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정치인 선택한 것도 유권자”“정치지망생, 왜 정치를 하려는지 보면 알아”
  • 매서운 추위로 세상이 모두 얼어버린 것 같던 지난 12월 30일, 우리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 회관에서 이한구 의원(한나라당, 대구 수성갑)을 만났다. 이한구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 소장과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그와의 대화 주제는 ‘한국 정치인은 모두 썩었는가.’ 현직 국회의원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주제였다. ‘미스터 쓴 소리’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한구 의원이 또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선진화 홍보대사(이하 <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인터뷰 주제는 다소 껄끄럽지만 ‘한국 정치인들은 모두 썩었는가’입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대물’등의 정치드라마나 언론을 통하여 보는 정치인들은 모두 부패하거나 비합리적인 모습으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또한 의원님과 같은 실제 정치인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한구 의원(이하 <이>) 드라마에 나오는 정치인들마다 하나같이 이상하게 나오고, 뉴스에서도 정치인들에 대해서 좋지 않게 나오죠?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언론에서 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부 믿어서는 안 된답니다. 사람도 모두가 다른데 정치인이라고 전부 묶어서 평가 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이라고 한마디로 평가할 수 없고 연예인이라고 전부 연예인들은 어떻다고 평가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선> 그렇다면 훌륭한 정치인들도 계실 텐데요. 우리나라에선 왜 훌륭한 정치인들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인지, 그게 언론의 영향인지 정치적인 이유인지 궁금합니다.

    <이> 언론의 영향도 있을 수 있고 정치제도의 문제점도 있을 수 있고 유권자의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훌륭한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태도가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 탓하지 말고 매사를 생각할 때 옳은지 그릇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옳다고 생각되면 손해를 각오하고 나아가야죠. 모두 이렇게 옳은 길을 선택하면 그 사회는 잘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에게 손해가 있을 것을 의식해 자꾸 변칙으로만 가게 되면 그 변칙이 확산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어떻게 선택할 것 인지는 우리한테 달려있답니다.

    그 다음 정치제도라는 것은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정치인들이 모였다 헤어졌다 하는 것입니다. 이때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은 이슈에 따라 틀린데, 쉽게 모였다 헤어지는 유연성 있는 정치제도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끝으로 어떤 정치인을 대표로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유권자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몇 년간 성과를 종합평가한 뒤 투표해야 합니다. 유권자가 정치인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또 여러 후보자의 정보를 가져야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이런 측면에서 시스템적으로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다 보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정치인을 선택하는 건 유권자

    <선> 국민들이 보는 훌륭한 정치인과, 정치인이 보는 훌륭한 정치인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아까 말했던 것과 조금 비슷할 것 같아요. 훌륭하다는 것은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습니다. 정치인이 훌륭하다는 표현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면 절대로 훌륭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웃음). 그런데 책을 보면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정치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정치인의 역할이란 나라 전체의 차원에서 생각하면서 현 정부가 제대로 일하도록 견제하는 것입니다. 국회가 생긴 이유가 다른 게 아니잖아요. 납세자들이 내는 세금으로 정부 관료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 채우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라고 국회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원래 만든 목적이 그런 겁니다.

    그 일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만 지방에 있는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을 그렇게 보기가 힘든 게 현실입니다. 정치인들이 뭐 아주 거창한 외교관계 이야기만 자꾸 하고, 국방관계 같은 이야기만 하고, 미래 30년 뒤의 이야기를 하니 일반 국민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보기에는 ‘감(感)’이 안 오는 것입니다. ‘뭐 저런 이상한 친구가 있나’라고 생각하기 딱 좋게 되어있습니다.

    사실은 정치가 발달된 선진국에서는 앞에서 정치인들이 말한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국회라는 곳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국회이고 좋은 정부입니다. 국회에 모여서 할 이야기는 그것 밖에 없고 나머지는 민간에서 자율로 하도록 되어 있고, 될 수 있는 한 간섭을 안 하는 것이 이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전체에 관계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준비시키는 것이 정치지도자나 국회에서 할 일입니다.

    따져보면 하나는 미래에 관계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전체 사회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그런 일들입니다. 하지만 지역주민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이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정치인과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간극(間隙)이에요.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그 간극이 좁은 것이고 좀 부족한 나라에서는 그 간극이 넓은 것입니다.

    돈, 명예, 권력 모두 쫓다간 모두 잃을 수도

    <선> 의원님께서는 항상 소신발언을 하셔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이 붙으셨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여당을 그리 좋게 안 보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의원님을 2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한 것을 보았습니다. 정치적 손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신 발언을 하시는 의원님만의 정치적 소신을 듣고 싶습니다.

    <이> 일단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국회의원을 시작했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국회의원의 직책이라는 게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고 문제가 있으면 시정시키라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국회의원으로 일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수입으로 따지면 국회의원이라는 게 수지 맞는 일은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경제연구소장 할 때는 한번 강의하면 200만 원이고 1년에 세금을 몇 억씩 낼 정도 많이 벌었습니다. 수입을 위해서라면 제가 경제연구소장을 하지 국회의원은 안 할 겁니다.

    원칙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사람이 명예를 원하면 명예를 찾아가고 돈을 원하면 돈을 찾아가야지, 명예, 권력, 돈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동시에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느껴질 때는 있을 테지만, 그것을 절대로 오랫동안 동시에 누리도록 하늘이 허용하지 않는답니다.

    이런 생각으로 저는 2000년 국회의원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물론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은 제대로 보면 명예나 권력, 돈을 얻을 수 있는 일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실제 국민을 위한 일에 충실하다 보면 간혹 손해도 볼 수 있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정상인데 나보고 ‘미스터 쓴 소리’라고 별명을 붙이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누군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했을 때 그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생각해보면 나중에 정치인이 된 후의 행동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행동기준에 따라 행동하면 결과는 본인도 모릅니다. 그에 대한 심판과 평가는 오롯이 유권자들의 몫입니다.

    제가 신념에 따라 발언을 하다 보니 정치적인 손해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손해는 있을지 몰라도 저는 우리 국민수준이 소신 있는 정치인이 손해 보도록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쏜 화살이 먼저 과녁에 맞는 건 아니다

    <선> 의원님의 젊은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이> 저희가 자란 시대와 지금 여러분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때 어떻게 보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자신이 없네요. 하지만 최소한 이 얘기는 해 줄 수 있을 것 갔습니다. 저희 시절에는 학생 때에도 개인이 잘돼야 한다는 가치관 보다는 ‘같이 잘돼야 한다, 나라가 잘돼야 한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저희 또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해서 개인보다는 공동체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빠른 성장을 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을 하면서도 협력을 했습니다. 남을 누르고 내가 잘 되는 것은 경멸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먼저 쏜 화살이 무조건 먼저 과녁에 맞지는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가 더 중요합니다. 될 수 있으면 원칙대로 정도(正道)로 가고, 늦게 시작하더라도 옳은 길로 가면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절대로 남을 해치면서 나아가려 하지 마세요.

    또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부자는 아니라도, 절대로 굶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 우물을 열심히 파다 보면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좀처럼 찾지 않는 분야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오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꾸준히 노력했으면 합니다.

    여러분,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저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할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뭐든지 하고 싶은걸 하면 언젠가는 그것을 쓸 날 이 올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세요.

     

    <인터뷰 후기>


  • 우리는 인터뷰를 통해 이한구 의원이 왜 2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의원이 설명해 준 한국 정치의 문제점, 그가 가진 정치적 소신,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 등은 언론이 정해준 ‘틀’ 속에서 꾸며진 게 아닌, 생생한 그의 인생 이야기였다.

    인터뷰 내내 유권자의 역할을 강조하며 국민을 믿는 이 의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같은 젊은 대학생들이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일부 정치인의 잘못을 보며 그들을 경멸하면서, 정치 자체에 불신을 가지고 무관심해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채찍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유권자로서의 권리와 책임이었다.

    이 의원과의 인터뷰는 연말의 얼어붙은 날씨만큼이나 싸늘한, 정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을 녹여주는 ‘따뜻한 인터뷰’였다.

     

    인터뷰 진행: 한국선진화포럼 7기 홍보대사 김조희, 박인혜, 안승민, 오지섭, 한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