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아껴 재원 마련하겠다->증세로 이어져한국도 이미 조짐 보여, 신중한 토론 있어야
  • 복지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예산 낭비를 줄여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며 유권자들에게 꿈같은 복지 혜택을 약속했지만, 막상 정권을 잡은 뒤 실현을 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뉴스네트워크 NNN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9%가 공약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무상 복지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국민들도 요즘엔 공약의 허상을 깨닫고 있다는 말이다.

    이 같은 일본 복지정책의 안타까운 말로(末路)는 최근 ‘3무1반(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을 기치로 내세운 민주당을 위시한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 고속도로 무료, 아동수당 지급… “모두가 ‘허상’이었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선거에서 고속도로 무료화, 아동수당 등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약을 발표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이 정책에 필요한 재원은 약 16조8000억엔(225조7100억원). 민주당은 당초 이 금액을 세금이 아닌 예산 절감으로 조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과는 국민이 내야하는 세금만 늘어나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일본은 일부 고속도로 무료화를 위해 연간 1조3000억엔(17조4000억원)을 퍼부었다. 그 결과 고속도로 무료화 구간은 자동차 정체가 2~3배 가까이 심해졌고 자동차 사고도 빈발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여기에 모두의 세금으로 ‘운전자’들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역차별 심리가 확산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때문에 최근 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80% 이상이 고속도로 무료화에 반대했다.

    중학생 이하의 모든 아동에게 국비로 월 2만6000엔(34만7800원)을 지급한다는 아동수당도 최근 긴급 수정됐다.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자 민주당 정부는 당초 약속했던 액수의 절반인 1만3000엔만 지급했다. 부유층에까지 일괄적으로 돈을 지급하는 바람에 정작 필요한 다른 사업의 예산이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이를 양육하지 않으면서도 각종 편법을 동원해 부정으로 수당을 받은 사례도 6000건 이상 적발됐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재정상황이 열악한 지자체는 아예 지급을 거부하는 추세다.

    ◇ 대한민국도 예외 없다. 벌써부터 조짐 보여…

    일본의 경우 당초 공약재원을 예산 절감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공무원 인건비 삭감, 국회의원 수 감축, 산하기관 보조금 감축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목표치인 17억엔은 커녕 1/4에도 못 미치는 3조9000억엔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무상이라는 달콤한 공약만 생각하던 국민들에게 세금을 올리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야당은 ‘공약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며 총공세를 펼쳤고 결국 집권 여당 지지율은 19%대로 추락했다.

    이미 무상복지 정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전면 무상급식을 지난해 실시한 경기도와 올해부터 시작하는 서울시에서도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올해 무상급식에 1162억원을 배정한 서울시교육청은 영어전용교실 설치 예산 30억5600만원과 과학실 현대화 예산 24억6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또 교육과학기술부가 신설 학교(7개 학교 대상) 설립 명목으로 교육청에 지원한 예산 1452억원 가운데 1000억원 이상이 무상급식으로 편법 동원됐다.

    경기도교육청도 '가정보육교사' 지원금 9억8000여만원을 전액 삭감하고 학교교육여건개선시설사업 예산과 교육격차 해소사업 예산도 지난해 대비 각각 823억원, 279억원씩 줄였다.

    무상급식 하나 때문에 배움의 전당의 학교 수업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이 여파가 교육 한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 무상급식 공방으로 꼭 필요한 건설, 교통, 복지 분야에 예산이 줄어들어 8500억원 가량의 시민 피해(서울시 추산)가 일어났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은 오히려 여당 보다 야당에서 더 가깝게 받아들이고 있다.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당선된 경기도 A지자체장도 "사실상 지금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로는 무상급식은 불가능한 공약"이라며 "이미 올해 무상급식을 위해 배정된 수백억원의 예산으로 각종 시책 사업이 여기저기서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