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록> 장관들 보고 받자 "수습책은 대통령 사퇴 뿐" 선언...후속책 지시
  •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결단에 얽힌 진실

    김효선 /뉴데일리 논설위원/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


    매년 4월이 되면 정부는 물론 각종 단체에서 4·19 관련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며 국민은  독재자 이승만을 떠올린다. 한편에 묻어두었던 이승만에 대한 증오를 새삼스럽게 끄집어내며 온갖 흉포한 죄목을 들이댄다.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하야 결단을 두고는 미국 대사 매카나기의 압력에 의해 쫓겨났다거나 학생 대표들이 하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부정확한 이야기들이 시중에 떠돈다.

  • 과거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미래를 어둡게 한다

    4·19의거가 발발한 지 올 해로 53년이 된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에 대한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다. G20에 진입한 국가, 20-50클럽 국가라는 위상과는 달리 국민의 역사의식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흔히 역사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한다. 당시의 사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돕기 위해 국무회의록과 그 때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회고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성명이 발표되기까지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정렬 장군의 기록과 허정 외무장관의 기록 가운데 상이한 점이 있다. 필자가 다른 기록을 검토한 결과 허정 외무장관의 기록은 사건 발생일자나 시간에 착오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주한미대사 매카나기의 세 번에 걸친 압력

       - 4월 19일 1차면담 이전 매카나기의 국무부와 사전 협의 없는 독자적인 성명 발표: 국민의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내용. 이에 대해 당시 미대사관 정무과 관리   하워스 쉐이퍼는 이 성명이 이승만정권에 대한 지지 철회로 해석되었다고 증언.
       - 4월 19일 1차 면담: 4․19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국민의 정당한 열망에 공감한다는       의사 표시. 정부가 국민의 불만 해소책을 강구하리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방송 메시       지를 직접 녹음하여 발표할 것을 촉구.(김정렬 국방부장관과 홍진기 내무부장관 배석)
    - 4월 21일 2차 면담: 국무장관 허터(Christian A. Herter)가 보낸 각서
    를 이승만 앞    에서 직접 낭독. 이에 대해 이승만은 이 각서가 “진실과 매우 동떨어진 것”이고 허터    도 너무 친일적이라고 심하게 불만을 표시.
       - 4월 26일 오전 10시 35분 3차 면담
       (자료 제공 : 부산대학교 이철순 교수)

    이승만, 4.19데모 1주일전에 각의서 '하야'결심 표명

    원광대 이재봉 교수는 이대통령이 학생대표단을 면담하기 전에 매카나기가 전화로 김정렬에게 전화했다는 사실과 학생면담도 매카나기가 촉구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미국의 압력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사태 수습을 위해서는 하야도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매카나기와의 최초 면담 이전인 4월 12일에 이미 피력했다.
    매카나기의 기록에 드러난 면담이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매카나기가 경무대에 도착하기 전에 하야성명이 발표되었고, 이 무렵 이 대통령은 학생을 면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학생 대표의 하야 요구에 이 대통령이 하야를 결심했다는 것도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10시 30분에 하야성명이 발표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대표가 경무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성명서 작성이 끝났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부합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김정렬 장군이 상황 전개 과정을 가장 충실하게 증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 주>

    10시 27분 매카나기와 매그루더 경무대로 출발
    10시 30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 발표.
    10시 35분 매카나기와 매그루더 경무대에 도착

    □ 매카나기 대사 전문

    이승만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친 후 매카나기 대사가 미 국무장관에서 보낸 기밀문서의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매카나기 대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한 시간(1960년 4월 26일 오전 10시 40분)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방송으로 발표된 이후다.(자료 제공 : 부산대학교 이철순 교수) <필자 주>
     
    수신 : 미합중국 국무장관, 워싱턴, 987, 우선
    정보 전달 : 태평양 지구 총사령관, 202, 정례
                  도쿄, 320, 정례
    일시 : 1960년 4월 26일 오후 8시 15분

    다음은 내(매카나기)가 오늘 오전 이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 자리엔 김정렬 국방장관과 외무부장관에 새로 임명된 허정이 동석했다.
    나는 우리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다음 메모를 미리 한 합의(약속)에 따라 국방장관에게 전해줄 것이다. 이런 의사 교환이 한국 정부로 하여금 현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시행하게 만들기 위한 우리의 계속된 노력을 상기시켜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원문 시작 :
    그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이뤄진 이 대통령과의 대화는 1960년 4월 26일 오전 10시 40분에 시작되었다. 인사를 나눈 뒤, 김 장관이 국민에게 띄우는 대통령의 네 가지 성명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성명은 그 시각 한국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고 있던 것이었다.
    이 네 사항들에 대한 영문 번역은 ‘첨부문서 A’에 쓰여 있다. 김 장관은 면담이 시작되기 전에 매카나기 대사에게 미국 대사관을 대신해 이 대통령의 4대 조치들에 대한 지지와 대중들이 이 조치들을 존중해 공공의 질서를 회복하기를 바란다는 촉구를 담은 성명을 발표해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방금 학생 대표단을 만나고 온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학생들이 정의를 열망하고 단지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훌륭한 청년들이라고 묘사했다. 이 대통령은 그들에게 자신은 4월 25일 저녁에서야 3월 15일 선거에서 저질러진 불법 행위들을 알게 됐노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국민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대통령이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학생들은 선거를 맹렬히 비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선거가 반드시 시정돼야 하며 자신이 그것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김 국방장관이 옆에서 덧붙였다. 대통령과 각료들은 3월 15일 선거 기간에 “집단 투표”(group voting)라는 수법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가벼운 변칙(부정)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은 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완벽한 부정 선거가 자행됐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었으며 이제야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중략]

    매카나기 대사는 이 대통령에게로 말을 돌렸다. 대사는 이 대통령이 한국의 진정한 아버지이며, 한국인 중 다른 어떤 누구도 국민들로부터 그처럼 일생 동안 숭배와 존경을 받지 못했다고 그를 칭송했다. 매카나기 대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이 대통령을 한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생각해 왔으며, 그가 역사에서 합당하고 명예로운 자리를 보존하기를 깊은 연민과 이해 속에서 기원해 왔다고 말했다. 대사는, 그러나 살다 보면 이런 때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짐을 짊어져온 선배 정치인도 이제는 자신의 책임에서 물러나 정부의 짐을 젊은 사람들의 어깨로 넘겨줘야 할 때가 올 수 있다고 말이다. 특히 이렇게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들엔 더더욱 그럴 수 있다고 말이다. 매카나기 대사는 이런 시기가 한국에 도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의 우려(호의, 관심)를 담은 그 표현들에 깊이 감사하며, 그 말들을 한국을 도우려는 미국의 열정으로 이해하겠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3월 15일 선거의 사기 행각과 불법 행위들을 알고 나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는 점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는 미국 언론이 자신의 폭발적인 영향력을 감안해 한국의 상황을 보도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주기를 희망한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이 시점이 되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나눴고, 곧 바로 대통령 관저를 빠져나왔다. 오전 11시 27분이었다. (원문 끝)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 국무회의록

    ※ 제29회 중앙청 국무회의
    3․15선거 후 발생한 마산 소요사태와 관련하여 1960년 3월 22일(화) 제29회 중앙청 국무회의 석상에서 오고 간 발언을 발췌한 것이다. 사상자 구제와 학생들의 동태에 대한 주의가 요망된다는 발언을 볼 수 있다.

    [전략]
    3. 마산사건

    손창환 보사 “적십자사 경남지부로 하여금 치료차를 보내어 부상자 치료에 당하게 하고 사망자에게는 금 10만환과 광목 1족씩, 부상자에게는 금 5,000환과 모포 2매씩을 주기로 하고 세궁민을 포함한 구호양곡도 방출하기로 계획을 하고 있다”는 보고.

    4. 학생문제에 관하여

    ○최재유 문교
    “학생의 동태는 민주당만의 조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는 보고.

    ※ 제36회 경무대 국무회의
    3․15선거 후 발생한 소요사태와 관련하여 1960년 4월 12일(화) 제36회 경무대 국무회의 석상에서 오고간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을 발췌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 '가장 좋은 수습책은 대통령 하야'라는 방안까지 지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희영 편찬,『국무회의록』, 시대공론사(2006.8.5)

    [전략]
    6. 시국안정에 관하여

    ○이승만 대통령  “정부가 잘못하는 것인지 민간에서 잘못하는 것인지 몰라도 아직도 그대로 싸우고 있으니 본래 선거가 잘못된 것인가” 하시는 하문
    ○홍진기 내무  (마산사건의 진상과 경찰의 대비조치를 보고하고) “사건의 배후는 다음과 같이 추측하고 있다”고 보고.
    (1) 민주당이 타지방의 데모는 선동하고 있으나 금반 마산사건의 직접배후라는 확증을 잡지 못하고 있으며
    (2) 6.25사변 당시 좌익분자가 노출 정리되지 않은 지역이니 만큼 공산계열의 책동 가능성이 많다고 보며 따라서 군경검의 합동수사반을 파견하여 두려고 한다.

    "어린 아이를 죽여놓고 무슨 소리...대통령 내놓는 방법뿐"

    ○이승만 대통령  “학생들을 동원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여하?” 하시는 하문.
    ○김정렬 국방  “학생들이 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최재유 문교  “배후에 공산당이 있어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학교에서 이 같은 일을 단속하는 조례를 만들도록 추진 중”이라는 보고.
    ○이승만 대통령  “그것은 누가 하는 운동인가?” 하시는 하문에
    ○홍진기 내무  “민주당 신파가 극한투쟁이니 하며 하고 있는 일이라”는 보고.
    ○이승만 대통령  “그것이 정당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시는 하문에
    ○홍진기 내무  “소요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는 견해.
    ○이승만 대통령  “이번 선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 즉 선거가 없었으면 일이 잘 되어 갔으리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하시는 하문에
    ○김정렬 국방  “민주당의 극렬분자의 장난이지만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있는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완전한 FAIR PLAY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
    ○이승만 대통령  “나로서 말하기 부끄러운 말이지만 우리 국민은 아직 민주주의를 하여 나가기까지 한참 더 있어야 할 것이며 정당을 하여 갈 자격이 없다고 보며 정당을 내버리고 새로 한을 하여 본다는 것도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슨 생명이 좀 보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하여 보아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며 어린 아이들을 죽여서 물에 던져놓고 정당을 말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만큼 무슨 방법이 있어야 할 것인바 이승만이 대통령을 내놓고 다시 자리를 마련하는 이외는 도리가 없다고 보는데 혹시 선거가 잘못되었다고 들은 일이 없는가?” 하시는 하문.

    "가장 긴급한 안정책은 내가 사퇴하는 것"


    ○김정렬 국방  “우리 형편은 안정 요소가 불안정 요소보다 많은 만큼 과히 염려하실 것은 없다고 보며 정부가 너무 유화책을 써온 것이 이 같이 될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나 이제는 홍 내무가 지혜 있어 처리하여 가고 있으니 잘될 것”이라는 의견.
    ○곽의영 체신  “국회를 열어놓고 자유당이 손들어서 하나씩 처리하여 가면 되고 민주당의 데모도 이젠 문제가 안 되며 다만 공산당의 책동을 막는 방책이 필요하다”는 의견.
    ○송인상 재무  “정부로서도 이 이상 더 후퇴할 수 없으니 대책을 강구하여 가야 할 것”이라는 의견.
    ○이승만 대통령  “가기(可期)이방, 할 일이 있어야 하지 지금 말들 하는 것을 들어서는 안정책이 못된다고 보며 이 대통령을 싫다고 한다면 여하히 할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나로서는 지금 긴급히 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사면(사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고 “잘 연구하여 보라”고 분부.

    "내가 그만두면 한사람도 안다치겠지..."

    □ 김정렬 회고록
    김정렬,『항공의 경종(김정렬 회고록)』,(도서출판 대희, 2010), 232~237쪽에서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허정 외무장관의 회고와 사건 발생 시간이 상이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김정렬 장군의 회고는 대체적으로 매카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 주>

    『.....국무회의실을 막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총무부 직원이 뒤쫓아 와서 미국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가다 말고 다시 돌아와 수화기를 드니 매카나기 주한미대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매카나기 대사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하였다.
    “이대통령을 뵙고자 하니 장관이 알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황급히 경무대로 향했다. 경무대에 도착해 보니 대통령께서 막 2층 계단에서 내려오시는 중이었다. 대통령께서 나를 보시고 “잘 잤나?”하고 반기셨다. 음성을 들으니 평상시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밖의 일을 전혀 모르시고 계셨던 것이다.…지금 일어나고 있는 데모사태에 대해서 간략히 보고를 올렸다.
    대통령께서 나의 보고를 들으시고 침통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말씀하였다.
    “그래 오늘은 한 사람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네.”
    …한참 후에 대통령께서는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그만두면 한 사람도 안 다치겠지?”라고 서너 번 자문자답을 하시더니, 드디어 나에게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그만두면 한 사람도 안 다치겠지?”라고 말씀하시며 대답을 재촉하셨다.…대통령께서는 나의 어깨를 흔드시며 재차 물으시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내가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더니 “그래, 그렇게 하지…. 이것을 속히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어떻게 하지?” 하고 물으셨다.
    그래서 내가 “성명서를 만드셔서 방송시키도록 하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대통령께서는 “그럼 그렇게 하지”라고 말씀하시더니, 박찬일 비서관을 부르셨다.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내가 부를 테니 받아쓰게"


    …대통령께서는 곧바로 “그럼 빨리 사람들한테 알려! 자네들 둘이서 성명서를 만들어 보게나”라고 지시하셨다.
    …박찬일 비서관이 이를 받아쓰려고 하자 대통령께서는 “자네들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부를 터이니 받아쓰게”하시고는…요지의 성명서를 구술하셨다. 이것이 역사적인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서였던 것이다.
    …박 비서관은 청서를 끝내 정식 재가를 받기 위하여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도중, 현관에서 새로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된 허정 씨가 황급히 들어오시는 것을 뵙고, 그분께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말씀드렸다.…
    “각하, 성명서를 청서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래? 어디 읽어보게.”
    박 비서관이 낭독을 한 후에 “발표해도 되겠습니까?” 말씀을 올리자 대통령께서는 ”그래, 발표하게“라고 허락하셨다.
    그래서 나와 박 비서관은 나오는 즉시 최치환 공부실장을 전화로 불러 성명서 전문을 낭독하고, 가급적 빨리 효과적인 방법을 다하여 데모 군중이 알도록 발표하라고 하였다. 역사의 전환은 매우 엄숙한 것이었다. 잠시 후 이대통령의 하야성명은 전파를 통해서 만천하에 퍼져나갔다.

    학생대표들 만나기 전에 '하야' 방송 나가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 육본으로 간 줄 알았던 송 장군이 경무대 대문 옆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대학생 대표들이 계엄사령관을 만나러 육본에까지 갔다가 사령관이 부재하므로 경무대까지 와 대문 앞에서 저와 만났는데, 이들이 대통령을 뵙고자 하니 어찌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문의하는 전화였다. 이에 박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께 이 사실을 아뢰어 여쭈어 보니, 대통령께서 만나보겠다고 허락하셨다.
    그래서 나는 송 장군에게 학생 대표들을 데리고 경무대 안으로 들어오라고 지시하였다. 이렇게 송 장군과 통화를 하다 보니, 문득 아침에 매카나기 미대사가 나한테 대통령과 접견을 알선해 달라고 부탁한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박찬일 비서를 통해 대통령께 여쭈니, 대통령께서 역시 허락해 주셨다. 이에 나는 다시 사람을 시켜 매카나기 대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매카나기 "대사관 출발 직전에 하야방송 듣고 왔다"

    그러고 있자니 송 장군이 학생 대표들과 함께 경무대에 들어왔다. 송장군은 나에게 함께 가자고 청했으나, 매카나기 대사를 기다려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이에 송장군은 학생 대표를 데리고 대통령이 계시는 경무대 후원으로 갔다.
    이와 거의 동시에 매카나기 대사가 미9군사령관 매그루더 장군과 함께 경무대에 도착하였다.
    허정 씨와 나는 이들과 같이 응접실로 가서 대통령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매가나기 대사는 대통령의 하야성명 방송을 대사관 출발 직전에 듣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윽고 이대통령께서 학생들과의 회견을 마치고 응접실로 들어오시자, 매카나기 대사는
    “이대통령 각하께서는 한국의 조오지 워싱턴이십니다.”라고 찬사를 올렸다.
    그러자 대통령께서는 천장을 보시면서 우리말로 “저 사람 무슨 잠꼬대야?”라고 혼자 말씀을 하셨다.

    원래 매카나기 대사가 대통령과 회견하려고 했던 목적은 본국 정부 지령에 따른 여러 가지 일을 여쭈려고 했던 것 같았으나, 이미 하야성명이 나간 후이고, 대통령께서 이렇게 대하자 대사는 완전히 무색해져서 별 대화도 없이 잠시 앉아 있다가 돌아가고 말았다.....』

    "어떻게 국민을 죽일 수 있어? 내가 물러나야지..."


    □ 허정 회고록

    허정,『내일을 위한 증언(허정 회고록)』,(사단법인 샘터사, 1979), 218~221쪽에서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허정 외무장관은 이 대통령이 구 비서에게 하야성명을 구술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김정렬 장군은 박찬일 비서에게 구술시킨 것으로 증언했다. 허정 외무장관은 27일의 이 대통령 하야 관련 서류 서명 당시의 상황과 혼동한 것 같다. 또한 이 대통령의 학생면담 시간도 김정렬 장군의 증언과 상이하다. <필자 주>

    『....나는 이튿날인 26일 아침 6시경, 이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고할 결심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경무대로 갔다. 경무대 입구에는 밤새도록 데모를 한 학생과 시민이 몰려 있어서 간신히 인파를 헤치고 경무대로 들어갔다.[중략]
    사실 그때 이 대통령은 구(具) 비서에게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성명서를 구술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밤에도 학생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보고를 듣고 “어떻게 국민을 죽일 수가 있어. 내가 물러나야지”하며 하야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후에 그에게 하야를 권고한 것은 김정렬 씨니 또는 매카나기 미국대사니 하는 말이 있었지만, 내가 알기로는 이 대통령 자신이 “불의를 보고도 궐기하지 않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라고 하며 독자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중략]

    "불의에 궐기하지 않는 국민은 죽은 국민"

    오전 9시쯤 되었을 때, 송요찬 계엄사령관이 학생 대표라는 5명의 청년을 경무대로 데리고 들어와서, 그 뜻을 대통령에게 알렸다.[중략]
    이때는 아직 하야 성명이 발표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당돌하게도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하야하신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하고 하야의 진부를 캐물었다. 또 어떤 청년은 “대통령께서 하야하신다면 누구에게 정권을 넘기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심지어 한 청년은
    “저희들 생각으로는 송 장군에게 정권을 인계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라고 말도 되지 않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고,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열지 않았다.[중략]
    잠시 후 한 비서관이 와서 매카나기 대사와 매그루더 사령관이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어, 나는 이 대통령과 함께 접견실로 갔다.
    우선 김정렬 씨가 영문으로 번역된 하야 성명서를 그들에게 수교했다. 매카나기 대사는 이 대통령을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에 비유하면서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국부로 추앙받던 거인 이승만 대통령의 실권은 조지 워싱턴처럼 명예로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쓸쓸하고 불명예스러웠다.
    이날 상오 10시에는 이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중략]

    이승만이 버텼으면 처참한 사태...그는 독재자 아니었다

    다만 이 대통령의 올바른 결단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만일 이 대통령이 국민을 희생시키면서라도 계속 집권을 원했다면(이것은 그가 결심하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질서는 완전히 와해되고 처참한 유혈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사태를 올바르게 판단하고 하야를 결심한 것은 그를 위해서나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것은 진상을 올바로 파악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이 대통령의 훌륭한 일면을 보여준 것이고, 그가 국민과 국가를 얼마나 아끼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비록 이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호칭을 받으며 명예롭지 못한 종말을 맞이하기는 했지만, 이 대통령 자신이 독재자가 되려는 뜻을 가진 적은 전혀 없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그의 깨끗한 하야가 증명하는 것이다. 독재자는 마지막 궁지에 몰리기 전에는 쉽게 정권을 내놓지 않는 법이다...[후략]』
    <김효선 /뉴데일리 논설위원/ 건국이념보급회 이승만 포럼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