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의사에게 '비도덕' 낙인 찍었다"... 산부인과의사회 연일 회견·성명
  • ▲ 지난 28일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 지난 28일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낙태 시술' 의사를 처벌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시술 거부'로 대응하며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의사들의 거센 반발에 정부는 해당 방침을 유예하기로 했지만, 의사들은 "처벌 방침 자체가 문제"라고 맞서면서 정부와 의료계 갈등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30일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산의회·회장 김동석)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한시적 유예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며 "정부가 여성과 의사에게 '비도덕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불명예를 용납할 수 없고, 생존이 불가능한 무뇌아조차 수술을 못하게 만든 45년 전의 모자보건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의회는 "그간 사문화된 법의 방조로 여성과 의사는 잠재적 범죄자가 돼왔고, 더이상 의사만의 책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며 "정부는 이제라도 현실적이고 의학적 근거가 충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17일 보건복지부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시술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규칙을 공포한 것이 갈등의 발단이 됐다. 이날 복지부가 발표한 '비도덕적 진료행위 개정안'에는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의사에게 자격정지 1개월의 처벌을 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결정에 의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산의회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 수술을 전면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들이 초강경 대응에 나서자, 같은 날 복지부는 "헌재 판단이 나올 때까지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요지부동이다.

    산의회는 30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의사들에게 구체적 대처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일시방편으로 처벌을 유예하고 오히려 국민 건강을 볼모로 삼으려 한다면 (여전히) 인공임신중절수술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낙태 시술' 의사 처벌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 쟁점인 형법 제270조는 '의사·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정부 방침의 법적 근거가 되는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고 있다.

    산의회가 낙태 수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낙태 시술 의사 처벌을 명시한 형법 제270조와 관련된 '모자보건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는 헌법 제270조에 저촉되지 않고 낙태 수술이 가능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된 경우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및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등이다. 

    이 경우, 유전학적 장애 및 전염성 질환은 낙태가 허용되는데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기형아로 확인된 태아의 경우 낙태가 불가능하다는 모순이 생긴다.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산의회는 "45년 전(1973년) 개정된 모자보건법 제14조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모자보건법 14조는)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법이었는데, 이제와서 처벌하겠다고 하니 법을 제대로 만들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것은 그대로 두고, 단지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만 처분을 유예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현실적으로 영업정지의 부담을 안고 낙태 시술에 나설 의사도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1개월 정지 처벌을 받는 순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수술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며 "환자가 당장 낙태 수술하러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 실태조사를 발표한 2005년과 2010년에는 각각 34만2천 건, 16만8천 건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산의회는 한국 일평균 낙태 수술 건수를 약 3천 건으로 추정했다. 이는 연평균 100만 건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 조사와 차이가 매우 크다.

    이와 관련, 지난 5월 복지부는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약 8년 만에 인공임신중절수술 실태조사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10월 발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