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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인, 한번 '미안하다' 해보라!"

허문도 전 통일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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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8-30 14:01 수정 2013-08-30 15:19

꽉 막힌 한일 관계,

그 출구는 없는가?


"일본정치 지도자들이여!
한번 마음에서부터 「미안하다」해 보라!"
  -이부키 일본 중의원 의장-


                                         許文道 /전 통일부 장관


지난 5월 미국을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이
그 다음으로 일본을 놔두고
중국에 다녀왔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한·일간에 근자에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쇼킹한,
당황스런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직-간접으로 그런 반응에 접한다.

의례 한 통속일 것이라고 철석같이 치부했던 사람이,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딴 곳에 서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이
지금 일본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논단에
한일문제를 두고서 반성풍의 진지성도 더러는 눈에 뜨인다.
그 동안 한일 간에 무슨 사단이 있어서 식견을 자랑하는 전문가들이 나서면,
예외 없이 결론적으로 이유로 들어지는 것은
[한국인들의 지나친 피해의식,
이성적이지 못한 감정적 격정성,
그리고 과거만 쳐다보는 집착성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속에서
오늘날 한일문제의 원천을
한반도에서 저질러 버린 「일본근대사의 부채」에서
일본 스스로가 찾는 시각이 놀랍게도 등장하고 있다.
공론지에 실린 한 국제 정치학자의 소론이다.

「日本 근대사의 부채」라는 인식은
일차적인 책임이 일본 스스로에 있다 하는 것이고,
일본이 역사 앞에 책임질 것을 자인하는
콘텍스트(문맥)을 설정하는 인식이라 할 것이다.
논자의 대국관(大局觀)이 느껴진다.
한일간에 역사청산이 가능한 날이 온다면,
그때는 최소한 다수의 일본인들이 이같은 인식을 갖는 때일 것이다.

관계대목을 다음에 옮겨본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죽도(竹島-독도)문제도 그렇고,
근대화 과정에서 조선반도 지배에 이르고 만
일본의 근대사의 부채라는
근본적 문제에 연결되어 있어,
단순한 성명이나 협정으로는
좀처럼 풀고 넘어 갈 수 없는 것이다.』

   -『中央公論』 2013.8, 40p. 


위의 인용에서
「성명」이나 「협정」이란 것이
위안부 문제의 고노(河野)담화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문제를 언급한 무라야마(村山)담화 및
65년 수교 때의 「한일협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위의 지적은 오늘의 한일문제의 전체상을
깊이 있게 포괄하고 있다 해도 될 것이다.
 
천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
시간이 아무리 갔어도,
역사청산이나,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
「한일협정」이 쓸어 담지 못한 문제들 앞에,
한국과 일본은 지금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일협정」을 통해서도
일본의 역사부채는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씹어본다.

일본의 역사인식이 새삼스럽게 문제 된 것은
작년 말의 선거에서
현 아베(安倍) 수상이
다시 한번 집권하여
그동안 어렵사리 도달하여 일정한 평가를 받던
위안부 관련 고노(河野) 담화와,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村山)담화를 수정하겠다고 한데서
발단되었다.

아시아의 이웃들이 미진하다고 느껴온 일본의 역사청산을
오히려 아베 수상은 후퇴시키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해가 바뀌어 2월말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인삭의 대원칙을 천명해 보였다.
그는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
했던 것이다.
한-일 양민족의 참된 우호·선린을 위해서는
일본 측의 역사 청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이보다 더 웅변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말의 역사적 무게는,
민족의 해방자요 건국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한일 회담 초기 일본에 가서
요시다(吉田) 수상을 면대하여
「일본은 40년에 걸친 조선통치를 한국에 사죄하여야 한다」
했던 말에 버금하는 것이다.

요시다 수상은
「그것은 일본 군벌이 한 것이다」
라며
몸을 뺏다.

이후의 한일 회담에서
일본은 냉전 상황과 청구권 지불이라는 돈의 힘을 이용,
이승만 대통령이 제시했던 역사청산의 과제를 피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박대통령의
「…천년이 흘러도 불변…」이라는 경구는,
동북아의 공동번영,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의 지주일 수 있는
한-일 양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선린을 위해
두고두고 가이드 포스트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국력 증대와 역사청산 문제


박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에 갔을 때에도 의회연설에서
「역사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를 볼 수가 없다」했고,

6월 중국을 방문하여서는 청화(淸華)대학 연설에서
「동북아시아의 역내 국가 간의 경제적인 상호의존은
확대하고 있는데도,
역사와 안보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상호불신 때문에
정치-안보협력은 그렇게 미치지 않고 있다
」고도 했다.

두 경우 모두
주로 일본을 향해 역사인식을 비판했던 것이다.

언제라고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올해 들어 뉴욕타임스 등 미국-유럽의 미디어들과 미국의회가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인식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 보이자,
여느 때와는 달리 일본의 여론 지도층들이 아연 긴장을 보이고 있다.

재집권한 아베(安倍)수상은
무라야마(村山)담화를 수정할 듯하다가,
국제반응에 부딪혀 결국 계승 쪽으로 기운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아베수상이 「협의의 의미로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언은 없었다」고 발언하여
고노(河)담화 수정의 자세를 취하고 나왔다.
국제적 질책이 터져 나왔다.

결정적으로는
시퍼 전 주일 미국대사가
고노담화에 수정을 가하려는 아베수상의 의향에 대해
강한 제동 발언을 하고 나왔다.
시퍼 전대사는
고노담화에 손을 댄다면
「미국에서의 일본의 이익을 크게 해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를 발했던 것이다.

이 발언은
미일 교류의 촉진을 위한 싱크탱크의
미국연방의회에서 5월초의 심포지엄에서 있었다.

일본의 중의원의장 등 정계의 지도급인사들은
한 좌담회에서 미국 측의 이 같은 반응을,
굉장히 이례적인 것으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일본 지도층의
역사인식 문제가 시끄럽게 된 원천을 한국 쪽에서 찾는 일본의 시각들은,
그들이 보는 한국의 사정변화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이고 있다.

 한 두가지 예를 본다.
사적으로는 국정의 상담역을 자임하는 이부키(伊吹文明)중의원 의장은,
아베수상의 역사인식을 거론하는 한 좌담회에서,
「…尖閣(釣魚島) 독도 위안부 문제가 재연되는 것은,
중국-한국이 풍요하게 되어,
드디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이다
」라고 했다.

비슷한 시각이
일본의 양식(良識)지라 할 <아사히>(朝日)신문에도 보인다.
근린과의 역사문제를 다룬 한 사설은 다음과 같이 풀이 한다.

「국교정상화를 이뤘던 그때 그 이웃나라에서는
외교에 민의가 반영될 상황에 있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시대가 되어, 드디어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다.…
일본과의 국력차가 줄어듦에 따라,
역사문제에서 유래하는 대중감정이 분출하게 된 것이다.」



너희는 늘 깨어 있으라


위의 두 분석은 모두 문제화된 역사인식을 두고서,
일본 스스로가 갖는 요인은 보지 않고,
한국 사람들이 가질 것이라고 믿는 힘 관계의 변화인식에서만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일본 사람들이
침략의 과거사에서 가해자로서의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즉 윤리감각이 결손 되어 있는
일본의 문화체질 그 자체에서
이유의 일단을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죄의 과거와의 대면을 회피하려고만 드는 것이
일본적 자아(自我)의 특질이라 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더욱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같은 일본을 상대로 역사인식을 바로 잡고 역사청산을 달성하여
진정한 선린을 이룩하는 길은
한국이 일본과 힘 관계의 균형점에 도달하는 길 말고는 없겠기 때문이다.

G2로 대두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지향하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중국을
고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일본의 근대다.

일본의 근대 속에 중국과 한국은 없는 것이다.
이 중국과 영토분쟁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 일본은
군대도 필요 없는 평화순수국가라 하던 허상을 벗어던지고
「국방군」을 갖는 보통국가가 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20년에 걸친 장기 불황,
그 끝의 미증유의 대지진,
그 짐이 버겁기만 한 줄줄이 등장한 1년짜리 정권의 약체 리더십,
G2까지 중국에 넘기게 되니,
이걸 더 보고 있을 수 없는,
자민당을 중심하고 그 밖에도 있는 일본의 전통적인 지배세력이
드디어 자리를 박차고 나선게 아닌가.
이 세력이 고심 끝에 뽑아든 카드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 일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일본의 역사적 위기의식 속에 등장한 아베는
당연히 전후 일본의 지배세력이 키워낸 상급 전략이론가들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름은 대지 않겠다.
이들 우파전략가들에게 전전(戰前)의 대일본제국은
[그 옛날 그리운 시절]로서 향수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그 동안의 왕성한 논설 활동 속에는
아베 일본이 가려는 길이 예비되어 있다 할 것이다.

이들에게 「대동아전쟁」은 「성전(聖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파정치지도자들에게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는 불가결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이들에게 지난날의 아시아침략전쟁은 「아시아해방전쟁」인 것이다.
식민지 지배가 시혜사업임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이들에게는 답답할 뿐일 것이다.
이들에게 위안부 성노예의 강제성이란
들먹이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인 것이다.


아시아의 패자(覇者) - 그 옛날 그리운 시절


아시아의 패자(覇者)였던 과거,
지난날이 그리운 아베 일본이
반드시 달성해야할 첫 과제로 꼽는 것은
미국이 만들어 준 미제 헌법을
일본 스스로의 손으로 만드는 일제(日製)헌법으로 바꾸는 일이라 하고 있다.

일제(日製)헌법이란 말에
일본국민들은 솔깃해 하는 데가 있다 하는데,
정작 노리는 핵심은
이른바 평화 헌법을 바꿔,
국방군을 두고 전쟁을 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아베수상은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에는 대리인을 보내고,
다른데서 본심을 드러냈다.
예년에 있던 전몰자추도식에서
아베수상은 예년과는 달리,
아시아 나라들에의 가해책임의 반성과 애도의 뜻을 표하는 말을
식사에서 빼버렸다.
늘 있던 부전(不戰)의 맹세도 빠졌다.

앞에서 본 무라야마(村山)담화의
무라야마 토미이치(村山富市) 전 수상은,
아베의 이 같은 무작위에 의한 의지 노출을
현수상의 개헌추진 태세의 명백한 표명으로 읽은 모양이다.

무라야마는 3일이 지난 8월18일
아베의 아시아에 대한 반성과 부전(不戰)결의를 뺀 것을 비판하면서,
헌법 개정의 저지를 위해
일본의 전 야당이 하나의 당이 되는 야당통합을 제안하고 나왔다.

이후의 일본정치는
개헌-호헌의 대결을 축으로 굴러가겠지만,
주로 개헌 쪽에서 국민여론을 동원하고자
아시아의 이웃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 상관 않고,
역사인식 발언을 더욱 쏟아 낼 것이다.

그러나 평화헌법을 만들어
대일본강화조약의 암묵의 전제가 되게 했던 미국인지라,
인류사가 미증유의 지구규모 대전쟁을 통해
전체주의-파시즘을 극복하고 도달한 유산을
철없이 허무는 것 같은 일본의 역사인식 관련 작태를,
미국이 그냥 지켜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에서
시퍼 전주일 미국대사가
일본의 위안부 성노예 문제 인식에 강력히 경고한 것을 보았다.
8월19일 서울에 왔던 로버트 메넨데스 미국상원외교위원장은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를 두고서
아주 획기적인 발언을 했다.
메넨데스 위원장은
경색되어 있는 한일관계의 해법을 묻는 말에
[전략적 방어차원에서 한·일관계가 (미국에도)매우 중요하다]고 전제한 위에
[과거사 문제는 어렵겠지만, 반드시 치유돼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한·일 회담이래
한국의 과거사 관련 문제제기를 늘 감정적이라며
미국이 곧잘 일본 쪽으로 기울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이제사 미국이 아시아를 바로 알기 시작했구나고 느끼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
독일이 피해자와 역사 앞에 취한 자세를 모르지 않을 미국이,
같은 류의 문제제기를 하는 한국 보고만,
감정문제 걷으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같은 과거사 문제는
말 그대로 「천년이 흘러도」청산되지 않고는 그대로 남는 것이다.

한-미, 미-일
간접 삼각동맹의 요청이 급하다고 한다면,
역사청산을 서두를 일이다.
어떻게 온 세계에서
일본에게만 역사에 공짜가 있을 것인가.
마음의 빚을 청산함 없이
두 사람이 어찌 생사를 함께 할 사이가 된다는 말인가.

일본에도 다녀간
독일의 바이제커 전 대통령의 패전 40주년 계기 참회연설을
일본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온 독일인의 혼의 심연을 울린 참회의 절규,
이 참회 행에 동참했던 독일인들은,
그때에 한 번 다시 났을 것이다.


이부키(伊吹) 의장의 충고


앞에서 본 이부키 의장은
한-일간에 오가는 말과 분위기를 내려다보면서,
일본의 현 정권 및 정치권 전체가
한국 측에 대해 좀 「미안하다」는 자세를 갖고 임해야지,
당장 코 앞의 이해타산을 들어
필요성이나 변명을 늘어놓아 보아야
풀리는 것은 없을 것이라 했다.

이 충고는 이쪽에서는 미진하지만,
현재의 경색관계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관련 대목을 그대로 옮긴다.

아베수상이
「침략」이란 말의 정의 운운하면서,
일본이 벌인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자세를 보여 물의가 일었는데,
이를 두고서 이부키 의장이 깨우쳐 준 말이다.

국가란
국토-국민-주권에 의해 성립하고 있으니까,

그 중 어느 것을 다른 나라가 건드리면,
그건 「침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중국-한국에 대해
「폐를 끼쳤다」(ご迷惑をかけた )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강제성이 있었다든지, 없었다든지,
「침략」이란 말의 정의가 어떻다고 하기 전에,
「폐를 끼쳤다」란 마음이 전달되지 않으면,
얘기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되풀이 합니다만,
지금의 정권전체로부터 「폐를 끼쳤습니다.」란 마음이

배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베정권 뿐만 아닙니다.

그건 지금의(일본)정치 전체에 말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어떻게든 당장 코앞의 것만
이유를 둘러대 설명해 치우려고 해요.…

「폐를 끼친 것 없다」라는 등으로
말로서 버티려고 들어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中央公論』2013.8. 30-31p.


월간 <憲政>9월호 '시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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