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빼든 뒤에는 상설특검 아닌 별도 특별법 요구하며 시간 끌 듯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안경을 벗고 옆자리에 앉은 주승용 최고위원과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안경을 벗고 옆자리에 앉은 주승용 최고위원과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이 그간 '전가의 보도'처럼 빼들던 특검 주장을 자제하고 있어, 이러한 선택을 한 문재인 대표에게 의아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성완종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10일 오후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긴급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특검을 요구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진행 상황을 보면서 요구 수위를 높여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대표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 스스로는 13일 경기 성남중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환석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검찰이 진실을 밝히지 못할 경우 특검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선 검찰수사~후 특검' 노선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표가 이같은 노선을 택한 이유는, 이 사안을 내년 4월에 치러질 총선까지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8 전당대회를 통해 성립한 문재인 체제는 내년 4·13 총선을 통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문재인 대표가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후년 치러질 대선에서 당의 후보로 선출되기까지는 순탄한 여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전당대회 때 약속한 것과 달리 총선을 그르친다면 '선수교체론' 등이 제기될 수밖에 없고, 그가 당의 대선 주자가 되는 길은 험난해진다.

    문재인 대표로서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 내년 총선 승패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가 조기 특검과 선을 긋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조기에 특검 수사로 돌입하려면 지난해 여야 합의로 제정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상설특검법)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특검의 활동 기간은 60일로 하되, 한 차례에 걸쳐 30일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대로 하더라도 수사 기간이 3개월(90일)에 불과하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때의 수사 기간은 최장 120일, 2001년 이용호 게이트와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특검 때의 수사 기간은 각 105일이었다. 상설특검에 따른 수사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조기 특검은 '유리한 국면의 조기 마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의원총회에 앞서 옆자리에 앉은 우윤근 원내대표와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의원총회에 앞서 옆자리에 앉은 우윤근 원내대표와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결국 문재인 대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되 적절한 시점에 검찰 수사의 불공정·불투명을 주장하면서 특검 카드를 전략적으로 꺼내들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에도 실제 특검 수사 착수 시기는 최대한 늦추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야 내년 총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이 사안을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특검의 실제 수사 착수 시기를 늦추기 위해 향후 의도적으로 특검 문제를 놓고 국회에서 정쟁을 유발할 것으로 전망한다.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특검 임명은 국회 추천 4인과 법무부차관·법원행정처 차장·대한변협회장 3인으로 구성되는 7인의 추천위원회에서 복수 후보를 추천하면 그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표는 이것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며 특별법에 따른 특검 도입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는 2012년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에 대한 특검 때처럼 야당이 복수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방식의 특별법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새누리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결국 양당의 주장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국회의 입법 기능을 볼모로 잡고 있다가, 9월 정기국회 등 적당한 시기에 상설특검법에 따른 국회 추천 4인 구성을 '야당 3 대 여당 1'로 하는 등 절충안으로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10~11월 중부터 특검이 90일 간의 수사에 착수해, 결국 공소 제기는 해를 넘겨 내년 초에 이뤄지게 된다. 그러면 재판이 시작되면서 여론의 관심이 다시 이 사안에 급속하게 쏠려 4월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새정치연합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의 말은 문재인 대표의 이러한 의중을 은연 중에 보여준다. 안규백 원내수석은 14일 양당 원내지도부 주례회동을 마친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기존 상설특검법에는 미비한 점이 많다"며 "새 특검법을 만들거나 기존 상설특검에 야당 쪽 의견이 많이 반영돼야 합리적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의원총회에 앞서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와 뭔가를 논의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의원총회에 앞서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와 뭔가를 논의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도 새정치연합의 이러한 속셈을 읽어내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15일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현재의 검찰이 제대로 수사한다 해도 (야당은) 또다시 특검을 하자는 정치 공세로 나올 것이 자명하다"며 선제적인 즉각적 특검 도입을 주장했다.

    권은희 대변인도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해야 한다는 (야당의) 의도는 누가 봐도 뻔한 것이 아니냐"며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문제는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의 의도를 읽어내고 선제 특검을 주장하더라도, 문재인 대표의 치밀한 복안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새정치연합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점에 있다.

    안규백 원내수석은 "여당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이 길어질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새누리당의 조기 특검 주장은) 지금의 국면을 조기에 끝내려는 계산이 (새누리당에) 있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서로가 수를 읽고 섣불리 다음 수를 두지 못하고 있는 사이, 시간은 야당 편으로 흐르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이러한 정략적인 계산에 의존한 행보는 이른바 '성완종 파문'으로 인한 국정 혼란을 장기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국익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어』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인용해 "친박게이트야말로 여야를 넘어선 국가적인 위기"라며 "여기에 여야의 정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러한 '국가적인 위기'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는 자세 자체가 정쟁의 극치라는 지적이다. 향후 상설특검법에 의한 특검을 할 것인지,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할 것인지를 두고 여야가 대립한다면, 여의도 정치권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잃고 '무신불립'하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여야가 정략적인 태도를 거두고 상설특검법에 의한 즉각적인 특검 도입에 합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