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전 침몰한 러시한 전함 ‘바랴크호’ 깃발 영구임대 논란송영길 인천시장, 러시아측에 영구임대 가능성 언급 임대허가는 문화재청 소관, “언론플레이 한다” 비판
  • 107년 전 인천 앞바다에 가라앉은 러시아 군함 깃발이 세삼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깃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러시아아의 경제협력 증진을 앞세우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문제의 깃발은 러일전쟁이 일어났던 1904년 2월 9일 인천앞바다에서 일본해군과의 교전 중 침몰한 러시아 전함 바랴크호의 함기(艦旗)이다. 일본해군에 패한 바랴크호는 항복대신 자폭을 택했고 배는 수병들과 함께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 후 러시아인들에게 바랴크호와 그 승조원들은 영웅이 됐다.

    그런데 2002년 인천시립박물관 지하수장고에서 바랴크호의 깃발이 발견되면서 반환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정신을 상징하는 이 깃발이 발견되자 러시아는 즉각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반환이 여의치 않자 러시아는 대안으로 ‘장기임대’를 제안했다. 러시아의 장기임대 요구가 거듭되자 우리정부는 지난 2009년 9개월간 러시아 전역을 순회하는 전시회에 깃발을 대여해 주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바랴크호의 깃발 임대문제가 급물살을 탄 것은 작년 6월 송영길 인천시장이 당선되면서 부터였다.

    송 시장은 당선 후 러시아 정부와 깃발 임대협상에 나섰고 작년 11월에는 방한 중이던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2년간의 전시대여에 합의했다. 합의 후 깃발은 인천항을 방문한 같은 이름의 러시아 순향함 바랴크호에 실려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했고 이 모습은 러시아 전역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러시아에 전시대여된 이 깃발이 다시 논란을 빚게 된 것은 송 시장이 최근 깃발의 영구임대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송 시장이 영구임대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지역정가는 물론이고 학계와 문화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에 고속철도사업권을 넘겨주고 받아낸 것이 고작 외규장각 도서 한 권뿐이었고 나머지 외규장각 도서가 ‘장기임대’란 꼬리표를 달고 국내로 들어오는데 20년이 걸린 것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가벼운 처신이라는 지적이다.

    학계에서는 러일전쟁에 대한 역사적 성찰없이 깃발을 임대한 것에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깃발이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인 만큼 임대를 해 주더라도 학계와 문화계,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여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송 시장과 내년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러시아측의 정치적 의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인하대 사학과의 A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없이 송 시장과 러시아정부가 서로의 정치적 입장만을 생각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바랴크호 깃발 임대가 송 시장이나 인천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바랴크호 깃발을 러시아에 전시임대한 주무 기관은 인천시가 아니라 인천시립박물관이다. 문화재청에 깃발의 2년간 전시대여 허가(문화재 반출허가)를 신청한 곳도 박물관이다. 그리고 문화재 반출여부는 문화재청이 결정한다.

    깃발 임대와 관련해 이를 허가할 것인지 여부는 송 시장이나 인천시가 아니라 문화재청이 결정할 사안이다. 기간연장을 통한 영구임대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바랴크호 영구임대 논란과 관련해 “영구임대라는 말은 아예 나오지도 않았고 관련법상 문화재 반출은 전시대여가 원칙”이라며 “영구임대는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깃발 임대는 인천시립박물관이 신청한 것이며 인천시와는 관계가 없다”며 “영구임대는 그 쪽(인천시)의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기간연장을 통한 영구임대와 관련해서는 “(인천시립)박물관이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대여기간 연장허가를 신청하면 그때 가서 사유를 검토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인천시와 인천시립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시장님이 공식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연장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현재 바랴크호 깃발은 인천시립박물관과 러시아해군중앙군사박물관의 협정에 따라 2010년 11월 11일부터 러시아에 전시대여 되고 있다. 임대 만료기간은 2012년 11월 1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