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번 환자 동선까지 공개, 137번 환자 지하철 통근 사실은 뒤늦게 알려
  •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메르스 확산과 관련돼 ‘삼성서울병원 책임론’의 단초가 된 137번 확진자(이 병원 환자 이송 담당 직원)는, 발열과 근육통 등 메르스 의심증상이 발현된 이후에도 9일 동안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공기 중 전파력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라는 점에서, 지역사회로의 무차별 감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서울시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언론에 공개를 하지 않다가, 관할 구청이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리자, 뒤늦게 인정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137번 환자의 지하철 이용 사실을 알고도 이를 먼저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공개해봤자 예방효과가 없고, 공포심만 커진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은 “지금까지 다른 확진 환자들의 이동경로를 봤을 때, 버스나 지하철을 함께 탄 시민 가운데 환자가 발생한 경우는 없었고, (137번 환자가) 이용한 지하철은 병원보다 더 강하게 소독했으니 안심하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시민 공포감 조성 우려를 이유로 137번 환자의 지하철 이용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고 설명했지만, 서울시의 해명은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와 다르다는 점에서 옹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삼성서울병원 근무 중 감염된 35번 확진자(의사)가 들린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 1,565명 전원에 대한 격리 필요성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과잉대응’이 가장 적절한 대응이라며 반론을 일축하고, 참석자 모두에 대한 격리조치를 거듭 강조했다.

    박원순 시장이 4일 심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35번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공개한 뒤, 과도한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도, 박 시장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의 조기 공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은 35번 확진자가 근무한 병원(서울시는 보건복지부가 병원 이름 공개를 결정하기 전까지 '서울 대형병원'이란 표현을 쓰면서, 보건복지부에 해당 병원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언론은 35번 확진자와 관련된 기사에서 삼성서울병원의 실명을 사용하고 있었다)의 이름과, 이 환자에 대한 정보 공개를 정부에 요구하면서,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서울시가 이제 와서 시민의 공포감 조성을 이유로 137번 확진자의 지하철 이동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사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확한 정보 공개가 시민들의 과도한 불안감을 예방할 수 있다며, 35번 확진자가 방문한 상가까지 공개한 박원순 시장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137번 환자에 대한 서울시의 태도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모순은, 박원순 시장이 최근 보여주는 언행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박 시장과 서울시가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먼저 재건축조합 참석자들에 대한 격리 주장이나, 35번 확진자의 이동 동선을 지도까지 사용해 공개한 사실과 관련돼, 이런 행위가 시민들의 공포감을 부추기는데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순서다.

    그래야 시민들의 불안감 조성을 막기 위해, 137번 확진자의 지하철 이동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해명이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137번 환자의 지하철 이동 사실과 관련된 서울시의 해명은, 이 환자가 근무한 병원 비정규직 전부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박원순 시장의 주장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137번 환자가 병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해당 병원 비정규직 2,944명에 대한 메르스 감염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박원순 시장의 비정규직 전수조사 요구는 당장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국내 감염 및 예방의학 전문가 상당수가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다가 격리조치를 당했고, 함께 일하는 간호사 등 의료진들 역시 잇따라 격리처분을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박 시장의 요구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이란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여야를 막론하고 박원순 시장이 최근의 메르스 정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에 고개를 흔드는 정치인은 별로 없다.

    의료계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메르스 공포감을 이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메르스 방역본부장’을 자청하며 정부와 날을 세우는 박원순 시장의 모습은 그만큼 정치적이며 선동적이다.

    137번 환자 지하철 이동 사실 뒷북공개가, 서울시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당 환자가 비정규직이고, 이들에 대한 병원 측의 관리가 소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 환자가 9일 동안 이용한 지하철 탑승객과 그 가족, 이들과 접촉한 사람 모두를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거꾸로, 서울시 보건기획관의 말처럼 지금까지 조사결과, 확진자와 버스나 지하철을 같이 탄 사람 중 환자가 발생한 사실이 없고, 해당 지하철이 철저하게 소독됐기 때문에 안전하다면, 삼성서울병원 비정규직 전부를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결국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같은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삼성서울병원 비정규직 2,944명 중 1,744명과 연락이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 의심증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73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37번 환자가 의심증상이 생긴 뒤 지하철로 출퇴근한 9일 동안, 서울지하철을 이용한 승객 중 고열 등 증상을 호소한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취재 중에 만난 감염 및 예방의학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메르스와 관련된 국민들의 부풀려진 공포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위험보다, 언론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메르스 공포’의 전염력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감염전문의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위험을 과장해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의 행태가, 국민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큰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특히 그는, 2009년 신종플루 확산 당시 미국의 예를 들면서, 메르스 확산에 대처하는 국내 정치인과 언론의 후진적 행태를 지적했다.

    2009년 미국에서 신종플루로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은 6,000만 명 이었고, 이 중 1만2천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은 우리처럼 그 숫자를 경쟁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미국은 국민들이 신종플루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연 평균 2만3천명이 넘는 계절독감 사망자 수와, 신종플루로 인해 증가한 사망자 수를 전문가가 비교분석한 자료를 관련 웹사이트에 매일 공개했을 뿐이다.

    물론 확진자의 이동경로를 표기하는 일도 없었다.

       - A대학 병원 내과학교실 교수(예방의학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