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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14주년을 맞은 한나라당이 존폐의 역사적 기로에 서게 됐다.
최근 발생한 디도스발(發) 태풍이 한나라당을 집어삼키면서 ‘해체 및 재창당’ 수순에 돌입하게 된 것.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현재 각 계파 내에선 ‘탈당설’, ‘재건축론’, ‘재창당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모두 당의 간판을 내리느냐 여부와 관계된다.
7일 오전 한나라당의 주춧돌로 꼽히는 최고위원 3인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동반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흔들린 지도부 체제에 ‘디도스 파문’이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특히 이들 중에는 친박계 핵심인 유승민 최고위원이 포함돼 ‘사퇴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정책 쇄신이 우선’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다소 동떨어진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세 명의 최고위원은 “현재의 ‘홍준표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당 지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發露)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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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뉴데일리
■ ‘갈팡질팡’ 한나라당
하지만 홍준표 대표는 즉각 사퇴를 거부했다. 세 명의 최고위원과는 입장 자체가 달랐다.
그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최고중진의원들의 판단은 3인의 사퇴를 반려하자는 것”이라며 자신에 대한 사퇴압박을 거부했다.
이어 “지금은 예산국회에서 민생현안과 정책쇄신에 전력을 다할 때이기 때문에 (다른) 재창당 계획이 있다”고 했다.
홍 대표의 이러한 발언을 놓고 당내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공천권’, ‘기득권’, ‘대권설’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여러 차례 홍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줬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직후 지도부 책임론이 대두했을 때도 친박계 의원들이 앞장서 홍 대표를 감쌌다.
친박 진영의 경우, 내년 총선을 위해 필요한 대대적인 ‘물갈이’에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홍 대표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한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계파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쇄신파와 친이계는 본격적으로 ‘박-홍’ 연대에 대해 반기(反旗)를 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친박 진영을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새판 짜기’를 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친이계 측은 “당 지도부가 12월9일 정기국회가 끝나는 즉시 재창당의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의원들과 함께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들은 ‘당 재건축론’을 내세워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의 손에 의해 해체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쇄신파 역시 ‘당 지도부 사퇴→비상대책위원회 구성→당 지도부 선출 여부 확정→당 지도부 구성→내년 총선’이라는 스케줄을 내놓고 ‘재창당’이라는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안철수 영입론’도 끊이지 않는다.
결국 내년 총선 공천만 바라보던 소속 의원들은 마음만 복잡해졌다. 홍준표 대표의 거취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갈피를 잡아야 할지 입장이 난처하기만 하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지금 의원들의 심경이 굉장히 복잡하다. 쇄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방향이 분명치 않아 다들 고심하는 모습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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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 쇄신안 논란 과정에서 또 다시 `정면돌파' 승부수를 던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7일 오후 국회 본관 246호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현재 한나라당의 미래를 예단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재창당’이라는 큰 틀은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방법론적 측면에서 차이는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재창당론’을 이끌지 혹은 동반사퇴를 선언한 최고위원 3인을 설득한 뒤 바닥에서부터 다시 ‘쇄신 논의’를 진행할 지, 두 가지를 택하지 않고 간판을 내린 뒤 ‘새 집결’을 꾀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다만 여기엔 소장파와 친이계 일부가 탈당한 후 신당을 창당할지 여부도 변수로 작용한다.
현재 당내에서 가장 비중있게 논의되고 있는 방안은 ‘재창당 수준의 개혁’이다.
이 안은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와 일부 소장파가 선호하고 있다. 현 지도 체제를 유지하면서 박 전 대표가 쇄신을 뒷받침해 한나라당을 환골탈태시키자는 것이 골자다.
박 전 대표는 최근 각종 인터뷰에서 “당을 깨고 부수고 다시 만들고 하면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발전은 힘들다”고 했다.
특히 “한나라당마저 지도부를 교체하게 되면 블랙홀처럼 거기에 다 빠지게 된다. 예산국회를 돌보지 않고 그런데 정신이 팔려있다고 하면 국민 삶과 직결된 예산은 누가 챙길 것인가. 지금 지도부가 책임감을 갖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은 ‘해체론’보다는 ‘근본적인 개혁’을 염두에 두고 쇄신 논의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친이계는 ‘당 해체 후 재창당론’에 힘을 싣고 있다.
당 대변인을 지낸 안형환 의원은 “보수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텃밭에 현재의 한나라당을 허물고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의 한나라당은 ‘늙은 당’, ‘노쇠한 당’, ‘특정계층만을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이를 타개하려면 몇 가지 정책, 몇 가지 땜질식의 응급처치로는 안 되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이 박세일 이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대중도신당’과 결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을 뛰쳐나가 새로운 정치 세력을 구축하는 ‘신당론’도 또 다른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수도권 소장파를 주축으로 하는 일부 세력은 새 당을 만들어 안철수 교수측과 연대를 모색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K·H 의원 등 2~3명은 지난 5일 쇄신파 비공개 모임에서 탈당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두언 의원이 “한나라당 내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갈 의원이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에 대한 방증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