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 자택나와 6~7시 기자와 통화, 이후 10시쯤 사망 '남은 시간은?'
  •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뉴데일리 DB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뉴데일리 DB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당시 갖고 있던 휴대전화는 두 대.

    생을 마감할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서면서도 두 대의 휴대전화를 챙긴 이유는 무엇일까?

     

    #. 4월 9일, 오전 6시(추정)

    성완종 전 회장이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를 갖고 "2006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10만 달러를 건넸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허태열 전 비서실장(당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에게 7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시각은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

    통화는 약 50여분 간 이뤄졌다. 장소는 불명치 않다.
    그는 통화에 앞서 오전 5시 11분쯤 유서를 남기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을 나섰다.

    경찰은 성 전 회장이 오전 10시 이전에 숨졌을 것으로 보고 있고 유족들은 사망 시간을 오전 10시로 추측하고 있다.

    7시에 전화를 끊었다 해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는 약 3시간이 남는다.    

    더욱이 평소 인맥이 넓고 치밀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시신으로 발견됐을 당시 기자와 통화를 한 휴대전화 외에 다른 한 대의 휴대전화를 더 가지고 있었다. 휴대전화 두 대의 전원은 모두 켜져있었다.

    이는 곧 성완종 전 회장이 마지막 순간까지 구명(救命)을 위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가졌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시신 발견 직후까지만 해도 경찰은 휴대전화 분석을 안했고 앞으로도 휴대전화와 관련한 특별한 수사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현 정부 실세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금액이 적혀 있는 메모가 공개되면서 성 전 회장이 사망 당시까지 갖고 있던 휴대전화 두 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휴대전화의 마지막 통화기록이나 문자 메시지가 3시간의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 과학수사관들이 숨진 성완종 전 회장의 휴대전화를 감식하는 모습. ⓒ연합뉴스 DB
    ▲ 과학수사관들이 숨진 성완종 전 회장의 휴대전화를 감식하는 모습. ⓒ연합뉴스 DB

     

    #. '정치인형 기업인' 치밀했던 그의 의도는?

    성완종 전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 학력으로 경남기업 회장과 국회의원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60년대 후반 단돈 1,000원을 밑천으로 화물중개업을 시작한 후 점차 자본금을 늘려 1970년대 후반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1982년 대아건설과 2003년 경남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한때 2조원대 매출을 찍은 일화는 유명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정치권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0년 창립한 '충청포럼'을 밑천으로 김대중(DJ)-노무현(盧) 정권에서 정·관계와 학계를 막론하고 다양한 인맥을 쌓았다. 2004∼2005년 비리 혐의로 두 차례 유죄판결을 받고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사면을 받았다. 

    2012년 5월에는 경남기업 회장 자리를 내려놓고 충남 서산시 태안군 선진통일당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 동안 충남자율방범연합회에 1,000만원을 기부한 혐의로 기소돼 금배지를 반납했다.

    이후 지난해 하반기 경남기업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좌파세력의 여론선동에 이어 지난달 자원외교비리 수사가 시작되며 검찰 수사라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정치권 내에선 치밀한 성격으로 밑바닥에서 잡초처럼 성장한 그가 재산을 불리고, 또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이용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보란듯이 바지 주머니에 거물들의 이름을 적은 메모를 남겨둔 것은, 자신에게 정가를 뒤흔들 핵폭탄이 남겨져 있음을 암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성완종 리스트' 비밀 장부로 이어지나?

    성완종 전 회장은 망자(亡者)가 됐지만 그가 남긴 메모는 결국 정치권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10일 서울중앙지검 박성재 검사장과 최윤수 3차장을 불러 "메모지 작성 경위 등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확인하고 관련 법리도 철저히 검토해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검찰이 우물쭈물할 경우 좌파세력이 리스트 의혹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여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성완종 전 회장이 목숨을 건 도박으로 지키려 한것은 무엇일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가 목숨을 끊기 직전 누군가에게 리스트 내용을 뒷받침할 장부 등 자료를 맡겨놓았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중견기업의 대표로 오른 성완종 전 회장의 꼼꼼한 성격으로 미뤄볼 때 금전출납 자료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도 이 부분을 눈여겨보고 있다.

    지난해 재력가 송모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던 새정치민주연합 김형식(45) 전 서울시 의원이 송씨로부터 5억여원을 받은 혐의가 뒤늦게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검찰은 금품 액수와 전달 시기 등 송씨가 직접 꼼꼼하게 기록해 둔 금전출납 장부와 유족 진술 등을 토대로 김 의원을 기소할 수 있었다.

    검찰은 리스트를 뒷받침할 구체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 유족과 최측근에게도 협조를 요청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검찰은 성완종 전 회장이 이러한 제3자와 메모에 담을 내용을 논의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만약 장부가 존재한다면 여기에는 김대중(DJ)-노무현-이명박(MB)-박근혜 정부를 통틀어 전·현직 실세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 ▲ 성완종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 ⓒ조선일보 DB
    ▲ 성완종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 ⓒ조선일보 DB

     

    #. 두 개의 휴대전화, 기록을 공개하라

    이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두 개의 휴대전화다.

    최근 혹은 사망 직전 휴대전화에 기록된 통화내역과 메시지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던진 메시지는 여러가지로 해석된다.

    '더 이상 우리 가족을 건드리지 말라'
    '내 돈을 받고도 날 도와주지 않은 이들에게 복수하겠다'
    '(돈을 주지는 않았지만) 구명에 협조하지 않은 이들에게 복수하겠다'

    성완종 전 회장은 과연 빈 손으로 연극을 꾸민 것일까. 아니면 실제 유력 정치인들과 뒷돈을 주고 받고 분통을 터뜨린 것일까. 이제 공은 검찰에게 넘어갔다.

    새누리당의 초·재선 소장파 의원들은 "부정부패 척결엔 절대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면서 철저한 검찰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대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여당과 야당의 거물 정치인들을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캐내 부정부패를 발본색원(拔本塞源) 해야 할 기회다.

    '성완종 게이트'가 열릴 조짐이 보이고 있다. 검찰은 휴대전화 기록을 낱낱이 조사해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검찰이 더 이상 망설인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