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선...2012 전쟁의 서막나경원 선거 지원 여부-수위,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
  •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인사들에게 ‘박근혜’라는 단어만 꺼내면 나오는 반응이다.

    가장 예민한 쪽은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 출마하는 나경원 측 사람들이다. “(박 전 대표가)당연히 마음을 다해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하며 눈치를 살핀다.

    난전 혹은 열세로 예상되는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엇보다 '선거의 여왕' 소리를 듣는 박 전 대표의 손길이 절실하다. 하지만 단답식 메시지 정치에 정통한 박 전 대표는 ‘묵언 수행’ 에 가까운 모습이다.

    나 후보는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박 전 대표가)마음속으로 당연히 지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박 전 대표를 부담스럽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의 (선거대책위) 직책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결코 박 전 대표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다. 오히려 배려하는 의도가 커 보인다.

    평소 친박계와는 간극이 컸던 친이계 한 의원도 기자와의 만남에서 “내가 우리 처와 연애할 때도 이렇게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박 전 대표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답답해했다.

    박 전 대표는 6일 국회 기획재정위 출석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나 후보에 대한 지원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뒤 선거운동 개시일인 13일 이후 실제 지원활동을 펼칠 거라는 얘기다.

  • ▲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이 다가오면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나경원 후보의 지원 여부와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자료사진
    ▲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이 다가오면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나경원 후보의 지원 여부와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자료사진

    ◆ 박근혜, 왜 망설이나?

    박 전 대표가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에 지원을 나서는 것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얼마나 '마음을 다해' 지원 유세를 하느냐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박 전 대표의 반응은 썩 신통치 않다. 여전히 선거 개입 여부에 확실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뭔가 부담스러워 하는 점이 있지 않나 하고 읽혀진다.

    여권에서는 박 전 대표의 이런 태도의 가장 큰 요인으로 ‘예측하기 힘든 선거 판세’를 꼽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선거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야당으로 추락한 한나라당을 다시 재건한 ‘철의 여인’ 이미지가 여전히 각인돼 있다.

    당시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뚝심’에 쓰러진 한나라당 깃발은 다시 세워졌고, 2007년 말 정권을 잡는 시금석이 됐다. 박 전 대표가 나서면 선거는 ‘백전백승’이었다.

    이 말은 박 전 대표가 지는 싸움에는 발을 제대로 담궈본 적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서 나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선다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예전 같은 ‘적극적인 지원 유세’를 전망하는 이는 많지 않다. “지원이야 하겠지만, 그 수위를 최소화하는 품세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 ▲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 적극적 지원을 고려 중인 것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연장이라는 생각이 깔렸있다고 친박계 인사들은 전했다. ⓒ 연합뉴스
    ▲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 적극적 지원을 고려 중인 것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연장이라는 생각이 깔렸있다고 친박계 인사들은 전했다. ⓒ 연합뉴스

    ◆ 서울시장 재보선 주민투표의 연장

    복수의 친박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선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말한다.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라는 정치행위를 강행하면서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게 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적지 않게 잃었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기본 생각이라는 것이다.

    친박계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적극 뛰어들 경우, 자칫 나경원 후보는 온데간데 없고 ‘박근혜 선거’가 될 수 있는데다, '안풍'과의 격돌이 부각돼 ‘대선 전초전’으로 판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경우 박 전 대표가 과도한 부담을 안거나 자칫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친박 핵심인사는 “박 전 대표는 자신의 방식대로, 최소한으로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로키(low-key) & 지역순회’의 콘셉트로 나 후보를 측면지원하게 될 거라는 예상이다.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도 “오 전 시장이 주민투표 한다고 시장직을 던지고 나가버린 선거에서 당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매일 서울시장 선거에 가서 유세같은 걸 할 수 있겠느냐. 다른 지역 선거도 있는데…”라고 덧붙여 박 전 대표의 나 후보 지원 방식을 짐작케 했다.

  • ▲ 박 전 대표의 선거 개입은 나경원-박원순 대결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사진은 청계광장에서 만난 나 후보와 박 후보. ⓒ 연합뉴스
    ▲ 박 전 대표의 선거 개입은 나경원-박원순 대결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사진은 청계광장에서 만난 나 후보와 박 후보. ⓒ 연합뉴스

    ◆ 자칫 안철수와 대선 전초전 될지도

    여유로운 독주를 거듭하던 박 전 대표에 처음 닥친 위기가 안철수 교수의 등장이었다. 추석 직전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역전을 당한 적도 있다. 그것도 정치권 인사도 아닌 한 서울대 교수에게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장 재보선에 박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발을 담근다면 안 교수의 선거 개입 명분을 만들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안풍'(安風)과 '박풍'(朴風)이 정면으로 부딪히며 '힘겨루기'가 펼쳐지는 시나리오다.

    그 경우 선거 구도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 교수는 지난달 6일 서울시장 후보를 박 변호사에게 양보한 이후 대선 출마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지만,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와 비슷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부담스러운 쪽은 박 전 대표다. 이겨도 본전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박 전 대표가 나 후보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하고 안 원장도 교수의 신분을 유지하며 선거에서 일정 거리를 두게 되면 양측의 정면대결은 내년 이후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이번에도 진보-좌파 진영에서 칼자루를 쥐게 생겼다. 안 교수의 선거 개입 정도에 따라 박 전 대표의 행보도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야권에서는 "학교 일에 전념하기 위해 선거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밝혀온 안 원장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나 후보가 박 후보를 거세게 추격, 전세가 엎치락뒤치락 한다면 선거판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글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안 교수는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단의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그는 박 변호사에 대한 선거지원 여부와 관련, “아직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박 변호사 측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는 “학교 일에 전념하기 위해 선거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불개입 태도를 보여 왔다. 지원쪽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딘 느낌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박 후보가 10%포인트 안팎으로 여유있게 앞서고 한나라당은 더 이상 이벤트가 없는데 굳이 안 원장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렇게 되면 나경원과 박원순은 없어지게 되는 것인데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구도로 몰고 가면 박 전 대표가 적극 나서기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