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려진 화분-존 버거 ⓒArea Park
    ▲ 버려진 화분-존 버거 ⓒArea Park

    고정남, Area Park(박진영), 임수식, 박승훈 네 작가의
    조형 텍스트와 문학 텍스트와의 상호연관성을 살펴보고자 기획한 [간(間)텍스트] 전이
    오는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SPACE22에서 열린다.

    지난 1일 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2일 저녁 전시 오프닝을 시작으로,
    17일 오후 4시부터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준비돼 있다.


  • ▲ TEXTUS 092-1_Digital C Print_125cmx145cm_2011 ⓒ박승훈
    ▲ TEXTUS 092-1_Digital C Print_125cmx145cm_2011 ⓒ박승훈

    다음은 전시 기획 전문이다.

    <간(間)텍스트>는 조형예술 텍스트와 문학텍스트와의 상호연관성을 살펴보고자 기획한 전시이다. 흔히 여러 텍스트와 텍스트들 사이에서 파생되는 의미들을 간텍스트(intertext)라고 정의하는데, 여기에서 텍스트는 문학텍스트 뿐 아니라, 롤랑바르트 이후 소위 후기구조주의자들이 사유한 기호의 그물망을 통해 의미를 길어 올리는 모든 기호의 시스템, 즉 언어, 그림, 광고, 사진, 도표 등을 포함한다. 간텍스트성(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이란 용어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에 의해 제안된 것이다. 기존의 언어학이 언표대상의 재현에 치중했다면, 간텍스트는 열린 텍스트로, 무한히 생산 가능한 의미들의 내재된 평면에 비유할 수 있다.

    텍스트의 의미는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보고, 읽는 독자(관객)에 따라 의미들의 무한변주가 가능하다. 특히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의 평면으로 옮겨 온 사진이미지의 경우 도상과 상징의 차원에서 무엇을 어떻게 재현했는지를 따지며 의미를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인덱스차원으로 들어가면 좀 더 존재론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Area Park의 여행하는 책의 모습이나, 고정남의 오래된 책의 실재, 책들이 거주하는 집을 촬영한 임수식의 작품에서 책-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Area Park, 고정남, 임수식이 이미 출판된 책을 다시 촬영하거나, 책들이 진열된 서재를 촬영하였다면 박승훈은 텍스트의 어원인 textus(직물)를 좇아 실재들이 기록되는 필름들을 ‘엮어서’ 새로운 변형들을 제시한다. 이처럼 <간(間)텍스트>전시는 간텍스트성의 접근 방법론으로 다시 찍기(쓰기)와 사진 속에 실재하는 책(장)의 형태를 다시 보기(읽기), 텍스트들의 교차 및 재인용 등을 통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시니피앙들의 무한한 생성에 기대고 있다.

    이 전시의 기획자는 고정남 사진, <진달래꽃>을 읊으며 노래하며 본다. 자꾸만 읽히는 임수식의 <책가도157>는 한 땀 한 땀의 미끈하면서도 지루한 촉감을 따라 사진을 보게 된다. Area Park의 사진은 어떠한가. 존 버거의 사진을 향한 아포리아가 버려진 화분 속 야생의 생명력처럼 싱그럽기 그지없다. 박승훈의 사진, 피렌체에 있는 <단테의 집>은 과연 단테가 쌓아올린 언어의 성벽처럼 단단하지만, 알리기에리 단테가 연모하였던 베아트리체가 금방이라도 '신생 Vita Nouva' 할 것처럼 부드럽기도 하다.

    롤랑바르트에게 텍스트는 총체적이고 단일한 의미의 고정이 아니라, 저자가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생성되는 어떠한 의미로도 환원될 수 없는 시니피앙들의 생생한 유희였다. 그러니 완벽한 소통이 추구하는 목적론적이고 결정론적, 역사적인 수렴의 과정은 파편화되고, 로고스중심으로 묶여있었던 작품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間)텍스트>전시는 사진 안에서 사진과 투쟁하고, 사진의 새로움을 모색해 온 네 명의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현대사진의 표상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재현’이 이루어진다면 어떠한 경로들을 통해 가능할지, 사유해보고자 한다. 텍스트와 텍스트사이들을 가볍게 오고가는 흔들림과 낯섦, 그리하여 계속 ‘발생’하는 즐거움들이 ‘쓰여 지지 않은 것을 읽어’(베냐민)내려는 독자들에게 예측불허의 달콤 씁쓸한 경험으로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