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공포 확산 주연 박원순, 조연 조희연..WHO 권고도 무시
  • ▲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메르스 격리병동.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메르스 격리병동.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2008년 4월 29일, MBC PD수첩은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은 한국과 미국 시민단체관계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 결과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이날 방송이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한국인의 유전자가 인간광우병에 더 취약하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방송은 한 대학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한국인 500명의 유전자분석을 실시한 결과,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PD수첩은 이어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무려 94%에 달한다며, 한국인인 영국인보다 3배, 미국인보다 2배 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보도했다.

  • ▲ 2008년 4월9일 MBC PD수첩 방송 화면. ⓒ 화면 캡처
    ▲ 2008년 4월9일 MBC PD수첩 방송 화면. ⓒ 화면 캡처

    PD수첩 방송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방송 후 인터넷에서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고, 한번 걸리면 치사율이 100%에 달한다는 정체불명의 게시글이 넘쳐났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이른바 '광우뻥 괴담'을 폭발시킨 진앙이 됐고,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PD수첩의 부정확한 보도내용이 진실로 둔갑돼,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 ▲ 2008년 전국을 뒤흔든 광우병 괴담을 소개한 인터넷 게시물. ⓒ 뉴데일리DB
    ▲ 2008년 전국을 뒤흔든 광우병 괴담을 소개한 인터넷 게시물. ⓒ 뉴데일리DB

    한국인의 유전자가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주장은 과학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중에 검찰은 "유전자형만으로는 인간광우병 발생 확률을 단정할 수 없음에도 '유전자형에 비춰 한국인의 발생확률은 94%로서, 영국인에 3배, 미국인에 2배'라고 보도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PD수첩 제작진도 "부정확한 표현이란 사실은 인정한다"고 자신들의 선정적 보도행태를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PD수첩은 "기존의 정부 보고서와 일부 학자의 논문 등을 참고했다"면서, "한국인의 발병확률이 높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의 선동적 보도행태가 '광우뻥 괴담'을 심화·확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됐다는 점은, 현재의 메르스 괴담 확산 형태와 거의 같다.

    지금도 국민들은 정체불명의 메르스 괴담을 인터넷에서 퍼나르면서, 스스로 공포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메르스 공포 확산은 지난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심야 긴급 기자회견을 계기로 더욱 심화됐다.

  •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DB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DB

    박원순 시장은 4일 밤, 메르스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확진자 A씨가 감염이 된 상태에서, 1500여명이 모인 재건축조합 행사에 참석한 사실이 있다며 폭로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박원순 시장은, 당시 재건축조합 행사 참석자 모두가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됐다며, 서울시의 행정력을 동원, 1대1 감염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의 심야 긴급기자회견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신문과 방송은 앞 다퉈 박 시장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옮겼다.

    박 시장의 심야 긴급기자회견은 8년 전 광우뻥 괴담을 폭발시킨 PD수첩의 방송을 떠올리게 한다.

    PD수첩의 방송이 검증 안 된 내용을 국민들이 사실처럼 오인하도록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이나, 박원순 시장이 35번 확진자에 대한 사실확인도 구하지 않고, 그가 참석한 행사에 모인 시민 전부를 잠재적 감염자처럼 발표한 것이나, 주제가 광우병에서 메르스로 바뀌었을 뿐, 보도 혹은 발표 전후의 사정은 상당히 흡사하다.

    심야 긴급기자회견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박원순 시장은, '준전시상황' 등 선정적인 수사(修辭)를 서슴지 않으며, 국민에게 '메르스 구원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박원순 시장은 중앙정부를 불신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런 모습은 부실한 초기 대응으로 수세에 몰린 보건당국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며칠간 박원순 시장이 보여준 메르스 관련 행보는, 우군인 좌파진영으로부터 눈총을 받을 만큼 선동적이었다. 선동이 욕을 먹긴 했지만,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주효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박 시장의 지지율은 심야 긴급기자회견을 변곡점 삼아 상승세로 돌아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원순 시장이 국가적 재난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쓴소리도 들린다.

    메르스 방역이란 대원칙을 앞세운 박원순 시장의 최근 모습은, 정치적이란 평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재건축조합 행사 참석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목적이었다고는 해도, 비장한 표정으로 심야에 긴급기자회견을 여는 박원순 시장의 모습은, 다분히 선동적이었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와 별개로 자체 검역반을 구성·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박원순 시장의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말한다”는 비난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서울삼성병원이 35번 확진자와 관련된 정보를 끝까지 제공하지 않는다면,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박원순 시장의 선동적 행태가 어떤 평가를 받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의 ‘과잉’과 ‘오버’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오든, 정치인 박원순이 메르스 정국을 이용해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메르스 정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공직자가 박원순 시장만은 아니다.

  • ▲ 조희연 서울교육감. ⓒ 뉴데일리DB
    ▲ 조희연 서울교육감. ⓒ 뉴데일리DB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행태도 적지 않은 뒷말을 낳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한국을 찾은 세계보건기구(WHO) 조사관들이 "학교 휴업은 메르스 전파와 무관하다"면서, 수업 재개를 강력하게 권고했음에도, 오히려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WHO 평가단은 지난 10일 한국 정부에, "메르스 전염과 학교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수업 재개를 고려하라"고 '첫 번째 권고사항'을 전달했다.

    평가단은 이와 함께 감염예방 및 통제 조치를, 전국 의료기관을 포함한 모든 시설에서 즉각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평가단은 발열 증상이나 호흡기 증상을 신고한 환자들에게 ▲메르스 환자와의 접촉 여부 ▲메르스 환자를 치료한 의료기관 방문 여부 ▲증상 발생 14일 전 중동지역 방문 여부를 질문할 것을 권고했다.

    WHO 평가단은 "한국의 메르스 발병 양상이 중동의 의료시설에서 발생한 메르스 발병양상과 비슷해 이같이 권고한다"면서, "확산이 빨라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희연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오후 메르스 관련 회의를 열고, "강남·서초 지역 학교 휴업을 해제할 만한 특별한 상황 변동이 없다고 판단해 휴업을 이틀 더 유지한다"고 밝혔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WHO 평가단의 권고사항을 참조 할 수는 있지만, 이런 권고는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정된 휴업을 진행하고 주말 경과를 살펴 본 뒤, 학부모와 일선 학교 교장 등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휴업이 메르스 전염 예방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점은, WHO 평가단의 권고에 앞서 이미 국내 감염전문가 상당수가 인정한 사안이다.

    뉴데일리와 인터뷰한 국내 최고의 감염내과 전문의 두 명도, 서울과 경기교육청의 무더기 학교 휴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메르스 전파가 병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휴업은 메르스 감염 예방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A교수는 “학교 휴업은 과잉대응”이라며,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사람끼리 만나서 메르스가 탄생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 유명 사립대 부속병원 B교수는 “예방차원에서 찬반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럴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감염전문의들은 물론이고 WHO 평가단까지 나서, 서울과 경기교육청 등의 무더기 학교 휴업을 ‘과잉대응’으로 보고 있지만, 이들 교육청은 아직도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특히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시 신청사에서 열린 안전관리위원회에 참석해, 학교 휴업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나아가 조희연 교육감은 강남·서초에 이어 강동과 송파, 강서 지역 학교에도 휴업을 권고하고 있다며, WHO의 권고를 따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조희연 교육감이, 국내외 감염전문가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휴업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 배경에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조희연 교육감의 이런 행태를 형사 재판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앞서 4월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재판장 심규홍 부장판사)는 지방교육자치법 상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교육감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당초 이 사건은 재판부가 조희연 교육감 측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조 교육감 측에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7명으로 구성된 국민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조희연 교육감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1심 판결은 조희연 교육감 측에 상당한 상처를 안겼다. 무엇보다 혁신학교 확대 등 주요 정책 추진에 있어서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선무효형 판결로 위기에 몰린 조희연 교육감이, 실추된 위상 회복을 위해 메르스 파동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분석은 교육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현직 교사 C씨는 "조 교육감은 메르스 사태가 오기 전까지 힘이 많이 빠져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교육감 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조 교육감이, 몇 개월 남지 않은 교육청 인사와 산적한 교육정책 등으로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차에 메르스 사태로 내부 단속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이런 분석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이 관계자는 "(교육)정책은 정책이고 재판은 재판"이라며, 조희연 교육감의 메르스 관련 행보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