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상대로 영업하는 일부 몰염치 제자예전같지 않은 사제 관계, 만나기도 부담
  • “선생님, 차 한 대 팔아주세요.”

    “제자여, 날 찾지 말아라.”

    5월이면 문뜩 떠오르는 고마운 은사. ‘어떻게 지내시나’는 안부가 자꾸만 생각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은사를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지난 2000년 수원 M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현무(30)씨는 이달 초 취업을 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식사라도 대접하기 위해 고등학교 담임교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육청 홈페이지에 개설된 ‘스승찾기’에서 아무리 은사의 이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해당 교사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홈페이지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교육청에 전화 해봐도 개인정보 보호 정책 때문에 교사의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성남 C고등학교 근무 중인 강모(39) 교사는 더 황당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졸업한지 8년이나 지난 한 학생이 스승찾기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을 찾아왔다. 강 교사가 처음 임용돼 가르쳤던 첫 제자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는 다 큰 제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술잔까지 기울였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제자는 갑자기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했다.

    자동차 영업사원인 제자가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걸어 “차를 바꾸지 않겠느냐”는 영업을 시작했다. 강 교사는 “미안하다”며 거절했지만, 최근에도 계속 날아오는 영업 문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강 교사는 “동료 중에는 갑자기 찾아온 제자가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가더니 밤마다 전화로 ‘돈을 빌려 달라’며 보채는 통에 게시된 정보를 삭제한 교사도 있다”며 “굳이 졸업한 학생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 공개된 게시판에 개인정보를 올리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 ▲ 스승의 날 광주 광산구 수완중학교 학생들이 교사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다.ⓒ연합뉴스
    ▲ 스승의 날 광주 광산구 수완중학교 학생들이 교사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다.ⓒ연합뉴스

    예전 같지 않은 사제 관계에 교사들이 아예 그림자도 밟지 못하도록(?) 꽁꽁 숨어버렸다. 스승의 날이면 은사님을 찾아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아 드리던 흐뭇한 풍경도 점점 보기 힘들다.

    2008년까지만 해도 각 시·도교육청은 ‘스승찾기’ 제도를 통해 전체 교사의 근무지와 연락처를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했었다.

    이후 부정적인 사례가 이어지자 경기도교육청은 스승찾기 사이트에 교사가 자율적으로 직접 자신의 정보를 게시판에 올리는 방식으로 바꿨다.

    하지만 상당수 교사들의 아예 정보 등록 자체를 거부하는 실정.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스승찾기에 등록된 교사는 초등 7354명과 중․고등 7580명 등 총 1만5673명으로 전체 9만5000여명의 교사 중 16%(2010년 기준)에 불과하다.

    수원의 A 고등학교 교사는 “대부분 교사가 공문을 통해 스승 찾기 서비스를 알고는 있다. 하지만 서비스를 이용해 제자를 만난다고 해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며 “실제로 우리 학교 90명 교사 중 스승 찾기에 등록한 사람은 10명도 안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스승찾기 게시판 운영을 아예 폐지했다.

    대신 교육청 직원이 제자의 신원을 확인한 후 해당 교사에게 제자의 연락처를 전해주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지만, 연락처를 받은 교사들이 실제로 전화를 거는 사례가 많지는 않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5월이면 하루에도 수차례 스승을 찾고 싶다는 전화를 받지만 소식을 들은 교사들이 크게 반가워하지는 않는다”며 “예전 같지 않은 사제 간의 서먹한 관계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