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가 쓴 북한급변사태 시나리오(2)>

     (2) 김정일 통치능력 상실로 인한 불안정한 권력과도기
    북한은 1인자인 김정일 숭배만 인정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김정일 사후 장성택 과도정권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어제 이 글을 올리고 난 후 어떤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변사태 시 북한 각 권력기관들의 움직임이 어떻게 발전하겠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리 남한은 각 기관마다 부여된 업무 독자성이 인정되지만 북한은 일인독재 국가로서 절대 기관 독자성을 주장할 수 없다. 

    북한 기관장들의 직함이란 김정일의 신임을 의미하는 명예직일 뿐. 자유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구조적으로 겹겹히 차단돼 있다. 하여 작은 사안에 대해서까지 당조직부의 제의서, 비준제에 의존하도록 전통화, 제도화 됐기 때문에 그 연장선에서 급변사태 시 모든 권력이동은 기관이 아니라 인물을 따라가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권력변화에 대해 어떤 기관이 어떻게?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에 초점을 맞춰서 봐야 한다.

    요즘 김정일 건강 이상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그런 권력변화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3년, 혹은 5년 이렇게 구체적인 김정일의 잔명 시간표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장성택과 오극렬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한 것은 매우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북한이 80년대 이후 올해 처음으로 당대회를 열겠다고 하는 것으로 봐선 김정일 스스로도 생체적 한계를 인정하고 후계문제에 박차를 가하려는 심사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북한의 3대세습이란 있을 수가 없다. 우선 과거처럼 사회주의 우방국이 전혀 없고, 세습권력 조종 기간도 형편없이 짧다.

    북한 정권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후계명분이란 것도 핵 완성을 근거로 선군업적을 강조하는 것 뿐인데 그것은 국제사회는 물론 중국조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신만 믿고 무한정 따르라고 할 순 없다. 

    현재의 북한이란 배급제가 살아있던 과거처럼 지도부의 잘못을 희석시킬 수 있는 은폐 구조가 아니다. 지도자가 정치를 잘 못하면 바로 시장에 반영되어 물가를 폭등시키는 관통구조이다. 이는 그대로 민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젠 김정일도 후계자에게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봐야 한다. 

    결국 시간에 쫒기는 김씨 부자에겐 권력환경과 조건 문제에 이어 경제난까지 집요하게 압박하며 추격하는 꼴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말하고 싶은 두번째 시나리오, 즉 서둘러 후계정권을 준비하는 불안정한 권력과도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김정일과 후진타오. ⓒ 연합뉴스
    ▲ 김정일과 후진타오. ⓒ 연합뉴스


    다만 김정일이 더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을만큼 통치능력을 상실한 이후인가, 아니면 그 이전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결론은 전자와 후자가 거의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김정일의 권력욕 때문이다. 북한이 올해 당대회를 통해 후계자를 공식화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그렇다고 권력이동 현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김정일은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 받았다기 보다 빼앗았다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이다.
    그는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확립 명목으로 자기 권력인 당조직부 유일지도체제를 구현한 경험자이며 그 당조직부가 어떻게 김일성의 주석권한을 무력화시켰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말년에 주석궁에 거의 갇혀사는 신세나 다름없이 지내다 일반인도 치료가능한 심경근색 응급조치도 받지 못한채 숨진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를 본 김정일이다. 설사 후계자를 지정해도 김정일은 죽는 날까지 권력쏠림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 정책결정은 물론 실무권한도 다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노파심과 병적 열등감에 측근들을 경계하고 혹독하게 다를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이 통치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나서야 모든 정책결정이 과도정부 몫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이나 다름없다. 가장 먼저 김일성의 주석체계와 김정일의 유일당지도체제처럼 완전히 다른 권력분양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를 위해 김정일 건강화면들을 조작해서라도 식물인간 상태를 숨기는 한편 후계자의 영도업적을 단기간 내 최대한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이나 남한에는 단호한 반면 중국의 개혁개방 압력을 받아들여 점진적인 개방 차원에서 신의주, 나진-선봉과 같은 특구개방정책이라는 경제정책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한편 전시 군법질서의 사회적 강요를 위해 당조직부가 갖고 있던 인사권과 행정결정권 중 행정결정권을 부분적으로 국방위원회로 집중하여 명령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내구성을 굳힐 수 있다. 물론 그 모든 영도내막은 장성택의 몫이며 그 과정에 북한 지도부는 장성택파로 구성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장담컨대 장성택정권은 오래 가지 못한다. 북한은 1인자인 김정일 숭배만 인정되는 사회이다. 더욱이 김부자 신격화로 신분사회가 된 북한 관료들의 권위주의는 오랜 직무 경력까지 겹치며 유별나게 강하다. 권력과정에 일어나는 갈등과 견제심리는 김정일의 숨통이 남아있는 한 신의 절대충성으로 둔갑되어 도전할 것이며 이러한 반복은 피의 권력싸움으로 진화될 것이다. 

    여기에 결코 오랫동안 숨길 수 없는 김정일 건강불능 사실까지 외부에 알려진다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자그마한 정책실패들까지도 장성택지도부로 거침없이 쏠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과거엔 있을 수 없었던 여론심리가 형성되면서 민심에 의존한 새로운 젊은 층 권력도 등장할 수 있다. 

    결국 김정일 아들은 자기의 후계 정당성을 입증할 새도 없이 권력 계파간 갈등과 대립의 정중앙에 서게 될 것이며 강력한 통제국가인 북한사회를 크게 뿌리채 흔들 것이다.
  • ▲ 마카오의 김정남.
    ▲ 마카오의 김정남.



    변수는 중국이다.
    북한 권력층 각 계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하지 않는 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은 김정일 신격화를 대신할 만큼 절대적일 것이다. 

    하여 후계자 선정에서도 중국의 입김이 우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북한에서 숨어 살던 은든형 김정은이 아니라 해외경험이 풍부한 개방형 김정남을 권좌에 앉히려 할 수도 있다. 김정남은 전형적인 친중 인물로서 김정일의 쇄국정치를 해외생활로 부정해 온 유일한 글로벌형 왕자이다. 

    현재의 김정일이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중국 정부의 대단한 보호를 받는 그는 장차 북한의 연개소문이 될 수도 있다. 중국으로선 정치성향 파악도 부족하고 나이 어린 김정은에게 북한 과도정권이 떠밀려가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 표면상 김정일의 맏아들이면서도 개혁성향이 뚜렷한 김정남이가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후계자 선정문제는 당분간 북한의 과도정부와 중국 지도부와의 갈등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장성택 지도부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론 중, 러의 대국주의를 배격하고 김정일식 자주정치를 계승하겠다는 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

    정권 담보 대신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제정책변화 현실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즉 충성이권이 아닌 개혁이권으로 얽히고 얽힐 권력사회 추세를 이탈한 지지세력 결집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 권력층은 김정은과 김정남 지지세력으로 갈라서 무장충돌도 벌일 수 있다. 

    때문에 북한 급변사태 중 우리 남한과 국제사회의 개입 여건이 가장 충분한 것은 바로 이 두번째 시나리오이다. 첫번째와 세번째 경우처럼 권력공백에 의한 급변사태들엔 그 누가 권력을 잡든 우리 남한을 철저히 배제시킨다는 전제하에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향후 북한 권력세력들에겐 김정일은 살아서도 독재자지만 죽어도 독재자이다. 그 이름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많은 설득이 필요한 짧은 시간에 권력명분을 가질 수 없으며 더욱이 체제가 바뀔 경우 목숨과 신분에 대한 불투명으로 극좌에서 초극좌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통일독일과 다른 것 중 하나가 동독은 종주국인 구 소련이 포기했지만 북한은 중국이 끝까지 집착하는 한, 권력층들은 저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남한과의 대화를 필사적으로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불안정한 권력 과도기에는 우리 남한이 그나마 단계적인 접근과 시도로 여러 가능성 카드들을 보여줄 수 있는 여력이라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차피 북한의 붕괴는 약속돼 있는데 현재 우리 남한이 통일을 주도할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안정적 관리와 유도, 참여조건을 열어놓을 수 있는 전략도 구체적 행동방향이 어디 있는가? 

    전략이란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인 목표에 근거한 실천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남한은 아직도 고작 북핵수준에 머물러 있고, 여야가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에서 헤매고 있다.
    즉 여러 가능성들에 대비한 사전 심리전과 공작, 포섭, 외교 등 목적있는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고 일관성 없는 정책싸움으로 시간이 주는 기회들을 놓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 고건 전 총리가 대통령직 대행을 하면서 북한 급변사태를 우려하여 밤잠을 못잤다고 했는데 자고 깨면 벌써 달라질 그 상황들에 대해 도대체 어떤 상상과 고심을 했는지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