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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마음의 깊은 곳을 은밀히 찔러주마-

    영화 광해의 성공요인은 이렇게 요약된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명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13일 하루에만 28만명이 들어왔다. 개봉 31일만에 909만명이 들었다. 추석 연휴가 끼었다고는 하지만, 하루 평균 30만명이 관람한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다음 주말 중 1,000만명도 가볍게 넘고 어쩌면 국내 영화 최다흥행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영화 광해의 흥행 요인은 무엇일까?

    광해는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제대로 된 영화이다.
    광해에게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대략 세가지이다.

    1. 광해군이라는 이미 익숙하지만 이상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
    2. 재미있는 소재들 : 왕이 대소변을 쓸 때 사용하는 이동용변기인 매화틀이라든지 혹은 가짜 왕과 신하가 다른사람들 앞에서는 왕인 척 하지만 두 사람만 있을 땐 입장이 바뀌는 따른 코미디같은 요소
    3.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의 깊은 곳을 관통하는 감동의 스토리


    이중 1,2번도 흥행요인이지만 3번이 진정한 흥행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광해는 스토리가 어떻게 사람 마음을 자극하는지 아는 사람이 만들었다. ‘이런 스토리가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겠지?’라고 보통 생각하는 단계에서 한 두 발 정도 더 나아갔다. 인간의 감정 깊숙하게 찔러 넣을 수 있는 소재를 발굴했다.


  • 대표적인 것으로 가짜 광해(이병헌 분)와 호위무사(경호실장) 도부장 사이의 스토리를 들고 싶다.
    도부장(김인권 분)은 광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 순간부터 관객들은 초조해진다. 어쩌지, 가짜라는 것이 탄로났는데 도대체 이 스토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궁금증과 초조함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가짜 광해는 재치와 대담함으로 도부장을 속인다. 감히 왕을 의심한 도부장을 처단할 수 있는 사정이 됐지만, 가짜 광해는 살려두었다.


    그렇지만 중전도 광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광해가 위급한 건강상태에서 회복돼 궁궐로 돌아오는 날, 가짜 광해는 궁궐에서 나와서 도망친다. 당연히 진짜 광해가 돌아오게 되니까 도부장은 가짜 광해를 죽이라는 임무를 받는다.

    어쩌지? 저 가짜 광해는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관객들의 불안과 초조는 올라간다. 도부장이 속았다! 하고 복수하는 것 아냐? 이런 것이 보편적인 추론이지만, 여기서 또 의외의 전개-

    도부장은 가짜광해를 죽이러 쫓아오지만, 가짜 광해를 만나서는 의외의 말을 꺼낸다.

    “당신은 내게는 진짜 왕입니다."


    가짜 왕이 한 사람에게는 진짜 왕이되는 순간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 반전이다.
    여기까지도 남자들의 보편적인 충성심과 의리와 용맹함을 자극하는 선순환 구조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라인이 하나 둘 더 들어있다.
    도부장은 혼자 남아서, 뒤쫓아 오는 경호대원들을 맨 몸으로 막아선다. 1대 다수의 처절한 사투, 이미 도부장으서는 진짜 왕을 버리고 가짜 왕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기로 한 이상, 반역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무신의 충성심으로서는 당연히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이 정도만 돼도 ‘감동이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뭐 대략 예상된 수순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광해는 또 하나의 진짜 자극제를 마지막으로 첨가했다. 도망가던 가짜 광해가 자기 때문에 한 사람이 죽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돌아온 것이다. 막 돌아와 보니, 도부장은 경호대원들을 모두 다 죽였지만, 그 역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가짜 광해의 품안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 도부장....

    두 사람사이의 긴장과 갈등과 반전에 반전은 이렇게 이어졌다. 살지 못하고 죽었기에 비극이지만, 인간성을 끝까지 살렸으니 해피엔딩이 아닐까.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속에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이렇게 깊이 자극했으니 어찌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관객들은 무엇을 느낄까?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생활에서, 인간이기 보다 숫자로 평가되는 비정규직의 설움에서, 한 눈 팔 수 없는 경쟁의 탈락위험에서, 점수와 등수로 매겨지는 성적의 시스템에서....과연 내가 루저가 됐을 때 나를 위해 희생해 줄 부하가 있을 것이며, 패배자가 된 나를 위해 눈물흘려 줄 상사가 있는가??? 하는 상실감과 소외감이 이 장면에서 보상을 받는다.


    저질스러운 소재를 가지고 자극만 일삼는 찌질이 제작자들에게 감동은 이렇게 주는거야~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