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총리론·여론조사 제안 등 패착 두다가 뒤늦게 對與 경고
  •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우윤근 원내대표(맨앞줄 사진 왼쪽)와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우윤근 원내대표(맨앞줄 사진 왼쪽)와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었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투톱'인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보여준 리더십을 향한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은 16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을 놓고 "국민이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이날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표결 결과는 가(可) 148표, 부(否) 128표, 무효 5표로 인준 가결이었다. 표 대결에서 엄연히 패했음에도 "국민의 승리"라는 최상급의 수사가 등장했다. 표결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국민의 승리가 곧 야당의 승리"라고 답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이 이렇듯 '국민의 승리'를 외칠 수 있게 된 데는 우윤근 원내대표의 공이 컸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본회의 직전인 오후 1시부터 의원총회를 열었다. 당의 의석 수는 130석이지만, 의원은 122명 밖에 모이지 않았다(장하나·진선미 의원은 추후 본회의장에 도착해 124명).

    특히 당에 알리지 않고 해외로 출국한 의원이 있다는 사실에 원내지도부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이 해외에 체류 중이던 의원까지 전부 불러들여 155명으로 일사불란한 전열을 구축한 것과 시작부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후 시작된 의원총회에서는 16명의 의원이 발언을 신청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본회의에 출석하지 말자는 주장 △정정당당하게 표결에 임하자는 주장 △일단 본회의에 착석했다가 표결이 시작되면 일제히 퇴장하자는 주장 등이 백가쟁명 식으로 표출됐다. 이러다가 강경파·온건파의 목소리가 난삽하게 뒤섞이면서 당론이 엎어져 버리는 모습이 박영선 전 원내대표 시절 새정치연합이 자주 보여줬던 전형적인 의원총회의 모습이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하지만 우윤근 원내대표는 마지막 순간에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은 잘 알겠지만, 원내대표를 믿고 따라달라"며 본회의 및 표결 참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리스크는 적지 않았다.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우윤근 원내대표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원내대표 결정에 다들 따라주겠다고 했다"고 짤막하게만 답했다.

    표결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부터 이탈표, 반란표를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자유 투표를 하기로 한 것은 이탈표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역대 인사 관련 투표에서 당론을 정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당론이 없으니 이탈표라는 것도 없는 것"이라며 "이탈표 때문에 원내지도부가 표결 결과에 책임질 일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는 새정치연합에서 이탈표가 20여 표 이상 나와, 가(可)표가 170여 표에 달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표결에 참여한 새정치연합 의원 수보다 많은 부(否)표가 나왔다. 새정치연합에 이탈표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새누리당의 이탈표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게 됐다.

    결과적으로 우윤근 원내대표는 "우리 당은 하나의 이탈표도 없이 국민의 뜻을 받들었다"며 "표결에서는 졌지만 국민이 승리했다"고 '승리 선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회의 및 표결 참여 결단이 '국민의 승리이자 야당의 승리'로 포장되는 과정에서, 선출된지 일주일 남짓한 문재인 신임 당대표는 한 것이 전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표는 한 것이 없다기보다도 오히려 위기를 초래했다. 여론조사에서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이 긍정적인 응답보다 많았음에도 오히려 새정치연합이 무언가 몰리는 듯한 상황은 문재인 대표가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 ▲ 호남총리론·여론조사 제안 등으로 기회를 위기로 바꿔놓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호남총리론·여론조사 제안 등으로 기회를 위기로 바꿔놓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거슬러 올라가면, 문재인 대표는 당권 경쟁 중에 이른바 '호남총리론'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이후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중에 강희철 충청향우회 명예회장의 "충청도에서 총리가 났는데 호남 분들이…" 발언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11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33.2%에 불과했던 대전·충청 지역의 이완구 후보자 '적합' 응답은 이틀 뒤인 13일, 갑자기 65.2%로 두 배로 뛰어올랐다. 이 때문에 새정치연합 충청권 의원들은 끊임없이 '이탈표를 던질 것'이라는 의심에 시달려야 했다. 지역구가 충청권인 새정치연합 의원은 "(하도 충청권 의원을 의심해서) 부(否)표 던진 인증샷을 찍어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동료 의원들을 의심에 시달리게 한 단초를 제공한 문재인 대표는 뒷수습을 하기는 커녕 뜬금없는 '여론조사' 제안을 해 다시 한 번 큰 헛발질을 했다.

    새정치연합 의원조차 "모든 것을 여론조사로 하려고 하면 정치가 사라진다"고 지적했을 정도로, 대의민주주의와 의회 제도의 ABC를 무시한 제안이었다. 주말 동안 여론을 보면서 공세를 지속하려 했던 새정치연합은 '여론조사 제안'에 대한 여론을 보면서 문 대표의 발언을 해명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했다.

    마지막으로 의원총회에서 우윤근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원내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던 그 시점, 문재인 대표는 슬며시 의원총회장을 빠져나와 대한노인회를 예방했다.

    미리 잡혀 있던 일정이라고는 해도, 당 소속 의원 전원에 대한 총동원령을 발령하고 정작 당대표가 다른 일정으로 의총장을 비우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으로는 우윤근 원내대표처럼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회의에 들어가서 표결에 참여하는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마다 '헛발질'을 일삼았던 문재인 대표는 16일 본회의를 마친 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완구 후보자의 총리 인준 강행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누구보다 준엄한 대여(對與) 경고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