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해결' '나는 예외'가 판치는 부패-불공정 정착'똥돼지' 한마리로 끝? 이명박 정부의 진정성 보여야
  •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이야기했다. 5월 말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젊은 세대 등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킨 뒤였다. ‘정의’ 열풍에 젊은 세대들이 빠진 것을 뒤늦게 알아챈 정치권과 학계는 너도나도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발언은 이런 분위기를 종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공정한 사회’의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특채된 것이 알려졌다. 유 장관의 딸은 외통부 내에서 ‘제3차관’으로까지 불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유 장관은 딸과 함께 외통부를 떠났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의 후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은 신이 나서 외통부에 특채된 인원들의 경력과 채용 경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외통부 전체가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인터넷의 익명 속에서 ‘똥돼지’라고 하는, 무능력한 데도 ‘배경’으로 자리를 얻은 자들을 고발하며 성토하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지자체에서 있었던 ‘특채’에 대해서도 다양한 ‘사실’들을 캐내기 시작했다.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이들은 행정안전부가 ‘고시폐지 및 특채인원 50%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성토했다. 결국 행정안전부도 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한 사회’ 주장하며 분노하는 이들이 처한 현실

    이런 사회적 열풍 속에서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취업 준비하기 바쁜 사람들은 ‘그래, 맞는 이야기야. 지금처럼 살기 힘든 세상에서 부모덕에, 자신의 능력도 없으면서 남들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말이 안돼’라며 언론과 ‘집단’으로 위장한, 익명의 사람들이 몰아붙이는 주장에 공감을 하고 있다.

    반면 지금의 ‘공정한 사회’ 열풍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접근하는 주장은 보기 어렵다. 특히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사건으로 시작된 ‘공정한 사회’ 후폭풍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우선 ‘공정한 사회’를 주장하며, 고시폐지, 특채 인원확대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들 주장의 핵심은 ‘고시제도’가 ‘돈 없고 힘없는 집안 자식들이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과연 현실도 그럴까.

    신림동 고시촌이나 노량진 학원가를 둘러보면 수많은 시험 준비생들이 있다. 일부의 주장에 따르면 신림동 고시촌에만 15만 명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생활을 찬찬히 살펴보면 ‘돈 있는 준비생’과 ‘돈 없는 준비생’으로 확연히 나뉘는 걸 알 수 있다.

    ‘돈 있는 준비생’은 다양한 학원 강의를 여러 번 수강하면서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한다. 영어 과외도 받는다. 헬스클럽에서 체력도 보강한다. 먹는 것 또한 영양을 충분히 고려한 식단으로 섭취한다. 시험 준비생들에 따르면 이렇게 드는 비용이 월 평균 200만 원은 되어야 제대로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돈 없는 준비생’은 주로 지방대를 졸업하거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학원 강의도 최소한의 것만 들으면서 거의 독학한다. 체력 단련은 스스로 맨손체조를 하는 정도다. 장기간의 시험 준비에 필요한 체력을 보강하기 위한 식단이나 휴식은 꿈도 꾸기 어렵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가족에게 손 벌리기 민망해 고시원 총무 등 고시촌 주변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장기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고시촌 또는 학원가 주변의 유흥업소에서 해결하려 한다. 그러다 유흥업소에 푹 빠져 시간을 허비한다. 결국 ‘고시낭인’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각종 고시와 공기업, 언론사, 경찰 및 경찰 간부후보생, 국정원 등에 합격하는 이들은 어떤 준비생일까. 짐작하겠지만 대부분이 ‘돈 있는 준비생’들이다. 그동안 대입 시험에서 문제가 된 사교육이 이제는 ‘기회의 평등’이라고 알려져 있던 고급 공무원 채용시험이나 각종 시험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다는 걸 어떤 언론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고시 준비’화 되어 가는 취업 준비

    이런 분위기는 비단 고급 공무원 선발시험이나 공기업, 경찰, 국정원, 언론사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대기업 취업준비 스터디 그룹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집안에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해외 어학연수, 개인 과외, 각종 스터디에다 공모전 준비를 위해 바쁘다. 고교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일과를 보낸다. 학기 당 500만 원에 육박하는 학비는 부모들이 알아서 해결하기에 본인은 ‘좋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반면 집안에 여유가 없는 학생들은 학교를 계속 다니기 어렵다. 한두 번은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되지만 빚이 쌓여가는 상황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때문에 생활비라도 벌겠다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여기에 시간을 빼앗긴다. 여유 있는 집안 학생들처럼 개인 과외나 어학연수를 가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 ‘차라리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일부 상위권 대학과 국립대를 제외하고는 장학금을 받는 대상이 한 학년 중 10% 미만에 불과하다. 게다가 장학금에는 생활비가 포함돼 있지 않다. 결국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라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고, 공부를 소홀히 하다 보니 성적도 떨어지고, 성적과 ‘스펙’이 나빠 좋은 회사에 지원할 기회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시험 준비생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고시폐지 반대’와 ‘특채’ ‘똥돼지 고발’ 등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까지 들인 비용의 아까움, 한 가지만 파고 든 자신의 노력이 헛되이 될까 하는 두려움, 여기다 그동안 ‘이런 자들’ 때문에 시험 준비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여기에 따른 분노 때문이다.

    나도 혹시 스스로를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보이는가. 지금 인터넷과 시중 여론에서 국민들이 각종 ‘특채’에 분노하는 건 단순한 ‘특채’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문제에 분노하는 것이다.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사회, 그 ‘돈’을 너무도 쉽게 모으는 ‘권력층’, 타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도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부자들, 직원을 채용하면 그 사람의 ‘능력’이나 ‘노동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을 포함한 ‘모든 것’을 돈 주고 샀다고 착각하는 기업주들, ‘돈’으로 사람의 영혼까지 사고 팔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채업자들과 유흥업소 업주들, 그리고 그런 자들의 잘못을 해결해주고 눈 감아 주는 법조계까지 모두가 ‘시스템 에러’들이다.

    이런 ‘에러’를 바로 잡기 위해 그동안 여러 정권이 노력해 왔다. 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그들 내부가 이런 ‘에러’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은 ‘나는 ○○○○○니까 예외’ ‘우리는 □□□□라서 예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우리 사회 시스템의 ‘에러’를 고치려 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모습을 본 일반인과 공무원들이 ‘저 자들만 예외냐, 나도 예외지’라며 따라 했고 결국 ‘Top down’ 형태로 ‘나는 예외’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우리 사회 전반이 ‘에러’로 가득 차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 드러난 ‘에러’만을 지적하는 게 정말 ‘공정’한 것일까.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공정한 사회?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건 부끄러운 일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선진국’은커녕 ‘법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여하튼, 그렇다면 ‘공정한 사회’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법 집행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예외’들 때문에 법 집행이 엉망인 상태다. 오히려 ‘예외’가 되어야 할 사람들은 ‘시범 케이스’로 몰려 불이익을 받고, ‘시범 케이스’가 되어야 할 자들이 ‘예외’가 되는 법률 제도에서는 ‘공공선’은커녕 ‘공정’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이 시민을 폭행한 자들 편을 들며 쉬쉬하는 사회, 불법체류자들이 ‘종교’와 ‘인권’으로 포장된 단체의 비호를 받으며 온갖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은 사회, 미성년자까지 고용해 10여 개의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며 5년 동안 3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40여억 원을 탈세한 자를 구속하려 하자 검찰이 이를 제지하고, 법원에 1억5000만 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는 사회, 무명의 연예인이 성매매에 내몰리다 결국 자살을 한 것으로 의심이 되도 권력과의 관계에 무마되는 사회,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이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면서 큰 소리를 쳐도 경찰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에 국민들은 분노하는 것이다.

    유명환 장관의 사례, 고시폐지 반대 등은 국민들의 그런 분노들이 쌓여 있다 터진 ‘임계점’이라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공정한 사회’를 집권 후반기의 ‘목표’로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공정’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부터 먼저 파악하고, 그동안 이런 ‘불공정’으로 국민들이 고통 받은 것에 대해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것을 이전의 정권들을 대신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경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