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오는데도 3시간반… "교통인프라 정책 내놓아야" 목소리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7일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성산초등학교를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7일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성산초등학교를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강원 홀대에 산신도 마침내 노한 것일까. 대선 막바지에 발생한 영동 지방의 대화재에 대선후보들이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분분히 강릉으로 향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이재민 위로와 형식적인 방문에 그치지 않으려면, 대선후보들이 이번 산불을 계기로 강원 지역의 인프라 개선 및 확충을 위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7일 예정된 영동 지역 유세 계획을 취소하고, 강릉에서 산불 현장을 돌아보며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소방공무원 등을 격려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과 건대입구·잠실야구장 등에서 특유의 도보 '뚜벅이 유세'를 계속할 예정이었지만 모두 취소했다.

    "주민은 물론 소방공무원의 인명 피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국가지도자들이 사고 발생 뒤 얼굴만 내미는 생색내기식 위기 수습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한 안철수 후보는 이날 오전 8시를 전후해 강릉으로 향해 성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를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김경록 대변인은 "성산초에 있는 이재민 대피소를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피해 상황을 경청할 것"이라며 "화재진압 중이라 현장방문이나 상황브리핑을 받는 일정은 현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상황을 엄밀히 파악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상대로 막판 지지 결집을 호소한 뒤, 대전을 거쳐 정치적 연고지인 대구·경북에서 승부수를 띄울 예정이었으나 역시 일정을 취소했다.

    오전 8시를 전후해 서울을 떠나 강릉으로 출발한 유승민 후보 역시 성산초 이재민 대피소를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한 뒤, 오후부터는 예정됐던 대구·포항 지역 유세 일정을 재개할 계획이다.

    유승민 후보는 "국민 여러분께 대선을 이틀 앞두고 각오를 담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 유세를 할 예정이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밤새 불안에 떨었을 강원도 주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현장으로 간다"고 밝혔다.

    강원도 지역구 8석 중 6석을 차지하고 있어, 이 지역에서 정치적 세(勢)가 가장 강한 자유한국당은 강원도당 차원에서의 자체 유세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산불 진화에 자원봉사 형태로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전날 산불 상황을 보고받은 뒤 "강릉 산불이 심상찮다"며 "강원도 당원 동지들은 유세를 중단하고, 강릉 산불 확산 차단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홍준표 후보의 배우자 이순삼 여사는 이날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강릉으로 향했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커다란 천재지변이 나야 비로소 대선후보들이 황망히 강릉을 찾는 현상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7일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성산초등학교를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7일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성산초등학교를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공식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지난달 17일부터 지난 4일까지 수도권은 18회 방문한 반면 강원도와 제주도는 단 1회를 찾는데 그쳤다. 강원도의 인구가 160만 명에 달하고, 춘천·원주·강릉이라는, 생활권과 문화권을 달리하는 3개의 축이 있는데, 인구 60만 제주도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홀대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다른 후보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같은 기간 수도권을 19회, 영남권을 13회 찾았지만, 강원도는 1회 방문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수도권 14회, 영남권 9회, 호남권을 5회 찾았지만, 강원도는 역시 1회에 그쳤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수도권 17회, 영남권 11회를 찾은 반면 강원도 방문은 1회였다.

    대선후보들의 동선을 볼 때, 강원도는 제주도와 함께 1회 '생색내기'용으로 가는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이러니 충청도는 푸대접, 강원도는 무대접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이 권역에서 차기 정부 임기 중 최대의 국제적 행사가 될 평창동계올림픽이 바로 내년에 열리는데도 이 모양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오히려 올림픽 때문에 대선후보들이 평창에서 올림픽 준비 상황 보고만 받은 뒤 '강원도를 다녀왔다'면서 끝내는 경향이 심해졌다"며 "올림픽이 열리는 원주~평창 축선은 그렇다쳐도, 춘천과 영동 지방의 홀대감은 더욱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대선후보들도 이날 급히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강릉으로 향하면서 느꼈을 것이다. 대선후보들은 오전 8시 30분을 전후해 서울을 출발했지만, 강릉에는 11시 무렵에나 도착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급히 가려는데도 3시간 30분이 걸리는 곳이 있구나'라는 점을 절감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먼 부산이라고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KTX와 SRT가 있고, 항공편으로 더 빨리 갈 수도 있다. 강원도의 교통인프라 미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인 것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 선거일 이틀 전에 벌어진 산불 화재를 계기로 대선후보들이 강원도 정책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며 △원주강릉선 조속 운행 개시 △동서고속화철도 춘천속초선 차기 정부 임기내 완공 △동해중부선 삼척포항구간 조기 착공 등을 제시했다.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경강선 고속철도는 동계올림픽을 앞둔 올 연말 운행이 시작될 예정이지만, 단축할 수 있다면 추석 연휴부터라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속초 방면으로는 현재 춘천까지만 복선철도가 연결돼 있지만, 이를 영동 속초까지 연장하는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춘천속초선은 아직 착공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예정으로도 2024년에야 개통되는 것으로 돼 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차기 정부 임기 5년 내에 개통하도록 단축해야 한다"며 "단선철도로 계획돼 있는데, 속초 관광 수요 증가 등으로 선로용량 부족이 뻔하니, 애초부터 복선으로 건설하거나 노반·터널 등을 복선 전제로 건설해 장차 확장이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횡단축 2개를 조기 완공하는 것에 대해, 국토를 종단하는 강릉~포항 연결의 동해선 철도도 완공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강릉과 포항을 연결하는 동해선 철도는 일제가 공사까지 하고 있었는데, 해방을 맞이한지 70년이 넘도록 완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지역민의 한이자 겨레의 수치"라며 "비단 강원도 뿐만 아니라 경북 울진·영덕 등 철도에 연결되지 않는 군(郡)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