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땅이 마르지 않아 아무 일도 못한 채 보고만 있어요."

    지난 26~27일 폭우로 경안천이 범람해 침수된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 초록뜰 유기농 작목마을.

    생산량의 80%가 서울 가락시장에, 나머지 20%는 초중고 급식에 납품되는 80만㎡에 이르는 광주시 최대의 신선채소 단지이다.

    비가 그치고 복구작업이 시작된 30일 초록뜰 작목마을에서 만난 이창식(53)씨는 진흙을 뒤집어쓴 채 쑥대밭으로 변한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면서 한숨짓고 있었다.

    강물이 들이닥치면서 비닐하우스 안에 수확을 앞두고 있던 상추, 케일, 치커리, 아욱 등을 황토물이 휩쓸고 지나갔다.

    케일은 비닐하우스 한 동에서 약 150상자(상자당 4㎏)를 수확하는데, 시세(케일 상자당 약 3만원)로 추산하면 이씨는 32개동에서 경작한 케일 1억4천여만원 어치 손실을 본 것으로 이씨는 추산했다.

    침통한 표정의 이씨 앞에 흙도 묻지 않은 트랙터 한 대가 서 있었다.

    이씨는 "농작물을 수확하고 나서 밭을 갈아엎으려고 비가 내리기 전날 2천여만원을 들여 샀는데 수확은 커녕 복구에도 써먹지 못하고 있다."라며 한숨지었다.

    실제로 농민 6~7명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복구작업을 벌이는 대신 길가에 삼삼오오 모여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송근섭(52)씨는 "아욱만 비닐하우스 15동에 심었는데 하나도 건질 게 없다."라며 "자식 둘 대학등록금은 어떡하느냐."라고 한탄했다.

    서하리 농경지가 수해를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만 두 번째 수해를 입었다.

    7월 중순 장마 때 밭 대부분이 침수돼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고 새로 모종을 심었지만 보름 만에 다시 수해를 당했다.

    송씨는 "여기는 상습 침수지역인데 홍수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라며 "4년 전에 설치한 배수펌프장도 무용지물이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농민들은 당국이 대책을 세우지 않아 매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피해에 대한 보상도 문제 삼았다.

    이창현(48)씨는 "한 농가의 피해면적이 2천㎡(비닐하우스 약 4개동)가 넘어야 피해액의 일부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라며 "그보다 적은 피해를 본 농민은 아예 보상도 못 받는다."라고 말했다.

    광주시의 한 관계자는 "정부 지침이라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26~27일 폭우로 광주지역에서는 311가구 농경지 149㏊가 침수 또는 유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