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비리, ‘진짜 몸통’ 무엇인가?,'학연''지연'으로 권-금력 쫓는 前근대적 인맥문화
  • 4조 5천억원이 넘는 불법대출과 2조 5천억 가량의 회계비리(분식회계 후순위채권 발행 등) 등 7조원대 규모의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그 규모와 수법에서 사상 최대-사상 최악의 부정부패 사건이다.

  • <뉴데일리> <조갑제닷컴> <올인 코리아> 등이 ‘소수의 광주일고 고교 동문들 사이에 잘못 형성된 학연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자 ‘지역감정 조장하냐?’는 비난과 반론이 몰아쳤다. 하지만 금융계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가 ‘학연'과 '지연'을 내세워 ‘권력과 금력을 쫓은, 소수 광주일고 출신 집단’이 일으킨 비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금호그룹 ‘창업공신’ 박상구 회장과 그 아들

    문제의 ‘소수 광주일고 출신들’이 왜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핵심으로, 왜 '학연'과 '지연'이 사건의 본질로 지목되는 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산저축은행’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부산저축은행은 1972년 부산상호신용금고로 시작했다. 1982년 4월 광주에서 온 박상구 현 명예회장이 인수한 뒤 사세가 급격히 커졌다.

    박상구 명예회장은 그 전까지는 ‘삼양타이어’ 대주주였다.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 씨의 장조카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사촌이다. 박상구 명예회장은 금호그룹의 모태가 된 광주여객 설립 때부터 박인천 씨와 함께 했다.

    박상구 명예회장은 1981년 갑자기 삼양타이어 주식을 25억 원에 모두 처분한 뒤 부산으로 근거를 옮기고, 부산저축은행을 인수했다. 박상구 명예회장은 1989년 1월 국회에 제출한 국정조사 청원서에서 그 이유를 ‘전두환 정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박박상구 명예회장은 목포상고 출신으로 김대중 前대통령의 1년 후배다. 이런 그에게 어느날 권노갑 前의원이 찾아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했고, 이때 쓰라고 돈을 줬는데 그게 정권의 미움을 사 사촌이 오너인 금호그룹에 강제로 지분을 넘기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때 처분한 ‘삼양타이어’가 지금의 금호타이어다.

    박상구 명예회장의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89년 당시 확인되지 않았다. 

    부산으로 자리를 옮긴 박상구 명예회장이 인수한 부산저축은행은 80년대 후반까지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90년대 초중반 대출 영업확대, 건설사와의 어음 거래, 외국 금융기관 자본 유치 등을 통해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2004년 박상구 명예회장은 자신의 지분 중 45%를 자녀들에게, 45%를 임직원에게 나눠준 뒤 일선을 떠났다. 2005년에는 자신의 남은 지분 10%를 털어 청산문화복지재단을 설립, 부산시내 150여개 고교와 광주광역시 2개 고교에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도 열심히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박상구 명예회장의 아들 박연호 회장이 사업을 물려 받으면서부터다.

    당시 부동산 열풍에 기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집중 투자한 것이다. 사업체로부터 들어오는 대출제안을 심사해서 대출을 결정하고 사업진행상황을 점검하는 것까지가 금융기관의 영역.

    그런데 박연호회장은 이런 금융기관의 금도를 넘어서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SPC(특수목적회사)를 120개나 만들었다. 금융기관이 직접 사업을 할 수 없으니, 이런 특수목적회사를 만들고 여기에 대리인을 내세워 원격 경영을 하면서 천문학적 대출을 해주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금융기관이 왼 손으론 금융 업무, 오른 손으론 사업을 한 셈.

    이런 사업들 대부분은 개발사업으로 자연히 권력을 향한 로비가 필요했고, 전남 신안, 인천, 울산 울주 등에서 벌인 로비 일부가 현재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고 있다.

     

    지역 명문 광주일고의 명예를 땅에 떨어드린 자들

    박연호 회장은 이같은 무리한 불법경영을 위해 믿을 수 있는 측근과 확실한 로비력을 갖춘 우호세력이 필요했다. 결국 ‘학연’과 '지연'으로 엮인 끈끈한 연대조직을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박연호 회장, 김 양 부회장(지분 9.62%), 김민영 부산저축은행-부산2저축은행장(5.27%), 오지열 중앙부산저축은행장, 금감원 출신인 부산2저축은행 문평기 감사 모두 광주일고 동문이다. 강성우 부산저축은행 감사(5.28%)는 ‘광주 출신’이다. 광주일고라는 말도 있고 아니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동문’을 믿은 결과 박연호 회장은 자기가 최대 주주이면서도 김 양 부회장의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골프장 건설 사업 때만 간간이 자기 의견을 표했다고 한다.

    김 양 부회장이 사실상 부산저축은행 그룹을 좌지우지했다.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부산2저축은행장 겸임)은 김 양 부회장의 손윗동서이고, 강성우 부산저축은행 감사는 김 부회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측근이었다.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11.17%)도 같은 고교 출신이다. 박형선 회장은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전남대에 다니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됐다. 1심에서 징역 12년, 2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10개월여 만에 출소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함께 징역에 처해졌던 이해찬 前국무총리, 유인태 前정무수석, 이강철 前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정찬용 前대통령 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 노무현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 멤버로 활약한 인사들과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박형선 대표는 '민청학련' 외에 5.18, 들불야학 사건과도 관계가 깊다. 그의 매제가 5.18당시 숨진 윤한봉 씨다. 박 대표의 친동생은 '들불야학 사건' 당시 숨진 박기순 씨다. 

    검찰은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을 구속했다. 경기 시흥의 납골당 사업과 관련한 불법대출 혐의 때문이다.

    민청학련 세대 박형선 회장에게 모아지는 정관계 로비 의혹

    일각에서는 그가 부산美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인 김현장 씨와도 친한 친구 사이이고, 노무현 前대통령이 김씨변호를 맡았던 인연으로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저런 관계로  인해 박형선 회장은 노무현 정권에서 '호남 마당발'로 통했다. 실제 박형선 회장의 해동건설은 지난 10년 사이 급격히 성장했다. 이런 점 때문에 검찰에서는 박씨가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부동산 개발사업 등을 벌이며 정·관계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핵심으로 보고 있다.

    KTB자산운용의 장인환대표도 눈여겨 보아야 할 인물이다. 김 부회장의 광주일고 7년 후배다.
    그는 부산저축은행이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지시에 따라 대손충당금 적립을 위해 유상증자를 했을 때, 삼성꿈 장학재단과 포스텍 장학재단에서 ‘사모펀드’를 내세워 1,500억 원을 끌어내는 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일에 관해 '억울하다'며 호소하고 있다. 
    KTB자산운용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에 수십억 원을 투자했던 ‘서울신용평가정보’와도 관련이 있는 곳이다. 서울신용평가정보의 등기임원 5명 역시 모두 광주와 전남 출신으로 짜여져 있다. 

    영업정지 직전 만기가 9달이나 남은 정기예금을 인출한 것으로 알려진 임상규 前농림부 장관도 광주일고 출신이다. 임 前장관은 박연호 회장의 사돈이기도 하다.

    김 양 부회장의 ‘브레인’ 역할을 했던 산경M&A캐피탈 김성진 대표는 전남대를 졸업한 공인회계사다. 대신증권 대표이사를 지낸 후 서울신용평가정보의 사외이사를 맡았다. 산경M&A캐피탈은 부산저축은행이 만든 120개 SPC중 29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연'과 '지연' 인맥지도에 더해지는 '금력'

    이들은 이런 '학연'과 '지연'을 통해 로비와 사업확장에 성공하자 영역을 점점 넓혀 갔다. '학연'과 '지연'을 넘어선 로비에는 그동안 축적한 '금력'을 사용했다.

    이 때 윤여성(56)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윤씨는  부산저축은행 내부에서 '윤 회장'으로 불렸고, 스스로 '광주일고 동문'이라고 말하고 다녔다지만,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종합건설업을 오래 하면서 쌓은 다방면의 인맥을 부산저축은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바로 그가 MB 측근 중 한 명인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과의 연결 고리로 주목받고 있다. 은씨는 부산상고-서울대를 나와 홍준표 한나라당 전최고위원이 검찰 강력부장 재작시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을 날릴 때 그 휘하에 있었다. 2003년 한나라당에 입당 부대변인을 거쳐 2007년 대선 당시 고승덕 현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BBK사건 변호에 주력했지만 2008년 공천에서 탈락했고, 그후 감사원 감사위원이 된 인물.

    검찰은 김 양 부회장의 측근이자 정관계 로비의 창구 역할을 한 윤여성을 구속했다. 은씨와 이들과의 인연은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씨는 2005년부터 2년간 부산저축은행의 고문변호사로 법률 자문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검찰 조사와 언론 취재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과 5개 계열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모두 박연호회장과 김 양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광주일고’ 동문과 ‘광주 출신’ 인맥들이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5개 계열은행의 지휘소 역할을 하는 그룹 임원회의 구성원으로 사실상 자신들이 만든 회사들에 대한 ‘대출’ 대상과 액수, 세부조건까지 일일이 결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그룹 임원회의 멤버들이 이 ‘학맥’과 '지연'을 이용해 권력층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검찰은 2008년 부산저축은행이 대전저축은행과 전주저축은행을 인수할 당시 이들이 동문을 통해 로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호남 지역 최고의 명문, 광주일고

    대체 박연호 회장은 왜 모든 일을 동문을 기반으로 추진했을까.
    광주일고는 고교 평준화 이전까지는 한 반에서 20등까지 서울대에 입학 한다고 할 만큼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호남지역 최고의 명문 고교다. 그만큼 유명인사도 많이 배출했다. 한국 사회의 지도층 가운데 두텁고 탄탄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은 어디를 목표로 로비를 했을까. 바로 외환위기 후 권력을 잡은 사람들에 접근할 수 있는 '학연'과 '지연'을 정조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전방위 로비를 했을 것이고, 그 결과가 폭풍적 성장인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도 문제점 지적

    '학연'과 '지연'을 통한 이같은 로비에 대해 김대중 前대통령도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2000년 2월 29일 김대중 前대통령과 김홍일 前의원은 이만의 당시 공직기강비서관(현 MB정부 환경부 장관, 교체대기중) 교체에 대해 전화통화를 한 바 있다.

    같은 날 오전에 있었던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前대통령은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 경북고 나온 사람은 무슨 특권처럼 행세했다. 그 다음에 경남 쪽에서 그런 일이 있었고 서울의 어떤 고교도 그랬다. 요새는 호남의 일부 고교에서 이런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고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일에 대해 오늘까지 참겠다. 오늘 이후로 그런 일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당시 김전대통령이 지목한 학교가 바로 광주일고다. 이때를 두고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던 이들은 ‘당시 목포 인맥과 광주일고 인맥 간에 경쟁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호남 인맥의 약진’은 따져보면 ‘광주일고’와 ‘목포 인맥’의 약진이었다. 부산저축은행 그룹은 명예회장이 ‘목포인맥’이고, 회장과 부회장이 ‘광주일고’ 인맥이라는 점에 관계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지난 18일 <조갑제닷컴>과 <뉴데일리>에 게재된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의 ‘광주일고 출신 금융마피아의 부산서민 착취사건’이라는 칼럼은 지금도 거센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역시 수구꼴통이다. 지역감정 조장하는 <올인코리아>나 <뉴데일리>는 자폭해라’와 같은 ‘폭언’이 난무한다.

    국민행동본부는 광주일고 출신들끼리 벌인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광고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하 조․중․동)에 실으려다 ‘거절’당했다.

    조․중․동은 당시 ‘특정 고교의 이름을 싣는 건 지침에 어긋난다’고 답했다 한다. <매일경제>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보도하면서 ‘특정지역 명문 K고교’라고 적어 경남고 동문회와 분쟁이 일었다. <MBC> 또한 마찬가지로 ‘특정지역 명문 K고교’라고 보도해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진짜 기득권 세력은 '고교동문 리그'

    언론조차 문제의 핵심에 선 고교 이름을 적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우리사회의 ‘진짜 기득권 세력’ 중 ‘고교 동문 리그’의 힘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고교 동문 리그’에는 지연과 학연, 엘리트주의가 결합돼 있다. 1970년대 고교 평준화가 되기 전에는 고교간에는 서울대 합격 숫자를 놓고 서열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 아래서 ‘명문고’ 동문회는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냈다.

    이런 행태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경북고, 경남고, 부산고 전주고 등 소위 ‘명문고’들은 40년 넘게 이런 ‘동문 리그’를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밀고 돕는 그런 인맥지도를 만들어 왔다.

    알게 모르게 정부, 정당, 국회, 기업, 교회, 언론 할 것 없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석이, '학연'과 '지연'이 씨줄 날줄처럼 엮여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학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끼리끼리' 뭉쳐서 '형님-아우' 하며 '좋은게 좋은거여' 하는 우리 사회의 오래 된 나쁜 관습과 문화가 바로 이번 사건의 진정한 몸통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