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때이른 메시지 구두 전달한 정진석의 의도는… '潘, 대권 의지 떠보기?'
  • ▲ 추석 연휴 기간 중 방미해 지난 16일 새벽(한국시각)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회동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방미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추석 연휴 기간 중 방미해 지난 16일 새벽(한국시각)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회동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방미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브라질 나비의 날개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나비 효과'가 정치권에 적용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행한 '날개짓'이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우리나라의 집권여당 내부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와중에 여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권 주자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반기문 총장을 둘러싼 새누리당 구성원들 각자의 셈법이 여과없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반기문 총장에게 경륜과 지혜를 우리나라의 미래 세대를 위해 써주십사 하는 인사를 드렸다"며 "10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금의환향하길 기대한다"고 추석 연휴 기간 중의 방미 성과를 보고했다.

    앞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추석 연휴 기간 중 미국을 방문했다.

    지난 16일 새벽(한국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총장과 회동한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금 우리나라에 반기문 총장의 경륜을 필요로 하는 난제가 많다"며 "소중한 지혜를 미래 세대를 위해 써달라"고 호소해, 대권 도전을 강하게 권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정진석 원내대표는 "결심한대로 하되 이를 악물고 하라"며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혼신을 다해 돕겠다"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메시지를 대신 구두로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내 정치권의 상황과 내년 대선에서 취해야 할 행보와 관련된 의견을 별도로 서류 봉투에 담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JP의 메시지가 구두로 전달됐다는 것이다.

    반기문 총장은 올해 1월 7일 구순(九旬)을 맞이한 JP에게 "지도 편달을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생일 축하 서신을 보냈다. 이에 JP는 친서를 보내 화답했고, 5월에 내한했을 때 JP를 예방한 반기문 총장은 다시 그 이후 외교행낭을 통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감사했다. 귀국한 뒤 다시 찾아뵙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이렇듯 반기문 총장과 JP는 이미 여러 차례 직접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진석 원내대표를 통해 굳이 구두로, 누가 봐도 '지지 선언'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민감한 내용의 메시지를, 그것도 독대(獨對)도 아니고 남들이 듣는 자리에서 전달했다는 셈이 된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JP의 이름을 빌려 반기문 총장의 대권 의지를 확인하려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심한대로 하되 이를 악물고 하라.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혼신을 다해 돕겠다"는 메시지를 순화하면 "대선에 나간다면 열심히 해서 완주하라. 내가 도울 것이 있다면 돕겠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시점에 흔히 있을법한 관례적인 덕담이, 구두 전달 과정에서 약간 '옥타브'를 올리자 졸지에 대선 직전에나 있을 법한 '지지 선언'의 형태로 변모했다.

  • ▲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내년 1월 조기 귀국에 환영 입장을 밝힌 새누리당 조원진 수석최고위원이 이정현 대표와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뒷쪽으로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장우 최고위원도 방미 성과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뉴시스 사진DB
    ▲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내년 1월 조기 귀국에 환영 입장을 밝힌 새누리당 조원진 수석최고위원이 이정현 대표와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뒷쪽으로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장우 최고위원도 방미 성과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뉴시스 사진DB

    거기에 더해 스스로도 "소중한 지혜를 미래 세대를 위해 써달라"고 대권을 권유하고, 정세 분석과 의견을 담은 서류까지 전달했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반기문 총장의 반응을 살펴, 대권 도전의 의지가 확실한지 살피려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8·9 전당대회에서 친박(親朴) 일색으로 지도부가 구성된 상황에서,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 요구 등으로 '현재 권력'과 각을 세운 정진석 원내대표의 입장에서는 '미래 권력'에 예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번 방미 중에 반기문 총장의 대권 의지를 살피는 과정에서 JP의 메시지가 다소 강하게 덧칠돼 구두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추론했다.

    박지원 위원장의 표현에 따르면, 이러한 정진석 원내대표의 강공(强攻)을 접한 반기문 총장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듣고 있더라"고 한다. 우상호 원내대표의 "정진석 원내대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그런 (대권) 행보를 할 것이냐"는 물음에도 소이부답(笑而不答)이었다고 한다.

    정진석 원내대표로서는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노출된 반기문 총장의 '대권 의지'가 당분간 국내 정치권에 후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장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의 반응은 각자의 셈법과 입장에 따라 각양각색이었다. 지난 16일 미국 뉴욕에서의 '소이부답'이 사흘 동안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 집권여당 지도부의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친박 강경파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조원진 수석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반기문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직을 마치고 바로 1월달에 귀국한다는 것은 여당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환영할 일"이라며 "반기문 총장이 와서 국내 정치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반색했다.

    역시 같은 친박 강경파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장우 최고위원도 "요즘 반기문 총장 말이 많이 나오는데, 결국 우리 정치권이 해야할 일은 안보와 민생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심기일전해서 현재 국가적으로 봉착한 일을 잘 마무리하고 반기문 총장이 왔을 때의 일은 그 이후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대표적인 당내파 대권 주자인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강석호 최고위원은 "(반기문 총장 같은) 훌륭한 분이 와서 우리 정치에 보탬이 된다면 좋겠다"면서도 "그런 (대권 관련한) 점에 있어서는 다들 공정·공평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경선을 염두에 둔 견제구를 던졌다.

    아울러 "반기문 총장이 무슨 구세주라도 되는 양 너무 추어올린다면 너무 부끄럽지 않느냐"며 "그런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외(黨外), 국외(國外)에 있는 분의 날개짓 하나에 집권여당 전체가 분분해졌다"며 "당내에 친박~비박을 막론하고 경쟁력 있는 차기 주자가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게 근본 원인이라, 천수답(天水畓) 농사 짓듯 뉴욕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