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업인을 ‘탐욕에 가득 찬 악마’로 일반화하는 오류 범해
  • ▲ ▲김동근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대표 ⓒ뉴데일리
    ▲ ▲김동근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대표 ⓒ뉴데일리

     

    오랜만에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고 있다.

    전태일평전은 (급진적 좌파진영이 추구하는 이데올리기 중 하나인) 노동해방투쟁의 범위를 넘어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끄는데 큰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실로 대단한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하 금서(禁書) 상태에서 수십만 독자의 가슴을 두드리고 혼을 빼앗았다"고 표현했으며,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의 동지였던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는 전태일과 그의 모친 이소선 여사를 예수, 마리아와 같은 존재로 표현하면서,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를 바울과 같은 인물로 평가했다.

    ‘계급투쟁’이란 표현을 거의 한 마디도 쓰지 않은 이 책은, 사상적 거부감을 능숙하게 회피하면서도 독자에게 계급투쟁주의의 핵심내용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 책의 저자 조영래 변호사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엘리트였다. 그는 윤택한 삶이 보장돼 있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학생운동을 시작,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출소 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6년간 수배생활을 하며 이 책을 집필, 익명으로 펴냈다.

    이른바 '인권변호사'가 된 그는, 생계를 위해 보일러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이어가는 한편,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론을 맡아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내고, 민변 탄생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수 많은 활동과 업적을 남기고 마흔 셋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념의 방향성을 떠나 조영래변호사의 희생적인 삶과 초인적 능력은 인정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전태일 평전은 6.29 이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이들의 이념적 지침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수 많은 학교에서 권장도서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전태일이라는 청년이 약자들에게 가진 뜨거운 연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곧은 품성, 용기있는 결단, 실천적 자세, 희생정신 등을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평전은 당시 노동참상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이 평전에는 전체에 걸쳐 100번 이상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질서에 대한 반감을 담은 문장이 기술돼 있다.

    "강자의 현실이 만들어 놓은 틀"

    "봉건시대 이래 잔존해 오고 있는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

    "강자를 위한 하나의 도구, 기능, 노동력으로 전락해 버린 인간상"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사회"

    "노예 사회"

    "악마와 같은 현실의 벽"

    "인간을 학대하고 짓밟아 불구화 하는, 그리하여 현실이 쓰다버린 쪽박으로 만들어버리는 저 잔혹하고 비정한 현실의 냉혈한 얼굴을..."

    "부유하고 강한 자들의 세상"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억압하는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와 힘이 아니었을까?"

    "생존경쟁이라는 악마"

    "생존경쟁의 냉혹산 질서 아래서 탐욕과 이해관계로 야합하고 있는 세상"

    "인간을 물질화하는 부패한 환경"

    "생존경쟁이라는 이름의 없어도 될 악마의 야만적인 질서"

    "자본가들을 살찌우기 위한 이윤의 도구로서 기계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노동자들"

    "부와 권력의 결합체가 지배하는 전체 사회현실의 거대한 덩어리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야수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태일이 목격한 평화시장의 노동참상과 악덕업주들의 부조리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현실전반과 모든 고용관계, 생존경쟁 자체를 부정하고, 이를 야만적인 질서라며 극단적으로 매도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그리고 이런 관점을 담은 책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권장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위에 나열된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전태일평전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악덕업주들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명백히 모든 자본가, 기업인들에 대한 증오,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대한 적개심, 경쟁 자체에 대한 부정을 담고 있다.

    세상만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조영래 변호사에게는 당시 사회구조 전체가 악마적, 야수적으로 느껴졌겠지만, 당시를 함께 살아 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안에서 희망을 보고 용기를 찾아 전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세상을 건설했다.

    노동착취를 일삼던 악덕자본가도 분명 존재했겠지만, 불굴의 기업가정신으로 세계를 달리던 기업인들도 있었다.

    기업인 뿐 아니라 필자가 지금 껏 만나 온 월남전 참전용사,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중동 건설 노동자, 14시간 일하던 미싱 여공, 농사지으며 8남매를 키워낸 어머니 등은 당시를 회상하며 힘들었지만 아름다웠고 보람있었다고 말한다. 이들 중 지배계층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태일 평전을 비판하고 있는 본인 또한 학비가 없어 우유배달, 신문배달을 했던 가난한 대학생이다.

    평전의 논리대로라면 이들 모두가 지배계급을 살찌우기 위한 이윤의 도구로서, 그들의 의도에 세뇌돼 살아간 비참한 노예들이어야 할 것이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가 당시를 살아간 모든 기업인, 지배계층, 자본가 모두를 탐욕에 가득찬 악마라고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했기에 이런 비약적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진정으로 문제를 개선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어두운 곳을 무작정 덮어두고 지배계층의 의도대로 기존 질서와 현실에 순응하는 자발적 노예의 삶은 반드시 개선돼야 할 태도이다. 한편, 밝은 면을 외면하고 현실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분노, 증오, 피해의식을 키우며 대안없는 뜬구름만 잡는 일도 그만 둘 때가 됐다.

    저자는 후자의 관점에 과하게 몰입해 균형을 상실했고, 저자와 같은 활동을 하며 같은 패러다임을 공유한 동지, 후배들은 20대 때 형성된 편향된 사고체계를 지금까지 유지한 채, 현재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계층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계는 이미 실패가 입증된 계급투쟁, 사회주의 철학을 아직도 고수하면서 대안없는 파업을 일삼아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정치계는 무상급식을 비롯한 포퓰리즘적 정책만을 양산시켜 나라의 곳간을 비게 하고, 이들의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태도는 습관이 돼, 광우병·세월호 사태를 일으켰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권력을 잡고 나니 슬슬 배에 기름이 끼어, 과거 자신들이 비판했던 구시대의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전태일 평전은 아직까지 비판이 힘든 성역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제는 평전을 직시해야 한다.

    전태일의 희생정신과 용기 등 교훈은 수용하되, 평전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알릴 수 있다면, 한국의 강성 노동운동계를 지배하는 편향된 이념을 개혁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