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박길연 외무성 부상의 29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은 작년에 비해 강도가 세졌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국과 미국 정부의 강경 대응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28일 연설에서 박 부상의 연설 핵심은 `북한의 핵정책은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제재를 앞세우고 대화를 하겠다면 자신들은 핵억지력 강화를 앞세우고 대화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 단적인 예다.

    당시 미국이 6자 회담 재개를 촉구하면서도 사전에 북미 양자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실제로 북미 간 대화를 위한 사전 조율 작업이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 나온 이 발언은 미국 측을 압박하면서 조속한 양자 대화를 촉구하는 의미로 해석됐다.

    더욱이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끝나고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북.미 관계의 가시적 진전은 없고 오히려 유엔 등을 통한 대북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측에 '성의 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의미도 내포돼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미국의 핵 항모가 우리 바다를 항해하는 한, 우리의 핵억지력은 포기될 수 없다. 오히려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연설의 핵심이었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미 간 긴밀 공조로 북한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이날 박 부상이 연설 곳곳에서 천안함 사태 이후 전개됐던 한.미 군사훈련을 비방하고, 미국을 `평화의 파괴자'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우리 정부의 조사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 그 반증이다.

    특히 한국 정부에 대한 판이한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박 부상은 이날 현 한국 정부에 대해 "통일과 공동번영, 화해를 향한 전진인 2000년 6.15 공동성명과 2007년 10.4 선언을 거부하고, 반통일적이고 대립적인 이른바 `3단계 통일방안'으로 남북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에는 `김정일 장군님의 아량'이라는 상투적 전제를 달긴 했지만 "북남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하면서 대남 비방을 일절 하지 않았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해 연설 때는 "최근 북남 관계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부정하는 정권이 출현하여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면서 "역사적 북남 선언들이 남조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무시당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 정부를 정조준해 올해 연설은 그 때 수준으로 회귀한 셈이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남북 긴장이 직접적 원인이겠지만, 지난해 추진됐던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사실상 물 건너 간 현실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남북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도 엿보였다.

    그가 천안함 사건 관련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언급하면서 "모든 관련 현안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남북 대화에 즉각 착수하라는 것이 의장성명의 권고사항"이라고 말한 것은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우회적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박 부상의 기조연설이 끝난 뒤 유엔주재 한국 대표부 박인국 대사는 북한이 천안함 조사를 우리 정부의 일방적 조사라고 주장한 데 대해 반론권을 통해 "합동조사단 발표는 미국.영국.호주.캐나다.스웨덴 등 5개국 전문가가 참여해 객관적이고 과학적 조사를 통해 도출한 결과"라면서 "안보리 의장성명은 한국에 대한 추가 도발 행위 금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답변권을 통해 "한국 측의 주장은 일방적이고 객관적이지 않다"며 자신들의 검열단 파견 요구를 수락할 것을 재차 촉구하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한편 박 부상은 이날 연설에서 최근 대장 칭호를 얻고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