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당시 2년 사이 두 차례나 특별사면 혜택 받아
  • ▲ 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  뉴데일리DB
    ▲ 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 뉴데일리DB

    불과 2년 사이에 벌어진 두 번의 기소와 두 번의 특별사면.

    ‘정치자금법 위반’과 ‘배임증재죄’라는 가볍지 않은 혐의가 적용됐지만, 그럴 때마다 하급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뒤 상소를 포기했고, 검찰도 상소를 하지 않아 조기에 형이 확정됐다. 집행유예형이 확정된 뒤에는 마치 공식처럼 정권의 특별사면이 이어졌다.

    9일 오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미 구속과 기소, 석방과 특별사면을 반복하면서 검찰과 질긴 악연을 이어간 성 전 회장에게는, 푸른 수의(囚衣)가 눈앞에 아른거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며칠 전만 해도, 성완종 전 회장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검찰이 무리한 수사로 자신을 표적수사하고 있다면서, 무죄를 강조했다.

    무려 9천억원대에 이르는 분식회계와 수백억대의 횡령혐의를 받던 성 전 회장이, 이처럼 자신 있는 태도를 취한 배경에는, 두 번이나 실형 판결을 받고도 불사조처럼 되살아난 이력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년 사이에 두 차례나 실형 확정판결을 받고도, 그때마다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은 사례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성 전 회장이, 과거 정권의 실세와 돈독한 관계를 가졌을 것이란 추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성완종 전 회장에게 두 차례나 특혜성 은사를 베푼 장본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란 사실이다.

    성 전 회장과 노무현 정권 사이의 이 유별난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청지역의 성공한 기업인으로 정치권 입문을 시도하던, 성완종 전 회장은 2002년 치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16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다.

    이 사건은 그가 두 번째 국회 입성을 노렸던 2004년 17대 총선 직후 불거졌다. 앞서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 출마를 준비한 성완종 전 회장은 자민련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고,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민련에 거액의 뭉칫돈을 건네줬다.

    2년 뒤 성완종 전 회장은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비례대표 2번을 받아 다시 한 번 국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당시 선거에서 자민련이 참패하면서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선거 직후 성 전 회장은 2년 전 자민련에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한 차례 수의(囚衣)를 입어야 했던 성완종 전 회장은, 같은 해 7월23일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합의부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는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의 징역형 유예를 선고하면서 “횡령금액을 대부분 반환하고, 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하는 등 평소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상한 일은 그 직후 일어났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은 가벼운 형이 아니다. 특히 ‘국회의원 성완종’을 꿈꿨던 성 전 회장에게 1심 형량은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1심 선고가 나온 뒤 미련 없이 항소를 포기했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석가탄신일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이 내린 특별사면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만약 그가 일반적인 경우처럼 항소심과 상고심을 모두 거쳤다면, 2005년 5월 특별사면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의 항소 포기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당시 성완종 전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과 함께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특별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정당성 시비가 일었다.

    여론악화를 의식한 듯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구체적인 기준은 법무부에서 마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면복권이 결정됐다”며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 ▲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의 문제인 대표. ⓒ 사진 조선닷컴
    ▲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의 문제인 대표. ⓒ 사진 조선닷컴

    그러나 문재인 수석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 우호적이었던 경향신문조차 <진짜 특별한 강금원 특사>라는 기사를 통해, “이번 사면에 대출사기나 횡령 등 개인비리와 관련된 경제인들이 전원 제외된 것에 비하면 형평성 시비가 제기될 ‘초(超)특별사면’”이라고 비난할 만큼, 당시 특사는 문제가 많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특사 역시, 청와대 혹은 참여정부 최고위층과의 특별한 교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성완종 전 회장과 검찰의 두 번째 악연은 불과 3개월 뒤 다시 이어졌다. 2005년 9월 성 전 회장은 세상을 뒤흔든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되면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사진 조선닷컴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사진 조선닷컴

    이른바 ‘행담도 게이트’라 불렸던 이 사건은 노무현 정부 실세였던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정태인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무현 정부를 대표하는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성완종 전 회장은 행담도 개발사업 2단계 공사시공권을 받는 대가로, 김재복 행담도개발(주) 사장에게 12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가, 배임증재죄로 불구속 기소됐다.

  • ▲ 행담도 개발 조감도. ⓒ 사진 조선닷컴
    ▲ 행담도 개발 조감도. ⓒ 사진 조선닷컴

    이 사건으로 성완종 전 회장은 2007년 11월 23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성 전 회장이 항소심 판결 뒤 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행담도 개발과 관련돼, 도로공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강요미수)로 기소된 정태인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도로공사 경영진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력을 가한 것은 도로공사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될 정도의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정태인 전 비서관이 도로공사 직원들을 동북아시대위원회 사무실로 불러 행담도 개발 사업 진행상황을 보고토록 한 혐의(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에 대해서도 “거짓으로 직권을 핑계 삼아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의 자본조달을 돕기 위해, 정부가 사업을 지원한다는 취지의 의향서를 작성하고 이를 행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로 기소된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내용에 허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경남기업으로부터 12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 2년간 19억2천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배임수재 등)로 기소된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행담도개발(주)와 불리한 자본투자협정을 체결해, 도로공사에 손해의 위험을 안긴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등으로 기소된 오점록 전 도로공사 사장은 1심과 같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2009년 4월 대법원이 핵심 피고인인 정태인 비서관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막을 내렸다.

    항소심이 끝나고 한 달여가 지난 그해 12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그리고 그 명단에 성완종 전 회장은 다시 한 번 이름을 올렸다.

    성 전 회장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두 번째 특사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때의 특사가 비공개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정권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물려주기 직전, 마지막 특사를 단행하면서 21명의 경제인을 특사명단에 올렸다. 그러나 성완종 전 회장의 실명만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참여정부 실세와 특별한 친분이 있다는 설이 나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인맥은 자민련이나 참여정부에 한정되지 않았다.

    성완종 전 회장은 사면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위 과학비즈니스벨트 태스크포스(TF) 민간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여야를 넘나드는 광폭 인맥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 뒤 성 전 회장은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후신인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1만2천여표 차이로 꺾고 당선증을 받았다. 무려 12년간 기다려 온 정치인의 꿈을 이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 ▲ 국회의원 당시의 성완종 전 회장. ⓒ 사진 뉴데일리DB
    ▲ 국회의원 당시의 성완종 전 회장. ⓒ 사진 뉴데일리DB

    성완종 전 회장은 자유선진당 원내대표를 맡아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추진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선거 당시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충남자율방범연합회에 1,000만원을 기부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다시 한 번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형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잃었다.

    성 전 회장은 충청도 출신 정관계 인사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충청포럼’을 통해 여야를 가리지 않는 넓은 인맥을 구축했다. ‘충청포럼’에는 반기문 UN사무총장과 정운찬 전 총리 등도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의 불사조 신화에는 충청포럼이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란 추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세 번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3일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비리에 연루돼 검찰에 출석한 성 전 회장은 하루 뒤인 4일 새벽에 굳은 표정으로 검찰을 떠났다.

    검찰청사로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그의 얼굴 표정은 사뭇 달랐다. 성완종 전 회장은 조사실로 들어가기 전, 취재진의 물음에 차분하게 답변하는 등 침착한 모습을 보였으나, 다음 날 새벽 집으로 돌아갈 때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차분했던 조사 직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몰려드는 취재진을 손으로 밀치면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의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원비리 수사를 받으러 들어갔는데, 개인 영역으로 수사가 확대된 것을 알고, ‘이번에는 어렵겠구나’하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추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검찰은 그가 회장으로 있었던 경남기업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수사하면서, 성 전 회장의 개인 비리 혐의도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 알려진 성완종 전 회장의 혐의는, 경남기업이 자원개발을 명목으로 800억원대의 정부자금을 횡령했다는 것이었으나, 검찰의 칼끝은 성 전 회장을 직접 겨누고 있었다.

    실제 검찰은 성 전 회장이 9천5백억원대의 분식회계를 지시했고, 성 전 회장 부인이 경남기업 계열사를 통해, 25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까지 수사했다.

    검찰의 수사가 자원외교와 관계없는 개인비리와 기업 경영 전반에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성완종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두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는 등, 검찰의 칼끝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안간힘을 썼다.

    불행하게도 성 전 회장은 이번만큼은 퇴로를 찾지 못했다. 정치인과 경제계 인사들에 대한 특별사면에 부정적인 현 정부의 태도도 그에게는 큰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두 번이나 특사의 기회를 준 법무부장관은 김승규 전 국정원장(2005년 5월 당시 법무부장관)과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법무부장관을 맡았던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2007년 12월 당시 법무부장관)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첫 번째 특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으며, 성 전 회장의 2차 특사가 이뤄진 2007년 말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호철씨다.

    참고로 성 전 회장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아, 특혜 시비를 빚은 두 번째 특사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표였다. 노무현 정부와 성완종 전 회장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