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일체론' 더는 안된다지만…누가 호남민심 돌릴 수 있을까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하는 모습.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하나라는 당청일체론을 펴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하는 모습.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하나라는 당청일체론을 펴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앞둔 가운데,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정치인생의 기로에 섰다.

    당·청 일체론에 따라 이 대표가 최순실 사태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불모지로 불리는 호남과 거리를 좁힐 기회를 잃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1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4일 내로 의원총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황영철 의원은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왔다"면서 "본인은 오는 2일에는 수술일정으로 안되고 이번 주까지 의원총회 일정을 잡아보겠다 한다"고 전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현재 담석 수술을 하면서 집어넣은 관을 빼내기 위해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의원은 "진통제를 맞으면서 일정을 잡겠다"며 정 원내대표의 의총 소집 의지를 전했다.

    만일 의원총회가 소집된다면, 이 자리는 친박과 비박 간 충돌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31일, 당내 비박계 의원 모임에서 당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연판장에 서명 의사를 밝힌 의원들이 50여 명에 이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현재 의석이 129석임을 감안 할 때 적은 숫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 지도부에서도 이미 김종석 여의도 연구원장, 김현아 대변인이 그만두면서 공백이 발생한 상태다.

    이들은 1일에도 모임을 하고 단일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황영철 의원은 "이 자리에 있는 3선 이상 의원들은 한 명의 이탈도 없이 다시 한 번 현 지도부의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하기로 입장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정현 대표가) 끝까지 사퇴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아주 심각한 논의들을 더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압박을 가했다.

    비박계는 비난의 화살을 이정현 대표에 집중시키고 있다. 그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명분은 이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당·청 일체론'을 펴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8·9 전당대회 당시 본인이 원활한 당·청 소통의 적임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평소 "청와대와 당이 수레의 양 바퀴처럼 같이 굴러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의 말대로, 청와대가 최대 위기를 맞으며 국정 동력을 상실하자 그의 당 대표직도 풍전등화의 위기로 다가온 것이다.

    실제로 황영철 의원은 3선 이상 중진의원 모임 직후 취재진을 만나 "비대위 구성 때까지 중간단계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진석 원내대표를 사퇴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사퇴의 대상을 이정현 대표로 한정해 집중사격하는 모양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5월부터 줄곧 "청와대의 주문을 여과 없이 집행하지 않을 것, "청와대 일방적 지시 당이 무조건 따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굳이 계파 간 충돌을 겪으면서까지 이정현 대표를 물러나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정현 대표를 그대로 두는 쪽이 내년 대선에서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초 호남출신이어서 전당대회에서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난 8·9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두며 대표직을 맡게됐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초 호남출신이어서 전당대회에서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난 8·9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두며 대표직을 맡게됐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우선 이정현 대표는 처음부터 '친박 핵심'과 거리가 먼데도, 친박 핵심으로 분류됐다는 설명이 있다.

    사실 이 대표는 8·9 전당대회 레이스 초반에 가장 불리한 후보 중 하나였다. 새누리당의 최대 계파인 친박계로 분류됐지만 끈끈한 조직이 많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에 많은 당원이 몰려있는데, 과연 이 대표가 지역 구도를 넘어서 당선될 수 있겠냐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더군다나 8·9 전당대회 당시에도 4·13 총선 패배에 따른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었다. 4·13 총선 패배의 수습을 위해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마저 계파 갈등으로 권성동 사무총장이 물러나는 등 동력을 잃은 상태였다.

    공천을 놓고는 친박계도 공동의 책임, 혹은 그 이상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 정치권을 떠돌았다. 당시 총선 패배의 책임을 놓고, 특정인을 지목해 "친박의 실세들이 공천을 전횡했다"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이정현 대표는 거기에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연판장이 준비된 현 상황에서도 공개적으로 이정현 대표를 옹호하고 나서는 국회의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진정 '실세'였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계파로만 놓고 보면 이정현 대표를 대신할만한 친박 인사들은 여럿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시각은 야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야당은 이정현 대표를 지칭해 '청와대의 비서', '당무 수석'이라고 비아냥대기 바빴다. 친박의 핵심, 실세로 불린 것은 최순실 사태 이후였다.

    물론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당·청 일체를 강조한 측면은 사실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 편하게 정치생활을 하지 않았다. 소위 '박심'을 등에 업고 기득권을 형성한 사람과는 결이 달랐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부분이 '호남 출마'다. 그는 23년간 당직자 생활을 통해 바닥을 다지며 올라왔고, 그는 수도권 및 서울이 아닌 사지(死地)로 불리는 호남에서 야당 후보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됐다.

    친박이 공천권을 행사하고 그가 기득권을 형성했다면 서울의 여당 세(勢)가 강한 지역에 낙하산으로 공천되는 것도 가능했을 테지만, 그는 재보궐 선거와 4·13 총선을 순천에서 치렀다.

    전당대회에서 뽑힐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데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실제 8·9 전당대회에서 내년 대선에서 호남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고, 부산에서는 "호남이라 서러웠다"고 먼저 눈물겹게 호소하는 노련한 연설을 준비했다.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동원되는 '조직선거'의 모습 재현됐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정현 대표가 가장 많은 표를 획득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단순히 박 대통령과의 관계만으로 이정현 대표를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이정현 대표를 끌어내린다면, 그가 공약한 '호남과의 가교'에는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정운천 의원이 현역 국회의원으로 있기는 하지만 호남에서 국회의원 한 명으로 새누리당이 재보궐 선거와 대선 등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역구도 타파라는 깃발 아래 야권의 TK, PK 정치인이 속속 생겨나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정현 대표는 새누리당에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권 관계자는 "이정현 대표가 임기를 꽉 채우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좀 더 아름답게 물러날 수 있도록 충분한 명분을 당이 제공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뒤집어 얘기하면 청와대가 위기인 지금이 가장 당·청 소통이 중요한 시점인데, 그렇게 보면 이 대표에게는 지금이 리더십을 보여줄 가장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