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혁명] 준비하자 해놓고...그것도 [물질-기술적 준비]하라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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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0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 앞에서 이 의원이 이날 언론을 통해 공개된 국정원 녹취록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3.08.30 ⓒ 연합뉴스
    ▲ 30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 앞에서 이 의원이 이날 언론을 통해 공개된 국정원 녹취록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3.08.30 ⓒ 연합뉴스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 내용에 대해
    30일 해명하고 나섰지만, [안 하니만 못한 꼴]이 됐다. 설득력이 떨어지고 궁색했으며, 곳곳에 북한의 주장과 비슷한 부분도 많았기 때문. <이석기> 의원이 이날 오후 7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앞에서 연 기자회견은 오히려 국정원의 수사에 대한 신뢰도만 올려줬다는 평이 나오기까지 한다.

    #1. "지난 5월, 경기도당위원장 요청을 받아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당시 저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현실화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오는 전쟁을 맞받아치자]고 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공멸을 맞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평화를 실현하자는 뜻입니다. 이 말이 과연 어느 한 편에 서서 전쟁을 함께 치르겠다는 말로 들리십니까."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오는 전쟁을 맞받아치자"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하면, 물질-기술적 준비 체계를 반드시 구책해야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평화를 실현하자는 뜻이었다"며 말을 돌린 것.


    #2.  "강연에 모인 사람들은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진보당 열성 당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보도연맹 사건을 보십시오. 무려 20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입니다."

    우선, 전쟁으로 인한 그 많은 인명 피해 중 자신들이 "가장 먼저 희생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자신의 [물질-기술적 준비] 발언이 "전쟁 준비"가 목적이 아니었음을 설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로 한국과 미국의 패권정책을 드는 것과 똑같은 논리다.

    예로 든 [보도연맹사건] 관련 [20만명 학살설]은 북한이 그동안 퍼뜨려온 주장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보도연맹사건]은 6·25전쟁 기간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대한 검속(檢束)과 처형을 단행한 불행한 사건을 말한다.

    "조선전쟁때 처형된 《보도련맹》성원의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길은 없지만 최소 20만명이 처형되였으리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 <우리민족끼리>, 06.22

    "최근 남조선에서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남조선군과 경찰이 재판도 없이《보도련맹》회원들을 비롯한 무고한 인민들을 1만 7,700여 명이나 학살한《사건》의 진상이 폭로되여 겨레의 커다란 격분을 자아내고 있다."
       - <조국전선> 중앙위 대변인 담화, 2006.9.23


    #3.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예고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측의 군사행동이 본격화되면 앉아서 구경만 할 것인가? 물어본 것입니다. 60년간의 정전체제를 끝낼 기회로 바꿔내는,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기회로 바꿔내자고 한 것입니다." "저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뼛속까지 평화주의자입니다. 저는 60년 동안의 분단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시키자, 그러한 대전환기로 상황을 주동적으로 바꾸자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지난 4월에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서는 총리에게 4자 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석기 의원의 말이 꼬이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물질-기술적 준비]의 필요성을 설명해놓고선, 뒤에 와선 "평화주의자"라는 자기모순에 빠진 발언을 하고 있는 것. 전쟁이 벌어졌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기회로 바꿔내자"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의원의 [항구적 평화체제] 운운은 그간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전면대결전은 조선반도에서 침략과 전쟁의 화근을 송두리채 들어내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정의의 성전이다."
       - <로동신문>, 3.31

    "정전협정 백지화 결단은 랭전의 유물을 청산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위업에 이바지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이다."
       - <조선중앙통신사>, 3.24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조선반도에서 침략과 전쟁의 화근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조국통일과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전면대결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할 것이다."
       - <로동신문>, 4.30


    #4. "이 같은 저의 정세인식이 다르다고 하여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내란 음모죄라는 어마어마한 혐의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조와 모략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지난 28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가자, <이석기>는 하루 동안 [잠수]를 탔다가 29일 나타났다. 그 때 그가 혐의 사실에 대해 한 말은 "국정원의 상상력에서 나온 소설", "철저학 모략극이고 날조극" 등이었다.

    이날 이 의원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녹취록 내용을 전부 부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인명 살상, 파괴 지시, 심지어 혜화동·평택 유류저장고 등의 (파괴) 지시가 있었다는 건 철저히 부정한다"고 했다. 조직원들이 분반 토론을 벌인 데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저는 강연만 했다"고 했다.

    한편, 이 의원은 31일 오후 3시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 참석, "내란음모 조작날조! 공안탄압 분쇄하자!"는 손피켓을 들었다. 다만 아날 이 의원은 연설은 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대 인근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는 [종북세력 척결]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