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인 교사 백 모(44)씨는 최근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가 그랬지. 키키키. 아냐 쟤가 그런 것 같애. 야! 온다...” 교무실에 갔다가 교실로 오니 학생들 대여섯 명이 모여 키득거리며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수상했다.

  • ▲ 7일 서울시교육청앞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교육권실천행동 등 교육관련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 철회 요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곽노현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계획을 즉시 철회하라며 팻말을 들고 있다.  ⓒ 뉴데일리
    ▲ 7일 서울시교육청앞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교육권실천행동 등 교육관련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 철회 요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곽노현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계획을 즉시 철회하라며 팻말을 들고 있다.  ⓒ 뉴데일리

    백 교사에 의하면 상황은 이렇다.
    떠들던 아이들을 한 아이씩 불러다 무슨 일인가 알아봤다. 카페에 올린 글에 대해 말하며 웃고 떠들었다는 것이다. 카페이름은 ‘백****’.  교사 성을 따서 ‘백** 미친X을 *처럼 씹는다’ 뜻의 줄임말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포함돼 있었다. 카페를 열어 게시판을 보니 온갖욕설로 도배돼 있었다.

    아이들을 처벌하는 게 옳을까 그냥 넘어가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카페를 폐쇄하고 타이르기로 한 것. 함부로 벌을 주었다가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항의가 있지 않을까 걱정에서였다.

    한번은 성적도 상위권인 여학생이 지각도 잦고, 불손해서 불러다 이야기를 하려고 앉혔다.  앉자마자 다리를 꼬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삐딱하게 앉아 있어 할 말을 잊은 적도 있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장난과 치기(稚氣)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어요. 담임을 인터넷 카페에 올려 욕설대상으로 삼을 정도니 평소에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어요?”라며 하소연했다.

    백 교사는 지난 20년간 서울시내에서 근무하다 올 3월 처음으로 강남 학구에 있는 학교로 부임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떨어지는 지역에 근무했을 때, 부모의 관심이 적은 어린이들, 방치된 어린이들도 보았다.

    학교 주변 환경도 잘 정돈되지 않은 곳에 근무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경제수준이나 이른바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하는 강남 지역에 왔으니 학습열도 높고 가정에서 더 많은 인성교육을 받았을 수도 있겠거니 내심 기대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대가 깨지는데 몇 달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 ▲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3층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준비 서울모임 주최로 열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토론회'에서 박경석 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3층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준비 서울모임 주최로 열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토론회'에서 박경석 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수도권의 한 신도시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반 김 모 양이 초등교사 경력 25년인 자신의 이모에게 “선생님인 이모도 걱정된다”며 전해준 사례다.
    김 양에 따르면 반 친구 A양은 평소 화장을 하고 다녀 지적을 많이 받았다. 어느날, 색깔이 도는 화장을 하고 와 담임 교사가 “왜 화장을 했냐”고 나무랐고 학생은 아니라고 우기며 불손하게 맞섰다.

    화가 난 교사가 학생을 복도로 데리고 나간 뒤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교사가 학생에게 엎드리라고 하고 회초리를 들었고. 계속 불손하게 대드는 학생의 뺨을 때렸다. 물론 교사가 학생의 뺨을 때렸다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얼마 되지 않아 학생으로부터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엄마가 교무실로 찾아와 “왜 때렸냐”며 항의했다. “시끄러우니 복도로 나가자”며 교사와 엄마가 나오는데 학생이 쪼르르 달려와서는 엄마에게 하는 말이 “엄마, 나 따귀도 맞았어!”라며 씩씩댔다.

    물론 학생의 엄마는 “뭐라고? 뺨까지 때렸냐”는 식으로 아이 앞에서 강하게 교사를 몰아쳤고 결국 교사의 사과를 받아냈다. ‘체벌의 잘잘못’ 또 해당 교사의 평소 학급 운영 방식이나 개인의 성향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이는 별도의 문제다.
    보호자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니 이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음은 자명해진 것이다.

    이런 말 못할 사연이 교단에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교사들은 전했다.

    욕설카페로 놀란 백 교사는 전근 온 후 선배교사가 한 말을 못 잊는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할까봐 나도 수업시간에 소란피우는 아이들을 섣불리 제지하지 않으니,  백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벌을 주지 마시라고 충고할 때 이해를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년 동안 모범 교사로 인정받았는데도 미친년 욕을 들으니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 했다. 
    백 교사는 “이런 상황에서 잘못을 못 본 척 방치하자니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할 것이고, 나서자니 학생과 학부모가 두렵다. 그냥 학교를 떠나고 싶다”고 탄식했다.

    백 교사는 요즘 큰 걱정이 또 생겼다.
    “학생인권조례도 나온다, 아이들의 지도방법을 달리하라는 등 여러 정책변화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어요. 일부 걱정이 현실화되면 현장에선 큰일이에요.”라고 한숨부터 지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목적은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규율 지키기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대부분이에요. 또 행동에는 책임이, 잘못엔 제재가 따른다는 것도 배워야하는데, 그런 것을 소신있게 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교원 경력 26년째로 서울의 또다른 초등학교의 김 모 교사는 “인권제는 아이들의 사고가 성장한 인격체라고 보는 것이 옳으나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교사가 권위주의로 대하자는 것도 아니다. 학생인권도 좋지만 행동에는 책임이 수반되고, 잘못에는 징계가 따른다는 점도 배워야 한다”며 “선생님의 권위가 떨어지고 위축되는 상황에서 공교육이 제대로 세워지겠느냐”며 최근의 교육계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한 남녀공학 고교 과학부장인 김 모(48)교사는 “조례내용은 정확히 모르나, 아이들은 보호받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지, 학교일을 결정하거나 판단을 할 권리를 갖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한국교총이 전국 초중고 교사 4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가 조례제정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뉴데일리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뉴데일리

    교사들의 우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부모의 항의와 학생들의 반항이 겁나, 수업시간에 대놓고 엎드려 자도 말하기가 겁나요. 떠들어도 제재를 할 엄두가 안나요. 그래서 그냥두면 공교육이 문제라고 할테죠”라며 선생님들의 현실이 이렇게 진퇴양난인데 이런 조례까지 나오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또 한 교사는 “지금도 선생님 교사 목소리보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훨씬 큰 게 학교 현실입니다. 학생들 인권 안 들먹거려도 학생들은 자기의 책임보다 권리를 더 주장하고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교육감이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파악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여러 교사들이 "극히 일부 불미스러운 일을 야기하는 교사도 있지만 그건 다른 차원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8일 서울시교육위원회 교육감 주요시책 업무 보고에서 “일반 시민의 우려가 있다”며 “학생인권조례는 필요하지만 적절한 수위 조절은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