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조선 출연 李哲承 선생,
"남한엔 늘 30%의 좌익이 있다"
"납북자, 국군포로를 한 명도 데려오지 못하고서도 위정자 놈들의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 가나"라고 일갈하였다. 진정한 元老란 이런 분일 것이다.
趙甲濟
8월15일 TV조선 토크 쇼에 李哲承 선생이 출연, 약 한 시간 동안 구수한 말투로 한국 現代史를 증언하였다. 만90세인 李 선생은 말을 참 잘 하시는 분이다. 절제된 용어 선택이고 정확한 의미 전달이다. 국어 공부를 제대로 하신 분이다.
한국 현대사의 한 복판에서 파란만장한 체험을 해온 그는 "한국엔 약30%의 좌익 세력이 있다는 걸 전제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를 잘 하면 이 세력을 누를 수 있지만 못하면 큰 일 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김대중 씨를 거침 없이 '좌익인물'이라고 규정하고, "대한민국과는 차원을 달리 한 사람"이라고 했다. 국회가 희미하여 좌익정권 때 北에 갖다 바친 현금이 核과 미사일 개발에 쓰인 과정을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반타작'이라 표현하였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데 一助하였지만 '민주적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반타작 人生"이란 설명이었다. 그는 좌익들이 친일파로 모는 金性洙 선생(동아일보 창립자)이야말로 해외 독립투사 못지 않는 최고의 애국자라고 평했다. 日帝 탄압을 받아가면서,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하면서 민족의 實力을 기른 분이란 것이다.
李 선생은 '위정자 놈' '일본 놈'이란 표현을 써 가면서 격분된 감정을 토로하였다.
"납북자, 국군포로를 한 명도 데려오지 못하고서도 위정자 놈들의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 가나"라고 일갈하였다. 진정한 元老란 이런 분일 것이다.
작년 李 선생의 90 壽 생신을 맞아 내가 한 축사를 아래에 소개한다.
................................................................................................
가장 위대한 세대의 증언
90壽 생신을 맞아 회고록 ‘대한민국과 나’의 출판기념회를 갖는 素石 李哲承 선생은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세대인 1920년대생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素石 선생은 이 위대한 세대의 선두에 서서 온몸을 던져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고, 키우고, 가꾼 분이십니다. 조국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戰亂과 가난을 이기기 위한 생존투쟁을 격렬하게 치른 이 세대 중 素石 선생은 아직도 살아계신 행운의 生殘者, 즉 살아남으신 분이십니다. 建國 대통령 李承晩 박사는 90세에 돌아가셨지만 素石 선생은 같은 90壽인데도 살아서 이런 자리를 갖게 되었으니 참으로 多福한 생애라고 하겠습니다.
한 기자가 소석 선생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칠순이 넘으니 人生이 어떻게 보입니까? 더 잘 보입니까." 선생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 거 많이 있지. 순차적으로 가는 것이다. 자기가 뭐라더라도 先代가 간 길에서 또 가는 것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나이가 되면 冥府를 향해서 터벅터벅 가는 것이다. 어거지로 인위적으로 버둥거려도 안되는 것이 다. 이런 걸 많이 느끼지.”
저에게 선생은 이런 분으로 인상 지어져 있습니다.
<손이 두툼한 분, 경우가 밝으신 분, 성실하고 세심한 분, 先輩와 先代에 대한 존중심과 의리가 강한 분,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건강한 스포츠맨, 극히 상식적인 분, 언어감각이 탁월한 분, 천박하지 않는 육두문자의 제1인자, 부탁을 많이 하는 분(그래서 전화가 걸려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부탁이 모두 민족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 거절할 수 없도록 하는 분, 「모씨는 신문 가십만 읽지만 나는 社說 읽는 사람이야」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는 분, 「金모씨가 집권하면 난 지리산에 들어갈 거야」라고 말했다는 분, 그러나 지금은 서울 도심지를 누비면서 右翼 빨치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분, 李承晩·金九·金性洙·趙炳玉·張勉·朴正熙·金泳三·金大中에 대하여 권위 있게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리하여 「大韓民國과 나」란 제목의 책을 쓸 수 있는 자격의 소유자가 되신 분이십니다>
李哲承 선생의 평생은 ‘反共자유투사’의 삶이었습니다. ‘반공투사’나 ‘자유투사’는 많으나 공산당과 싸워 자유를 지켜내고, 그 자유가 위협을 받을 때는 위대한 建國 대통령과 建設 대통령까지도 政敵으로 삼아 싸웠던 진정한 민주주의자로서의 ‘反共자유투사’는 희귀한 존재입니다.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반공은 안 된다, 동시에 반공과 안보를 무시하는 자유주의는 무책임하다는 신념이 선생의 생애와 회고록을 일관하고 있는 정신입니다. 素石 선생은 살벌한 한국 정치판에서 아주 드물게도 예의와 유머를 잃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회고록에서 소석 선생이 남긴 유머와 명언들만 모아도 소책자가 될 것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의 뇌리에 찍힌 名言이 하나 있습니다.
“방죽(둑)이 安保라면 물은 自由이다. 방죽을 쌓고 무너지지 않게 지켜야 물이 고일 것이다. 이 물을 이씨, 김씨, 장씨가 나눠서 농사도 짓고 공장도 돌리면 되지 않는가.”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민주화 투쟁을 하던 야당 총재 시절에 한 말이기에 더욱 감명이 컸습니다. 야당 총재가 대통령 같은 말을 했으니 그때는 ‘사쿠라’라고 욕을 먹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안보의 둑을 지키는 데는 與野가 다를 수가 없다면서 ‘중도통합’의 기치를 걸고 묵묵히 외롭게 걸어갔던 素石 선생의 진정성을, 우리는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선생의 그 후 활동과 대조하여, 이제야 비로소 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중도를 定義하시기를, 안보를 중심으로 한 국민통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의 한나라당 정권은 ‘중도’란 말을 ‘실용’이란 말과 짝짓기 하여, 실천과정에선 ‘좌도 우도 아닌 기회주의’, ‘善과 惡, 敵과 我軍 사이에서 중립’으로 둔갑시킨 점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석 선생님은 회고록을 쓰시면서 저에게 여러 번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간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회고록은, 素石 선생의 생애를 일관한 생활 신조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소석 선생은 反託反共의 최일선에서 육탄으로 이승만 박사의 建國운동을 뒷받침하였지만 李 박사가 권위주의적으로 흐르자 이에 반대하여 야당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이승만 박사를 폄하하려는 세력을 상대로 열심히 싸우고 계십니다. 1950년대 민주당 의원이던 이철승 선생은 청렴강직한 박정희 장군과 친숙하게 지낸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셨습니다만 5.16 군사혁명으로 가장 오랫동안 피해를 본 분이기도 합니다. 야당총재 시절 온건하고 합리적 對與투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작업에 협조한 것이 죄가 되어 그 후의 정치역정이 성공적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분임에도 박정희를 ‘현대사의 巨人이었다’고 회고록에서 담담하게 평가합니다. 반면에 한때의 동지였던 兩金씨에 대하여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세속적 利害관계나 정치적 계산으로만 본다면 소석 선생의 이런 행동과 생각은 得失 타산이 영 맞지 않습니다. 선생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이런 오기와 지조에 대하여 자평하기를 "결국 나는 한국적 현실에 맞는 정치인이 못 되었고, 지조와 의리만을 지켰기 때문에 훗날 40대 기수 가운데서 나만 대통령을 못한 셈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회고록을 다 읽고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석 선생의 90생애를 관통한 삶의 공식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대한민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즉 국가이념과 국가이익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다른 사람을 평하고 노선을 선택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회고록의 제목인 ‘대한민국과 나’는 素石 이철승 선생의 묘비명에 새겨야 할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석 선생은 단순히 長壽하셨다고 축하를 받을 분이 아닙니다. 아직도 건강한 심신으로, 퇴역을 모르는 현역으로 맞는 90수이기에 더욱 오늘이 빛나는 것입니다. 수년 전 연말 반탁기념일 행사 때 素石 선생이 육두문자를 쓰신 적이 있었습니다. 다수 국민들을 향하여 '별놈의 보수', 헌법을 가리켜 '그놈의 헌법', 국군을 '인생 썩히는 곳',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老兵들을 향하여 '미국 바짓가랭이 잡고 늘어진다'고 상욕을 한 이를 가리켜 그때 이철승 총재께선 이렇게 일갈 하셨습니다.
"조국의 역사도 모르는 상놈의 정권이고 장돌뱅이 대통령이다"
젊은 사람들이나 후배들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소석 선생이 이처럼 화를 내신 것은 그 사람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이 묻어 있는 대한민국을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태인의 탈무드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잔인하다'. 소석 선생이 건강을 유지하시는 한 이유도 아마 잔인한 김정일을 동정하고 동정 받아야 할 북한동포들에게 냉담한 위선자들에 대한 분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석 선생은 1988년 총선을 끝으로 政界에서 은퇴하셨는데, 이 분의 황금기는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시절로 돌아간 듯 아스팔트를 누비면서 친북좌파 정권 종식을 외치셨던 소석 선생은 반드시 김정일의 최후와 자유통일을 보고 가셔야 합니다. 선생의 100壽 잔치는 반드시 해방된 평양에서 열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