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정권은 사망했다.  
     
    김정일 정권은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3대 세습정권이 존재할 수 있는가?

    장진성    

      

  • 어제 김정일 사망설과 함께 오후 한 때 우리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단순 루머로 끝난 사건이긴 하지만 그만큼 북한의 불안요인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그래선지 최근엔 어느 세미나에 가도 똑같은 질문이 있다. 오늘 오전에도 어느 금융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의 3대 세습 전망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나는 김정일 정권은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3대 세습정권이 존재할 수 있는가?고 대답했다.

     그 반증으로 나는 김정일, 김정은 세습시대의 국가조건, 지도자조건, 주민조건을 비교하여 설명했다.
    우선 김정일 세습 당시의 국가조건에선 충분한 대외성이 있었다. 그것은 사회주의 동구권이라는 우방국 진영이다. 미소냉전구도라는 안정된 국제정치 환경의 그늘 밑에서 북한은 자국 내 정치권력 일원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음은 남한에 비해 경제적으로 비교적 우월했던 대내성이 있었다. 이런 상대적인 체제 자신감은 김일성 개인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세습권력도 결심할 수 있게 한 동기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과정을 걸치지 않고 봉건왕조에서 사회주의로 바로 이양된 역사적 폐쇄성의 조건이 가장 유리했다. 그 폐쇄조건이 있었기에 봉건유교관습의 연장선에서, 김일성 신격화를 조작하여 세습정치도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김정은에게는 그 3대 국가조건이 하나도 없다. 사회주의 동구권은 붕괴됐고 유일한 동맹국이라는 중국마저 개혁개방 압박을 가하는 형편이다. 경제 또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여 주적이라던 남한의 대북인도주의 지원을 공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폐쇄성도 시장화로 거의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외부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장인데다 물건만이 아니라 정보도 함께 유통되는 새로운 대중 환경 구축, 여기에 국경을 초월하는 라디오, 컴퓨터, 휴대폰과 같은 과학의 현대화까지 더해져 이젠 북한도 반쯤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가조건에 이어 지도자조건을 비교했을 때도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은 매우 열악하다. 김정일에게는 세습권력의 전제조건이라고 볼 수 있는 선대수령의 정치적 지위가 절대적이었다. 김일성의 후광으로 김정일은 자기의 존재와 위업을 조작하는 신격화 선전에도 별 무리가 없었다. 가장 행운적이었던 것은 김정일의 세습권력 훈련과정이 매우 길었다. 그 충분한 시간 속에서 김정일은 권력의 속성을 하나하나 익혔고, 나중엔 수령권한을 무력화시킬 만큼 김정일 유일지도체제를 완성했다.

     그런 김정일에 비하면 김정은은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불명예와 실패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되고, 20대에 벌써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으로 공개석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급하게 쫒기는 처지다. 그마저도 김정일의 사망에 대비한 보험일 뿐, 실제적 권력승계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김일성의 권력을 빼앗아본 경험이 있었던 김정일과 그를 둘러싼 최측근들의 권력불안과 경계심 때문이다.

     그 반증이 바로 북한의 모든 사회질서와 체계를 집중시킨 절대적인 당 권력을 김정은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선군정치의 나라로서 군사적 행정업무만을 인정해주었지만 사실 그 지위는 당 권력의 지도와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권력절충 기간은 김정일 급사했을 경우 그대로 권력공백으로 나타날 것이며 나중엔 세 아들에 의한 세 권력분파 현상도 초래할 수 있다.

     다만 김정일이 김정은을 확실하게 밀어주는 것이 있다면 신격화 만들기인데 이 또한 결코 쉽지 않다.
    김일성, 김정일 같은 경우 북한의 과거와 연계시켜 역사왜곡형 신격화 조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 김정은에게는 그런 쇼도 전혀 가당치가 않다. 김정은의 행복한 과거들은 북한 주민들에겐 300만 대량아사였고, 고난의 행군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형 신격화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데 경제가 엉망이어서 딱히 어디에 같다 붙일 말도 없다.

     김정은의 천재적 군사지휘로 원수들의 천안함을 공격하든, 연평도를 포격하든 돌아오는 것은 국제봉쇄와 비난뿐이어서 효과도 별로 신통치가 않다. 국가조건도 지도자조건도 모두 부적합한 김정은인 셈인 것이다.
    주민조건은 더 혹독하다. 김정일 시대에는 이념가치만을 알았던 주민들이었고, 안정된 배급체계에 의해 명령과 복종의 관통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그러한 단면적 사회질서 속에서 조직연대감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 주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의 주민들은 완전히 다르다. 이념가치가 아닌 물질가치에 세뇌된 주민들이고 명령과 복종이라는 제도권에서 벗어나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질서에 더 적응됐다. 뿐만 아니라 기관을 이탈하여 시장에서 개인연대감으로 생존하는, 비로소 수령주체가 아닌 개인주체의 주민인 것이다. 김정일의 건강이 길어지면 이제는 북한 주민들이 참지 않게 돼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남한 국민에게 묻고 싶다. 과연 지금 당신들은 통일의 준비가 돼 있는가?고 말이다
     
    장진성 (탈북시인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저자,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