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김정은 협상에 하늘에서 경고!"노벨 평화상 탐내면 또 미국이 피 흘린다"
  • ▲ 6.25때 통일을 앞둔 1950년 10월 일방 침략한 중국 공산군이 서울 중앙청을 점령하여 환호하고 있다. 두번째로 서울이 함락되자 전시민이 '1.4후퇴'에 나섰다.(1954년 1월4일)
    ▲ 6.25때 통일을 앞둔 1950년 10월 일방 침략한 중국 공산군이 서울 중앙청을 점령하여 환호하고 있다. 두번째로 서울이 함락되자 전시민이 '1.4후퇴'에 나섰다.(1954년 1월4일)
    적과 강대국의 도박판에 국가 운명을 내맡긴 나라...
    인 보길 /뉴데일리 회장, 이승만포럼 대표

    “미국이 내 말을 안 들어서 전쟁 났다. 당장 달려와 이 나라를 구하라!”
    6.25침략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대통령이 도쿄의 맥아더 장군을 깨워 호통친 첫 마디 말이다.
    미국이 이승만의 무슨 말을 안 들어서 전쟁이 일어났던가?
    바로 한미동맹을 말한다. 이승만은 건국과 동시에 한미방위조약을 맺어 미군을 주둔시키고 한국군을 무장시켜달라고 수없이 요청했다. 그때 미국대통령 트루먼은 “무기타령 그만하고 경제걱정이나 하라”면서 주한미군을 몽땅 철수해버렸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즉각 전면남침을 감행하였다.

  • ▲ 2018년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포옹한 문재인-김정은 남북수뇌.
    ▲ 2018년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포옹한 문재인-김정은 남북수뇌.
    김일성의 적화전략 평화협상, 핵개발로 순서만 바꾸다

    ◆ 얼마전 ‘판문점 선언’에서 김정은과 평화협정을 맺겠다고 약속한 한국정부는 “김정은이 미군철수를 말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휴전직후부터 시작한 평화통일 공세, 그리고 월남 패망후 본격화한 ‘핵개발-평화협정’ 전략의 목표가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의 파기, 대한민국 흡수통일임은 상식중의 상식이다. 좌파정권의 ‘퍼주기’에 힘입어 핵개발에 성공한 김씨왕조의 핵협박은 이제 ‘비핵화=평화’ 등식을 내세워 적화통일전술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즉 ‘선(先)평화협정 후(後)미군철수‘가 그것, 김정은이 미군철수를 먼저 입 밖에 낼 필요가 없는 이유다. 우리가 알면서 속는다면 속는 자는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고나 할까.
  • ▲ 독립협회 청년 지도자로서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다가 반역죄로 몰려 투옥된 24세 이승만. 종신형 죄수 복장.(자료사진)
    ▲ 독립협회 청년 지도자로서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다가 반역죄로 몰려 투옥된 24세 이승만. 종신형 죄수 복장.(자료사진)
    20대 감옥에서 발상한 '지미-용미 독립전략'

    ◆ 건국대통령 이승만에게 ’대한민국 건국‘과 ’한미동맹‘은 동전의 앞뒤, 하나의 단어요 하나의 사명이었다. 한미동맹은 건국기 분단 때문에 갑자기 필요해진 돌발 구상이 아니다. 38선 분단보다 꼭 50년 전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자유의 신천지 미국‘을 발견한 순간, 20세 선비  이승만은 자유민주 공화주의자로 변신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겪으면서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조선왕국을 재건해야할 개혁운동가에게 미국은 새로운 독립국가의 모델, 그의 지미(知美) 친미(親美) 용미(用美) 전략이 그때 태어났다. 특히 한성감옥에서 사형수가 체험한 기독교의 ’성령 감화‘--“나는 그 순간 온전히 딴사람이 되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성령의 불길은 이승만의 자유민주공화국 독립구상을 ’하나님의 사명‘으로 지져버렸고, 타고난 천재성의 열정과  함께 불굴의 신념으로 융합된 영성(靈性) 파워는 평생 새 역사를 창조하는 영적(靈的) 에너지를 쏟아 붓게 된다. 미리 보고 넓게 보고 깊이 보고 멀리 보는 특유의 통찰력과 예지력과 영적 결단력이 지미-용미의 용광로에서 대한민국을 빚어내고 한미동맹이란 철벽을 구축하였다.이 독특한 영적 리더십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고집쟁이-독재자‘로 쉽게 비난한다.

  • ▲ 이승만은 미국 유학 5년만에 조지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 대학 석사에 이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1910년 8월 '미국의 힘에 의한 중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도 국제법 분야가 독립되어있지 않았던 때 주목받은 이 연구 논문은 프린스턴대학에서 출판하였다. 사진은 출파된 논문 표지.
    ▲ 이승만은 미국 유학 5년만에 조지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 대학 석사에 이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1910년 8월 '미국의 힘에 의한 중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도 국제법 분야가 독립되어있지 않았던 때 주목받은 이 연구 논문은 프린스턴대학에서 출판하였다. 사진은 출파된 논문 표지.
    국제법 박사 논문: 미국의 힘을 이용한 건국전략의 기초연구

    ◆ “국민들이 기독교 정신을 제대로 익히면 기독교 최강국 미국보다 더 월등한 나라 만들 수 있다.”고 그가 결론지은 옥중저서 [독립정신]--이 책엔 지금 보아도 놀랍도록 오늘의 대한민국 청사진이 고스란히 그려져있다. 이승만은 이 책에 쓴대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나라를 세웠으며 그가 ’독립정신 실천 6대강령‘으로 열거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통상수출입국 등 현대국가와 국민상을 만들어내고자 공산당과 싸우고 미국과 싸우고 국내정치판과 싸웠다.
    그가 최초로 ’한민동맹 구상‘을 검증하려고 시도한 것은 유학시절 프린스턴대학 박사학위 논문 ’Neutrality as Influenced by United States’(미국에 힘입은 중립)에서다. 18세기이래 100년간 미국의 영향력아래 자유통상과 독립유지, 영토수호 사례를 분석한 이승만은 “미국의 힘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단언한다. 당시 미국에서도 유례없는 국제법 연구서로 박수받은 논문은 책으로 출판되고, 이승만은 “미국의 힘을 이용한 독립” 전략에 자신감을 얻는다.

  • ▲ 전국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반공포로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나왔다. (1953.6.19)
    ▲ 전국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반공포로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나왔다. (1953.6.19)
    미국의 몇차례 살해협박과 싸워 이기다

    ◆ 이승만은 해방전에 미국에서 대한민국 헌법 초안과 한미동맹 구상을 문서로 준비해놓았다.
    6.25전 한미방위조약 체결에 실패한 뒤 6.25전쟁이 나자 전시작전권을 미군에 이양한 것은 한미군사동맹을 위한 첫 포석이다. 빈약한 한국군이 미군의 선진적 무기-전술-군인정신 등 전쟁훈련을 통하여 뒷날 막대한 군사원조를 따내 20개사단을 구축하는 1석3조의 기초가 되었으며, 한미동맹의 군사적 파트너십을 닦았던 것이다. 
    이때, 미국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을 여러번 ‘없애려’ 하였다. 미국 기록에서 2건만 보자.
    부산정치파동=“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전국민과 더불어 ‘분단 휴전’을 결사반대한 이승만은 “일방적 휴전은 대한민국에 사형선고”라며, 한미동맹은 휴전과 별개로 즉시 체결하자고 요구하였다. 미국은 ‘이승만 제거’ 작전(Ever-ready Plan)을 꾸민다. 이승만을 감금(또는 암살)하고 ‘미국말 잘 듣는 사람’을 골라 국회간접선거로 대통령을 교체하는 작전, ‘미국말 잘 듣는 정치인’들과 장성 등이 내통-협력하였음은 물론이다. 이를 탐지한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 미국의 음모를 봉쇄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밀어붙인다. 격분한 미국은 우여곡절 끝에 ‘이승만을 대신할 지도자는 없다“는 결론에 따라 내각제를 요구하는 야당을 달래어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생겨난다. 이승만은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총선을 단행,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평생 부르짖었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화 혁명‘에 성공한다(1952.8.5.). 80년대 운동권이 투쟁한 민주화가 직선제 아니던가.
    반공포로 석방=이듬해 6월18일 칠흑같은 밤, 이승만은 전국 포로수용수의 반공포로들을 전격 석방시킨다. 면도하던 처칠이 놀라 턱을 벤 채 ’이승만을 죽여라‘ 외쳐대고, 백악관 아이젠하워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작년에 보류한 그 작전을 발동하자‘며 ”이승만은 공산당보다 나쁜 미국의 적“이라 규탄한다. 이승만은 다시 죽음의 벼랑 끝에 섰다. ”죽이면 죽으리라...자유를 원하는 반공포로 석방이 너무 늦었다. 그들은 우리 국민이므로 내 책임하에 석방하였다. 기독교 국가들이 기독교 정신도 모르느냐“ 세계를 향하여 성명을 발표하였다.
    포로송환문제를 협상하던 판문점 휴전회담은 올스톱, 망연자실한 공산측도 욕설만 퍼부었다.
    미국은 이승만 제거를 또 포기, 서울로 특사를 파견한다. 휴전은 이승만과 미국의 1대1 협상, 대통령 관저 ’경무대 17일간 담판‘(1953.6.25.~7.12)에 마오쩌둥은 ”미국이 허약한 늙은이 하나도 맘대로 못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린다. 진통 끝에 나온 결과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대규모 경제-군사원조이다. 휴전동의를 애걸하는 미국에게 이승만은 “분단을 고착시킬 휴전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행동을 방해하지는 않겠다”는 딱 한줄 각서만 써주었다. 
    휴전협정이 조인(7월27일) 되고 나서, 8월8일 역사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다.

  • ▲ 한국역사상 최초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는 변영태 외무장관(왼쪽)과 미국 덜레스 국무장관. 뒷줄 가운데 서서 지켜보는 이승만 건국대통령.(1953.8.8. 중앙청)
    ▲ 한국역사상 최초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는 변영태 외무장관(왼쪽)과 미국 덜레스 국무장관. 뒷줄 가운데 서서 지켜보는 이승만 건국대통령.(1953.8.8. 중앙청)
    이승만이 구축한 '평화 체제'...모두에게 좋은 '미국의 힘'

    ◆ 흔히들 한미동맹은 이승만의 ‘벼랑끝 외교의 승리’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해방후 3년간 대한민국 건국 투쟁은 그보다 더한 벼랑끝 위기를 수없이 넘겼다. 미국의 좌우합작 압력에다 공산당의 전국파업, 각종 테러, 대구 폭동, 제주4.3폭동에다 김구의 김일성 악수 등등, 만난을 이겨낸 건국대통령 이승만! 독립운동시절 “미국의 힘을 이용해 일본을 물리치고 열강의 침략을 영구 봉쇄”하는 완전독립체제 구상대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어내고야 말았다.
    “이 조약으로 우리 후손은 번영을 누리리라. 북방과 남방의 침략을 길이 막으리라.”
    한미동맹 조인식후 발표한 이 담화문대로 대한민국은 번영의 기적을 낳고 외침 걱정없이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아 산업혁명을 일군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 패망직후 한미동맹을 강화, 나토(NATO) 뺨치는 ‘한미연합사령부’를 만들어 완벽한 안보강국이 되었다. 전시작전권이 기둥인 연합사는 전작권이 빠지면 자동 해체된다. 좌파대통령들이 전작권 회수를 서두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역사의 아이러니—한미동맹은 한국만이 아니라 한국의 적들까지 번영시켜 놓았다. 
    “공산주의는 콜레라...공산당과의 타협은 자살”이라는 기독교적 반공주의자 이승만이 미국의회 연설(1954.7.29)에서 “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하는 한 세계평화는 없다”며 “휴전협정은 무효...당장 한국군이 단독북진하여 중공군을 물리칠 테니 미국은 공군만 지원하라”고 역설하였는데, 그 중국이 지금 한미동맹 덕분에 자칭 G2로 굴기하여 김정은을 앞세우고 대한민국의 생명줄-한미동맹을 끊으려 덤비고 있다. 


  • ▲ 키진저의 제네바 평화협정 직후 공산 월맹군의 남침으로 월남이 패망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 미군 대장이 유사시 미국의 대규모 최신군사력을 총동원 지휘하도록 군사동맹체제를 대폭 강화하였으며, 이후 북한 정권은 미군철수 대신 '전시작전권' 회수를 공작하며 미군철수를 유도하여왔다. 사진은 1978년 11월7일 한미연합사 창설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깃발을 수여하는 장면.
    ▲ 키진저의 제네바 평화협정 직후 공산 월맹군의 남침으로 월남이 패망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 미군 대장이 유사시 미국의 대규모 최신군사력을 총동원 지휘하도록 군사동맹체제를 대폭 강화하였으며, 이후 북한 정권은 미군철수 대신 '전시작전권' 회수를 공작하며 미군철수를 유도하여왔다. 사진은 1978년 11월7일 한미연합사 창설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깃발을 수여하는 장면.
    "평화 속임수로 '평화 체제' 깨면 전쟁난다 "

    ◆ 건국이래 최악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적(敵)은 중국도 북한도 아닌 대한민국 자신이다. 국가의 운명을 적과 강대국의 협상테이블에 자진해서 올려놓고 구경하는 나라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어디 있다던가.
    대한민국 역대정부는 그래서 국가명운이 협상의 떡밥이 되는 상황을 막기위해 국력을 다하여 노려해왔거늘, 좌파정권들이 북핵개발을 국민 몰래 도와준 이후 급기야 한반도 자유통일 국가를 만들자고 명시한 헌법의 생명을 이제 우리 손으로 끊으려 한단말인가?
    이승만은 말하였다. "6.25는 동족상잔이 아니다. 북한의 한줌도 안되는 소련의 괴뢰집단을 남북한 동포가 몰아내려는 자유 전쟁이다. 따라서 자유세계가 달려와 세계의 자유를 지키려 피흘리는 싸움이다"라고.
    그 스탈린의 괴물집단은 이제 대한민국 돈으로 핵무장하여 중국의 앞잡이가 되어 평화협정-체제보장이란 연극으로 '김일성의 유훈'을 완결하고자 위장전술을 총동원하고 있다.
    벼랑끝에 몰린 대한민국 자유국민들은 행여나 행여나 트럼트의 한가닥 선의(善意)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다고 말한다. 변덕쟁이 트럼프는 그러나 'America First'를 부르짖는 미국 대통령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정부에 정 떨어진지 오래다. '군사기지'로서의 유용성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일부 논자들은 그래서 '중국견제의 미국전략'에 기대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러나 오늘의 위기모면에 있지 않고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완전한 독립정신- 한반도 삼천리 자유민주공화국 독립완성에 있는것이다. 이승만을 분단의 원흉이라 누명 씌우던 좌파가 스스로 영구분단-2국 체제를 자청하는 이유가 진정 무엇일 것인가. 
    "미국을 믿지 말라. 강대국을 믿지 말라. 다시는 남의 종이 되지 말자"고 이승만은 외치고 외쳤다.
    "북한과 중국에 공산당이 있는 한 한반도와 아시아와 세계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없다"며 휴전반대-북진통일을 목이 터져라 주장하다가 좌절한 이승만! 그가 죽는 순간까지 걱정하던 상황이 마침내 이렇게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자업자득-자유를 지킬 줄 몰랐던 자유세력의 죄와벌이다.
    6.25때 다 망한 북한을 살려준 바보 미국, 이번에도 ‘비핵화’ 명분의 평화놀음에 춤추며 노벨평화상에 침을 흘릴 것인가.
    “대한민국의 생명줄 한미동맹에 손대지 말라” 하늘의 이승만이 호통치는 소리가 들린다. “또 내말 안듣다가는 미국이 또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것이다."
    새역사의 창조자 이승만의 호통이 혹여 역사의 귀를 뚫는다면 '행운의 반전 드라마'가 시작되는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의 카지노판에 철부지 3대독재자가 완패하는 날이...!



  • ▲ 1945년 해방후 귀국한 이승만 박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외치며 자유단결-자유독립을 초지일관 추진, 김구의 김일성 합작을 반대하며 반공 자유민주공화국을 건국하였다.(자료사진)
    ▲ 1945년 해방후 귀국한 이승만 박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외치며 자유단결-자유독립을 초지일관 추진, 김구의 김일성 합작을 반대하며 반공 자유민주공화국을 건국하였다.(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