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금융위기, 대통령의 절박한 외침… 97년 금융개혁법 악몽 재현되나

1997년 IMF 지옥이 한국에 들이닥치기 직전. 태국발 금융위기가 아시아 전체의 외환위기로 몰아치던 그때. 김영삼 정부는 사활을 다해 금융개혁법안 입법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야당은 이 법안을 끝내 막았고, 그로부터 불과 한달만에 IMF 구조조정 결정이 내려졌다.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여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이)금융개혁과 노동개혁을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격렬한 반대로 표류되는 가운데 IMF 위기를 맞이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지금 우리도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이 많이 반대하고 있다"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당시 야당이 끝끝내 법안을 반대하지 않고 통과가 됐다면, 그토록 심각한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담긴 말이었다. 실제로 당시 YS 정부 인사들은 "야당이 물밑으로 법안 통과를 협의했음에도 '표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마지막에 입장을 바꿨다"며 "이 같은 법안 통과 실패가 외국 자본들에게는 '한국이 금융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식으로 비춰졌다"고 회고한다.

역사에 만약(If)은 없다. 당시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실제로 IMF가 오지 않았을지는 알 수 없다. IMF의 책임을 YS나 DJ 한사람에게 돌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당시 표류한 금융개혁법이 담고 있는 내용이 이후 IMF가 제시한 개혁요구 사항과 대부분 일치했다는 것은 지금도 안타까운 점이긴 하다.

하지만 이인제 의원의 말처럼 진짜 문제는 '앞으로'다. 6.25 이후 최악의 국란이라는 IMF가 또 오지 말란 법도 없다.

  •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의 경제법안 직권 상정 요청에 "현재 경제상황을 비상상태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 상정은 국가비상사태에 한해 가능하다.

    정의화 의장은 현재 한국경제가 얼마나 비상상황인지, 그리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얼마나 목메어 외쳤는지 기억하지 못하는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17일 새벽(한국시간) 기준금리를 인상한다. 9년만에 금리인상, 7년만에 0%대였던 '제로(0) 금리' 시대가 끝나는 '긴축 통화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조차도 세계 경제 침체를 견디지 못하고 금리를 올리면 바야흐로 환율 전쟁이 시작된다. 중국(위안)과 일본(엔)의 틈바구니 속에 한국의 원화가치는 끝도 없이 떨어질 것이라는 다급한 진단이 쏟아진다.

    금리와 환율전쟁으로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전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도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성장이 고용을 따라잡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이 모든 경제학자의 일관된 목소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서비스발전기본법도 이 같은 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 산업구조상 새로운 일자리는 서비스업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한 판단에서 나온 법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1,440일 동안 묶여 있는 서비스산업발전법이 1천일 전에 해결됐다면 지금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고 자기 역량을 발휘하면서 활기찬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한창 일 할 수 있는, 그리고 일하고 싶어 하는 이 젊은이들의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인생을 누가 보상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우리 몸의 병을 치료하는 데도 하루아침에 한방에 고쳐지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방법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맞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정부가 내놓은 '경제법안'을 통과시킨다고 단박에 해결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중 FTA를 비준하면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지원기금법을 끼워 넣고, 야당이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요구하는 대리점법 등 '반(反)시장적 악법'을 여야간 '주고받기식'으로 법(法)을 만드는 국회가 계속되는 한 경제위기는 더욱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정의화 의장 같은 안이하고 세계 경제를 바라보지 못하는 한심한 시각은 박 대통령의 말처럼 '국회가 미래세대에 죄를 짓는 것'일 뿐이다.

  • 정 의장은 '선거구획정' 문제는 '직권상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경제법안' 문제는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재경위원을 6년을 했고 또 재경간사, 위원장도 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상당히 어렵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인식 하고 있다"며 자신을 변호하면서도 "현 경제상황이 '비상상태'는 아니다"고 끝내 단정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청와대에 (경제법안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법적 근거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항변했다.

    도대체 정 의장은 '국회의장'이라는 국가 의전서열 2위의 자리에 왜 앉아있는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법은 만드는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에 법률적 근거를 찾아봐달라니. 국회는 법은 만드는 유일한 기관인 동시에 그 법을 만드는데 필요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의 심장부다.

    그런 정치의 심장부의 수장이 언제까지 안이한 태도로 '나는 모른다. 나는 힘이 없다'는 식으로 버틸텐가.

    정의화 국회의장은 YS-DJ 시절 그런 안이하고 한심한 시각이 어떤 결과를 국민에게 안겼는지를 다시한번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