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을 버는 것은 기술,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기술적으로 지혜롭게 벌어서 예술처럼 아름답게 돈을 쓰는 이가 있다. 뉴욕 뉴저지 사회에서 꽤나 알려진 가장 큰 한국인 로펌을 이끄는 앤드류 박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43살 적지 않은 나이다, “세상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우선 좋은 부모님으로부터 아이비리그만큼 멋진 가정교육을 받았고, 후원자로부터 진짜 아이비리그를 다닐 수 있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유학생으로 온 착한 처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좋은 아들을 얻었고......”

    그의 한국이름은 박인호(朴仁晧), 어질 仁(인)자에다 빛날 晧(호)자를 쓴다. ‘외롭고 어두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인호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그는 이미 10년 전인 33살의 나이에 로펌을 만들었다. 변호사가 된 지 17년, 로펌을 만든 지 10년,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인 중에서 가장 큰 로펌을 이끌고 있다. 그가 해결한 사건 만도 2만 여건에 이른다. 돈도 좀 벌었다. 뉴욕시티 맨하탄의 좋은 빌딩의 높은 곳에 입주해있는 그의 맴버는 변호사만 11명, 그 부속직원까지 총 23명에 이른다.

    지난 3월의 어느 날, 뉴욕의 플러싱 노던 162가에 새 디자인의 대형 빌보드 광고가 등장했다.

    박 변호사는 "그 동안 플러싱 지역의 큰 빌보드 광고들은 대기업들이 차지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인 로컬 비즈니스들의 자존심을 살리고 플러싱이 한인 상권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광고는 1년간 게재된다. 그는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라고 자칭한다. 

    복잡한 도시 뉴욕, 이 위험한 도시에서, 교통체증과 함께 불안전한 기계 불안전한 인간은 늘 사고가 날 위험에 처해있다. 영어권에 살면서 영어가 서툰 한인들을 위해 로펌의 맴버들은 주로 한인 변호사들로 구성했다. 그렇다고 수입원이 모두 한국인은 아니다. 대략 30%정도의 사건은 타민족 의뢰인들이 차지한다. 

    교통사고 사건은 참 알 수 없는 아이러니가 많다. 정말 케이스를 겪어봐야하는 것들인데, 가벼운 접촉사고로 수술을 두 번 씩이나 하는 경우도 있고, 차는 완전히 파손되어서 폐차장행을 해도 사람을 멀쩡한 경우도 있다. 사건을 잘 살펴보지 않는 한 예측할 수 없는 것이 교통사고 사건이라고 한다.

    그는 실로 인간시장에서 일한다. 교통사고는 예고하고 나지 않는다, 목사부터 신부님, 스님, 종교지도자는 물론 교수 학자들부터 거지와 노무자들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사건 의뢰가 들어온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건이나 보상보다는 인간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사고 다른 결과’ 이 말은 한인사회에서 아주 유명한 광고카피다. 그의 사건 수임 건 수 보다 더 유명한 광고처럼 그는 많은 사건을 처리했다.

    승률 95%, 그는 스스로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5%의 불만족이 있으니, 힘겨운 날도 있다. 새벽이나 밤중에 전화를 하면 박변호사가 직접 전화를 받는다. 그의 로펌은 24시간 열려 있다. 그의 돈 역시 남들처럼 쉽게 번 돈이 아니다. 밤잠 못자며 고군분투하여 쌓은 재화들이다. 돈벌레에서 기부천사로 거듭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민자의 아들 1.5세로 살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부모님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천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콜롬비아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장학금을 조건부로 받았기 때문. 학점이 A이라야만 다시 다음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공부했고, 해마다 후견인에게 평점 A의 성적표를 발송해야 했다. 그리고 법대는 융자학자금으로 졸업했다. 그 학자금을 지난해에 다 갚았다. 법대융자금을 갚는데 16년이 걸렸다. 

    “저도 장학금으로 공부했습니다, 이젠 누군가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장학재단을 설립 했습니다”. “한인사회 어른들께서 기꺼이 장학재단의 이사를 맡아 주셔서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는 박변호사는 진정으로 한인사회의 화합을 원하는 한국인이다.   

    그가 미국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10살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어머니는 동양식품점을 운영했다. 그도 다른 1.5세들처럼 부모님의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컸다.

    2남 3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더 책임감이 컸다. 어려서는 집안의 식품점에서 일을 거들어야 했고, 좀 더 커서는 신문배달, 더 커서는 각종 업체를 다니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보석회사, 주유소, 호텔, 식당웨이터, 서빙 일 등등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봤다. 1달러의 가치를 배웠고,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배를 타고 참치잡이 어선에 승선한 적도 있었다. 이 참치잡이 어선을 탔던 것이 정말 큰 교훈을 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승선해서 석 달, 참치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처럼 많은 교훈을 얻었다. 호수처럼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폭풍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돌고래떼들의 쇼를 보기도 하고 집채만큼 커다란 고래가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삶과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놓여있는 관계의 형성과 친화력 등을 익힐 수 있었다. 그 동력은 훗날 사회생활을 하면서 웬만큼 힘든 것들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의 발원이 되었다고 한다. 

    변호사가 된 것은 아버님의 영향이었다. “친구의 억울한 법정 현장을 다녀온 후 아버님이 한 말씀이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방황하던 시절, “자녀 중 한 명은 변호사가 되어서 그런 억울한 일을 안 당했으면 한다”던 그 말씀이 떠올라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의 밑에서 일하면서 눈치도 봐야하고 늘 스트레스 받으며 귀가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종종 박변호사는 결심한다, 오너가 되어서 내 회사를 직접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결국 자신이 직접 끌고 가는 변호사 그룹의 오너가 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바르트의 말이다, ‘한사람의 훌륭한 어머니는 백 사람의 스승보다 낫다’고. 박변호사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천 명의 스승보다 더 위대했다.

  • 좋은 성적으로 콜롬비아를 졸업할 무렵, 유학생으로 온 착한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다. 맥도날드에서 가장 저렴한 햄버거로도 만족할 줄 아는 소박한 여성이었다. 가난한 대학생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준 착한 마음씨에 반해 청혼을 했다. 이민을 와서 고생한 아내를 앉혀 놓고 큰절을 한 아버님으로부터 아내를 존중하는 마음씨를 배웠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사는 근본은, 다 부모님께서 보여준 화목한 모습을 통해서 얻어진 아이비리그타입의 고품격 가정교육 덕분이라고 밝힌 박변호사는 자신이 좋은 가정을 이끄는 원동력은 ‘책임’이라고 말한다. 

    가정의 달 오월이 가고 있다. 가정의 해체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당신의 가정을 과연 안전하십니까? 이 질문에 긍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지각 있는 변호사임에도 ‘이혼’이라는 단어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할 단어라고 힘주어 말한다. 억지 같은 이야기지만, 이혼이 없다면 굳이 이혼을 들먹일 필요 없이, 그냥 죽는 날까지 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만이 인간의 소명처럼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가정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받고 한인 최고의 로펌을 이끌고 있는 그의 맨토는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당신의 멘토는 누구입니까?

    “저의 멘토는, 첫 번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국으로 주신 아버님이십니다. 아버님은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저와 형제들을 모두 데리고 조상의 묘에 성묘를하고 숭배해야할 조상들에 뿌리와 한국 혼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젊은 청춘을 바쳐 우리 오남매에게 삶의 터전을 물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가정교육과 실천을 통해 화목한 가정에 대한 메시지를 주신 분입니다.

    두 번째의 맨토는, 성경에 나오는 갈렉입니다. 이스라엘정탐을 나온 12명의 전사 중 한 명이었던 갈렉은 믿음의 정신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물리치고, 여호수아와 함께 축복의 땅으로 갑니다. 갈렉같은 믿음의 정신으로 반대하는 무리들을 꺽고 당당히 나와서 구원의 믿음과 화합의 율법을 지킨 그의 정신을 본받고 싶습니다.

    세 번째의 맨토는, 카네기입니다. 카네기를 통해서 봉사정신과 사회에 환원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삶을 더 확실하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웬만한 해외여행은 다 다녀왔다. 유럽, 노르웨이, 동남아도 여러 차례 다녀왔고, 아이를 위해서 특별한 교육보다는 많이 보여주는 여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부부도 가족여행을 통해 화목한 가정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여름휴가로 아버님을 모시고 중국-한국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아버님께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선물할 수 있고, 아이에게는 조국을 배우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터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글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주말에도 여전히 바쁘다, 일요일에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 서점을 뒤지기도 하고, 쇼핑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서 백화점을 통째로 걷기도 한다. 

    “아이가 소설 같은 픽션보다는 넌픽션이나 전기를 읽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한 간접경험으로 삶을 배우기를 바라는데, 정작 아이는  픽션종류인 해리포터 시리즈를 더 좋아합니다.”

    그가 미국에 와서 1.5세로 살아가야했던 그 나이의 아들, 이제 11살인 아들에게 그는 좀 더 현실적인 것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좀 더 실천적인 삶을 바란다. 

    복에는 ‘좋은 복’과 ‘나쁜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논리는 박변호사만의 철학인 것처럼 보이는데….

    “좋은 복은 우리 모두를 사회전체를 생각하는 복이고, 나쁜 복은 우리가족 우리식구, 내 사람들만 생각하는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10살에 이민 온 박인호는 정말 잘 컸다. 너무 유창한 한국어로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좋은 복’을 지어야한다고.  ‘강력한 앤드류 박’은 한국커뮤니티의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 보였다.

    영국 시인 키이츠는 말했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아름다운 삶을 지켜보는 것 또한 기쁨이다. 우리는 빌게이츠나 록펠러나 카네기를 보면서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는다. 그들은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인류애의 표본들이다. 

    앤드류 박은 그들의 삶을 본받아 기부천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각종단체들에 기부금을 전달해왔다. 불우이웃돕기성금부터, 퀸즈한인회에 후원금, 한미충효회에 후원금, 경로센터 후원금 기탁 등 그의 기부행위는 이루 다 섬길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러 한인단체들에 기부해왔다, 이에 뉴욕 퀸즈 지역에 있는 <109경찰서>로부터 앤드류 박 변호사는 ‘지역사회 봉사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제까지 내가 받았던 도움을 재능 있는 차세대 한인들을 돕는 것으로 환원하고자 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혔다. 장학생의 선발기준은 한인사회를 잘 아우르며 끌고 갈 수 있는 재능 있고 화합정신을 가진 재원을 찾아내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잘하는 민족정서를 좀 찰지게 바꿔보고 싶은 것이 박변호사의 작은 소망이다.

    얼마 전에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고, 한국인들의 터전이기도 한 퀸즈의 한 모퉁이에 내 건 대형전광판처럼 ‘강력한 변호사 앤드류 박’, 그의 광고전략은 남달랐다. 

    그 높은 곳의 거대한 전광판보다 더 거대한 그의 꿈은 ‘청마靑馬의 깃발’보다 더 멋지게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또 성경의 갈렉처럼 믿음의 정신으로 동포사회를 이끌 것이고, 어느 날 그는 카네기처럼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갈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아름다운 행보를 맑은 눈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글=전옥령 뉴욕통신원, 사진=앤드류박 로펌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