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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S 양대 노조로부터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KBS 길환영 사장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문이 방송가에 퍼졌다. 각종 소식통에 따르면 길 사장의 아들 A씨는 1일 오후 4시경 서울 모처에서 가족 등 최측근만 참석한 가운데 일반인 여성과 혼례를 올릴 예정이다. 한 소식통은 "KBS 내부에서도 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어 소문만 무성한 상태"라며 "아마도 A씨의 직장 내에서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간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공식적인 지침이나 전달 사항은 없었지만 길환영 사장이 아들의 결혼식을 예정대로 진행하되 최대한 간소하고 조용히 치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혼사가 잡힌 소식을 뒤늦게 접한 방송계 지인들이 화환 등을 전달할 뜻을 내비쳤으나 길환영 사장이 비서진을 통해 정중히 사양했다는 후문이다.결혼은 모두의 축복 속에서 치러져야 할 인륜지대사다. 남녀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2세를 통해 다음 세대로 삶을 이어가는 첫 단추가 바로 결혼이다. 이토록 축복 받아야 마땅한 결혼이 누군가의 이목을 피해 비밀리에 치러진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쁜 날'임에도 마음껏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공교롭게도 '참사' 이후로 결혼 날짜가 잡힌 커플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혼례를 후딱 해치우는 모습을 보였다. 때마침 참사 직후 혼례를 올리게 된 한 연예인 커플은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이런 상황에 결혼을 하게 돼 죄송스럽다"는 사과를 남기기도 했다. 무엇이 죄송스러운가? 세월호의 비극과, 이들 신혼 부부는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를 감안, 본의아니게 사과 표명을 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세월호 못지 않게 최근 KBS에 불고 있는 역풍(逆風)도 대단히 비극적이다. KBS 노조에서 본부 노조가 떨어져나간 이후 최초로 양대 노조가 파업에 결의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들 노조는 길환영 사장의 퇴진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요구 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모든 방송 업무에서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 실제로 KBS 양대노조는 물론 직능 협회와 부장급 이상 간부들까지 대거 파업에 동참하면서 정규 방송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뉴스 프로그램이 축소·제작 방영 되는가하면, 미처 제작을 하지 못한 프로그램 때문에 생뚱맞은 다큐멘터리가 프라임 타임을 차지하는 황당한 일이 잦아지고 있다. 피디와 아나운서까지 대거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상당수 비노조원이나 간부, 혹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교체됐다. 이대로가다간 6.4지방선거 개표 방송마저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노조원들이 '사장 퇴진'에만 목을 매고 있을 동안, KBS의 '주인'인 대다수 국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총파업 이후 즐겨보던 뉴스와 각종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결방되면서 당연히 누려야 할 '시청권'이 침해를 당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이 나라 국민이다. 준조세나 다름없는 시청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국민들이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는다고, 자신들이 KBS의 주인인냥 소리치는 작태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정작 "KBS 사장 물러나라"고 외쳐야 할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시청료로 월급을 받고 사는 직원들이 이러한 항명 파동을 벌인단 말인가? 이들 노조가 사실상 '아무런 힘도 없는' 주인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내세운 '협박 카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들은 이사회 표결 이후에도 길환영 사장이 사퇴하지 않는다면 브라질 월드컵 관련 출국을 거부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시청자의 '시청권'을, 주인의 유일한 권리 행사인 'TV 시청'을 볼모로 삼겠다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예능 프로그램을 결방하거나 선정적인 방송을 지양하는 행동은 국민 대다수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진 행위다. 이를 두고 "시청권이 훼방됐다"고 격분할 시청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본다. 애도 기간 돌잔치나 결혼 등 경사를 맞이한 이들이 최대한 경건하게 예식을 치르는 일을 손가락질 할 사람도 없다. 동시간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유족의 심정을 헤아려, 최대한 자중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마땅히 축복 받아야 할 아들의 결혼을 비밀로 감추는 일은 희극(喜劇)이다.
기자들이 연일 '사장 퇴진'을 목놓아 부르짖고, 너도나도 파업 전선에 뛰어들어 뉴스 대신 '돌고래 다큐'를 방영하는 일은 KBS 내부에선 대단히 비극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길환영 사장의 아들이 결혼을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평범한 젊은이의 일상을 비극 속에 집어넣으려는 상황 자체가 비극적일 뿐이다. 양가 집안 행사인 결혼은 아마도 수개월 전부터 예정돼 있었을 것이다. 날짜를 잡을 당시엔 이같은 작금의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터. 주위의 이목을 감안, 결혼 날짜를 미루려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강행하게 된 길환영 사장은 대신 측근들에게 결혼 내역을 함구해 달라는 신신 당부를 했을 것이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행위는 지금까지 기사화 된 내용만으로 충분하다. 좀 더 당당하고 소신있는 공영방송 사장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가? KBS 공영노동조합이 주문한 것처럼 길환영 사장이 공익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에만 몰두해 주길 바란다. 임기동안 흔들림 없는 기조로 올바르고 건강한 공영방송을 만드는데 전력 투구해 주기를 대다수의 국민은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