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1~3회 본회의, 참석률도 저조예산만 계속 늘어, 올해는 40억 쓴다
  • 국무총리실이 예산만 낭비하는 ‘위원회 집합소’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에게 형식적 위원회 설치에 호된 질책을 한 뒤부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제89차 국민경제대책회의 겸 제11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국무총리·민간인 공동위원장 체제의 사회적 기업 육성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보고를 접하고 진노했다.

    이 대통령이 총리실에 위원회가 몇개냐고 묻자 임채민 총리실장은 “41개”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네트워크를 위해서 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용적으로 일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총리실이 위원회 집합소도 아니고…”라며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하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일을 안 하는 것과 같다”고 임 실장에게 혼을 냈다.

    또 “총리실에서 다 하다보면 뒤로 밀리고 총리 임기 중에 한 번도 (회의를) 못 열 수도 있다”면서 “나도 (산하에) 위원회가 10개가 안되지만 형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차라리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장관 한 명이 주관하고 다른 장관들이 참여하는 게 낫다”고 지시했다.

    현안이 생기면 범정부적인 대처를 한다며 총리실 산하에 위원회를 양산하는 관행을 지적한 것이다.

  • ▲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국무총리 ⓒ 자료사진
    ▲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국무총리 ⓒ 자료사진

    ◇ 총리실 산하 위원회 찾아보니…

    이 대통령의 말처럼 실제로 총리실은 넘쳐나는 위원회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만든 위원회가 설립 이후 효율적인 운영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막상 폐지하려고 했을 때 그 시점을 잡아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총리실 한 관계자는 “부처간 혹은 전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할 때 위원회가 방향을 정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실무 선에서 다 정리하는데다, 더 크게 불거지는 현안이 생길 때마다 해당 위원회는 후순위로 밀리고 당분간 잊히기도 하는 등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일리는 있다”고 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총리가 위원장인 위원회는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42개. 대부분 부처 간 이견이 있는 사안에 대한 논의를 위한 것이다 보니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이 중 총리실 소속 위원회는 9개. 국제개발협력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새만금위원회, 식품안전정책위원회, 외국인력정책위원회, 재외동포정책위원회,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가 그것이다.
     
    이들 위원회의 활동 현황을 분석해보니 이 대통령이 호통을 친 것도 쉽게 이해가 갔다.

    총리실 산하 9개 위원회 중 예산이 책정된 6개 위원회가 올해 쓰는 돈은 총 40억8천300만원.

    수십억원을 쓰지만 활동이 가장 활발한 규제개혁위원회와 정부업무평가위원회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위원회는 지난해 본회의 개최 횟수가 1~3회에 그쳤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의 경우 지난해 본회의를 두 번 열었지만 모두 서면 회의로 대체됐다.

    활동이 활발하다고 해서 다 잘 돌아가는 위원회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규제개혁위는 총 27번이나 회의를 열었지만 25명 위원이 전원 참석한 회의는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20명이 넘게 참석한 사례도 3번 뿐이었다.

  • ▲ 지난 3월 김황식 국무총리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새만금 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자료사진
    ▲ 지난 3월 김황식 국무총리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새만금 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자료사진

    ◇ 미진한 활동에도 예산은 증가

    사실 유명무실한 총리실 산하 위원회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미진한 위원회 활동에 대한 지적 속에서도 이에 대한 예산은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위원회 개최실적과 참석률을 거론하며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은 해당 이슈가 여러 부처에 이해관계가 걸쳐 있어 총리실에서 조율할 필요가 있기 때문 아니냐”며, “위원회 개최실적이 이렇게 부진해서야 제대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정 의원의 발언이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총리실 산하 위원회는 37억6천만원의 1년 예산 중 60%에 불과한 22억4천만원(9월 기준)을 집행했다.

    정 의원은 “한 해의 3/4이 경과한 시점에서 예산집행률이 60% 수준임이라는 것은 위원회 활동이 저조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총리실 산하 위원회는 연말까지 34억2천700여만원을 사용했고(집행률91.7%) 올해는 19.1%나 늘어난 40억8천300만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한나라당 한 국회의원은 "노무현 정부때 우리(한나라당)는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비난했지만, 실제로는 416개였던 전 정부 위원회보다 지금은 오히려 더 늘어난 431개나 된다"며 "유명무실하거나 정부 효율을 떨어뜨리는 위원회를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앞으로 총리실과의 합동 점검을 통해 불필요한 위원회는 통폐합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특히 총리가 아닌 장관이 주재할 수 있는 분야는 각 부처에 위원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