들을 때리지 않으면 반역자들을 동정하는 것으로 간주돼 어떤 구실과 트집을 잡아서라도 때려야만 한다. 뿐만 아니다. 수감된 정치범들은 시설 내 의사들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안씨는 자신의 수기에서 의사들의 생체실험을 당한 35명의 수감자를 열거했다.

    25세 수감자 김복남은 평양시 보위원 출신으로 있다가 잡혀들어와 수용소내 의사에게 강제수술을 받아 시각장애자가 됐다. 35세 김경찬의 부친은 인민무력부 장령으로 있다가 잡혀들어와 강제로 맹장수술을 당했다. 이들이 수술을 당하는 이유는 의사들이 수감자들을 상대로 시술을 하면서 수술기법을 익히기 위한 것이다. 경비원들과 간부들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다. 

    돼지 여물통에서 건더기를 건져 먹고, 몰래 풀을 뜯어 먹다가 무장 계호원(경비원)에 걸려 개처럼 매 맞는 정치범들, 배가 고파 소똥 배설물에 소화되지 않은 옥수수알을 물에 가져가 헹궈서 먹는 수감자들의 실상은 알려진 대로다. 여성 수감자들은 간부들의 성 노리개가 되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감자들을 조별로 나누어 다른 조, 다른 수감자들을 상호 감시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일부 수감자들은 경비원과 간부들의 환심을 사거나 수용소 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 동료 수감자들을 경비원들보다 더 포악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때문에 28년간 옥살이

    1975년 13세 나이로 영문도 모르고 북창 18호 관리소로 수감되었다가 28년만인 2002년에 4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수용소를 나오게 된 김혜숙(56)씨는 얼굴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2016년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발간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근무자, 수감자 및 실종자 인명사전’에 따르면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중 연좌제로 잡힌 사람들은 29%에 달한다고 한다. 그 외에 한국행 시도 10.5%, 정치적 불평불만 8.1%, 불법월경 5.7% 순으로 나타났다.

    김 씨는 수용소 수감 후 탄을 캐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친딸을 잡아먹은 여인과 한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친딸을 잡아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너무도 배가 고프고 고기가 먹고 싶어 딸을 잡아 삶았는데 15분 정도 끓이다 보니 엉덩이 부분 살이 익어 소금에 찍어 먹다가 인민반장에게 발각돼 수용소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총살을 당했다는 증언이다.   

    당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에게는 일일 배급량 350g 미만에 염장배추 3줄기, 그리고 얼마간의 소금이 전부였으며 90년대 중·후반 식량난 시기에는 하루 200g만이 배급되었다고 한다. 또한 ‘쥐’와 개구리가 수감자들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고기였다고 수용소 경험자들은 증언했다.

    수용소에서는 탈출자들에 대해 집단 공개처형을 했고 그것을 수감자 전체가 보도록 함으로써 다른 수감자들이 도주할 마음을 함부로 갖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는 고문 유형도 다양했다. ‘펌프훈련 고문'(앉고서기 반복), ‘마구잡이 전신 구타 고문’과 ‘손가락 절단 고문’, ‘불 고문’ 등 야만적인 고문 방법들도 세간에 알려졌다.

    실제로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신동혁(38)씨는 어머니와 형이 도주하다가 잡혔다는 이유로 손발이 묶인 채 ‘불고문’을 당해 아직까지 그 상처가 남아 있기도 하다. 그 후 어머니와 형은 그와 그의 아버지가 보는 자리에서 각각 교수형과 공개총살을 당했다. 

    수감자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법’도 수용소 경험자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그 규정에는 ▲도주할 수 없고 ▲셋 이상 모여 있을 수 없으며 ▲보위 지도원에게 절대복종해야 하고 ▲작업 외에 남녀 간에 접촉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야만적인 강제낙태도 자행 

  • ▲ 지난 2010년 9월 25일, 美 하원 탈북자 청문회에서 탈북자 방미선씨에 의해 최초로 공개된 북한 정치범 수용소 그림
    ▲ 지난 2010년 9월 25일, 美 하원 탈북자 청문회에서 탈북자 방미선씨에 의해 최초로 공개된 북한 정치범 수용소 그림

    지난 2000년 중반에 한국에 입국한 이경숙(54·가명)씨는 2010년 진행된 한 북한인권세미나에서 북한 보위원들에게 강제 낙태를 당한 끔찍한 경험을 증언했다. 1990년대 중반 굶주림으로 온 가족이 모두 굶어죽고 혼자 남겨진 이 씨는 무작정 중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도 인신매매를 당해야 했다. 그 후 남한 사업가를 만나 동거하게 되었는데 임신 8개월 만에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을 당하게 되었다.

    취조 과정에서 이 씨 배 속의 아기가 '남조선 괴뢰도당의 씨'라는 이유로 북한 보위부는 그를 아무런 의료처방 없이 테이블에 강제로 눕히고 의료 도구도 없이 낙태를 시켰다. 

    그 광경을 지켜본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이 씨가 출혈이 심해 얼마 안 가서 죽을 것이라고 여긴 보위원들은 그를 담장 밖으로 버렸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그 지역 마을 사람들이 그를 집에 데려다 목숨을 구해주었고 다시 탈북하게 되었다고 이 씨는 증언했다. 

  • ▲ 탈북자들이 그린 정치범수용소의 참상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 탈북자들이 그린 정치범수용소의 참상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올해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발간한 2018 북한인권백서는 북한에서 인권침해가 가장 빈번하게 가해지는 장소로 ‘보위부 및 안전부 조사 및 구금시설’과 ‘정치범 수용소’, ‘집결소’, ‘교화소’, ‘단련대’를 지목했다. 

    현재 국내외에 알려진 북한 정치범 수용소 경험자 및 관련 증언자들로는 1970년대 중후반 국가정치보위부에 종사했던 강형순 씨와 1960년 초부터 10여 년간 12호 관리소를 드나들었던 보위부 요원 출신 김용준 씨, 1994년까지 북한의 11, 13, 22, 26호 수용소 경비병을 지낸 안명철 씨, 1986년까지 11호 관리소 경비원을 지낸 최동철 씨,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2005년까지 수감되었던 신동혁 씨, 1970년부터 10년 동안 15호 관리소에 수감되었던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친구 김영순 씨, 1977년부터 10년 동안 15호 관리소에 수감되었던 강철환 씨가 있다. 

    또 1989년까지 3년간 15호 관리소에 단독 수감되었던 인혁 씨와 1997년까지 4년간 15호 관리소에 수감됐던 이영국씨, 1994년까지 3년간 18호 관리소에 수감됐던 강명도 씨와 1995년까지 3년간 14호와 18호 수용소에 수감됐던 김용, 1992년까지 5년간 15호 관리소에 수감됐던 김태진, 2003년까지 4년간 같은 수용소에 수감됐던 김수철과 김은철, 그리고 2002년까지 28년간 18호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김혜숙씨 등의 증언도 있다. 이외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가해 및 피해 증언자들이 존재한다.

    2013년 통일연구원은 한 조사를 통해, 평안남도 개천의 14호 관리소에 1만 5천 명, 함경남도 요덕의 15호 관리소에 5만 명, 함경북도 명간의 16호 관리소에 1만 5천 명, 평안남도 북창의 18호 관리소에 1만 9천 명, 함경북도 회령의 22호 관리소에 5만 명, 함경북도 청진의 25호 관리소에 5천 명으로 북한 정치범의 숫자는 모두 15만 4천 명으로 집계했다. 최근 들어 요덕 15호와 회령 22호를 폐쇄하고 타 수용소로 분산 수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5호 수용소가 확장된 원인은 2개의 수용소가 폐쇄되면서 타 수용소 정치범들이 추가로 유입되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재춘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2018 북한인권백서 세미나’에서 “올해 들어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상 최초의 미북정상회담으로 북핵문제해결과 함께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커져가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북한인권’이라는 말조차 금기시되는 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간 교류 협력에 대한 홍보는 언론매체에 넘쳐나고 있지만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해졌다”면서 “당분간 이런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