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방재기관 인력·예산 따로 관리재난 이후 땜질 처방만…예방 위한 대책, 예산, 훈련 미흡
  • 日센다이 대지진은 방재대책에서는 세계 제일이라는 일본마저 비틀거리게 하고 있다. 15일 후쿠시마 원전외벽이 폭발하고 수소가스와 방사능 물질이 주변에 퍼졌다는 소식이 나오자 일본인은 물론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재앙에 맞설 재난방재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을까.

    이원화된 재난방지조직·예산

    우리나라 소방방재 관련 조직과 예산은 인구나 그 중요성에 비해 상당히 작은 편이다. 대부분의 예산과 인력은 재난예방이 아니라 재난복구와 피해자 구호활동에 투입된다. 이마저도 대부분 국지적인 피해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난방재부서의 시작은 민방위본부다. 하지만 민방위본부가 주로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비한 탓에 재난방재는 부수업무처럼 여겨졌다. 민방위본부가 해체된 후에는 소방방재청과 지자체가 함께 홍수나 태풍피해, 화재 등 국지적 피해에 주로 대응하도록 되어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 위험이 커지면서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훈련도 실시하고 있으나 그 중요도는 화재, 태풍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여기다 조직과 예산도 소방방재청과 지자체로 이원화되어 있다. 특히 재난방재업무를 수행하는 소방관들 대부분이 광역 지자체 소속으로 되어 있다. 각 지자체가 소방관들을 채용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지자체 예산이 풍족하지 않을 경우에는 방재담당 부서의 예산과 인원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구조도 문제다.

    이는 일본의 경우 지자체 권한이 상당히 강하고 1960년대부터 재난대책을 위해 대부분의 정부부처와 민간기업, 지자체가 재난대책 네트워크를 강화해 빈틈없는 재난대책체계를 형성한 것과는 달리 형식만 따라한 것이라 빈틈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美·日·佛의 재난방재

    우리나라 소방관의 전체 인원은 3만6711명, 소방방재 관련 전체 예산은 연간 2조4천억 원(소방방재청 7,400억 원 포함) 가량이다. 한편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소방청과 지자체가 함께 관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조직과 예산규모면에서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

    일본의 소방관 수는 15만4000여 명, 소방서는 1600여 개가 넘는다. 일본 인구가 우리나라의 세 배 가량 된다는 점을 고려해도 우리보다 훨씬 많다. 여기다 의용소방대와 같은 민간구호요원이 2만9000여 명 있고, 국제소방구조대원도 7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상황 때는 총리실에서부터 정보기관, 자위대, 군이 총동원되고 전력회사, 방송사, 철도회사 등이 재난대책본부를 꾸려 협조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재난대책조직과 예산이 더 거대하다. 원래 국방성 산하 민방위청으로 출범한 ‘연방위기관리청(FEMA)’은 자체 직원만 2500여 명에 연간 예산은 70억 달러(한화 약 9조 원)에 달한다. 22개 주요안보부처들을 통합한 국토안보부(DHS)가 이들을 지원하게 된다. 연방위기관리청은 국가위기 시 타 부처의 위기관리부서를 관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미국은 또한 각 지자체 마다 긴급대응팀(CERT)을 구성해 놓고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연방위기관리청이나 국토안보부 요원들이 투입되기 전까지의 초동조치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막강한 권한과 예산 때문에 음모론자들은 FEMA를 ‘정부 위의 정부’라고 부를 정도다.

    프랑스의 재난대책조직은 독특하다. 프랑스는 긴급의료구조대(SAMU)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SAMU는 각 지자체에서 만들어 운영하는 순수민간조직이다. SAMU는 행정기관과 군, 경찰 병력뿐만 아니라 헬기 등의 장비도 강제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SAMU에는 군 출신 요원 1800여 명을 포함해 모두 2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 20여 곳의 비행장에서 35대의 헬기를 동원해 응급구조활동을 벌인다.

    선진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 ‘예방’이냐 ‘사후처리’냐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재난방재대책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예방’에 대한 태도다. 우리나라 재난방재조직과 예산은 대부분 ‘사후 처리용’인 반면 선진국은 전체 예산의 70~80%를 재난피해 예방을 위해 사용한다. 조직 또한 ‘재난예방연구’를 위한 조직이 많다.

    재난대책 내용과 국민들의 태도도 문제다. 훈련도 없고 비상시 대응요령과 비상식량-식수를 준비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민방위 훈련은 몇 달에 한 번 씩 실시하는데 이마저도 사이렌이 울리면 잠깐 하던 일을 멈출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련을 무시한다. 15일 실시된 민방위 훈련에서 쓰나미에 대비한 훈련도 있었다고 하나 ‘이벤트성 훈련’일뿐 실제 효용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건축물의 내진설계도 강제조항(2005년 7월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 32조, 3층 이상 건물 건축 시 내진설계가 필수이행사항)이기는 하나 소방방재청이나 전문기관에서 이를 감독하는 게 아니라 건축사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쓰나미나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도발 위협도 일종의 ‘재난’으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 이런 ‘재난’을 당했을 때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질서정연하게 대응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각 가정에 비상물자와 방독면, 보호의 등을 구비하는 건 일단 논외로 하자.

    지금 우리 모습을 보자. 정부와 정치권이 재난예방에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고,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속보경쟁을 하며, 시민들은 민방위 훈련조차 무성의하게 받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센다이 대지진의 10분의 1 규모 재난만 와도 우리 사회는 허무하게 무너질 것 같다. 아니 후쿠시마 원전 외벽폭발로 생긴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에서 일부 검출되기만 해도 국민 전체가 '공황(Panic)'에 빠질 것 같다.

    연평도 포격과 같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응하려면 일본 센다이 대지진의 피해상황을 지켜만 볼 게 아니라 일본 국민과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잘 살피고 우리나라 재난대응조직들을 복구현장에 대규모로 파견해 현장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