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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의 '신중 모드'가 계속되고 있다. 어뢰에 의한 외부요인으로 좁혀지면서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죄 지은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앞선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일단 "국제적 신뢰를 얻을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예단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지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결론이 내려진 뒤 이어질 '단호한 대응 방향'을 두고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면서 '물증 확보'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이날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담화에서 "이번 사건을 국가안보차원의 중대한 사태로 인식한다"고 밝힌 것은 정부가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6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문제에 북한이 관련됐다고 바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바라는 사람도 있는데, 이번 사건은 객관적으로 철저하게 확인할 것"이라며 "결론이 나오면 북한이면 북한, 군이면 군 철저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 북한 개입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결론을 근거로 단호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단호한 대응'은 정황상 북한을 겨냥해 검토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소행임을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으로 증명해내는 것을 전제로 가능하다. 이는 정부 대응의 정당성을 마련,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국제조사단과의 공동보고서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내려진다면 군사적 직접 타격 혹은 외교적 압박 등 크게 두가지 대응방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국회에 출석한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미사일이나 장사정포로 도발할 경우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사일이 날아오면 예방조치를 한 뒤, 함정에 대한 공격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발사지점은 분명히 공격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이 전 장관의 '직접 타격' 언급은 좌파 진영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 이같은 직접 타격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제사회의 룰을 어기면서까지 군사적 행동을 취하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다. 무력행사를 금지한 유엔 헌장 2조4항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행위이지만 유엔 헌장은 자위권 차원의 즉각 대응이 아닌 무력 보복행위는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제 막 벗어나려는 시기에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할 때 무력 조치로 인한 후폭풍은 감내할만한 수준을 벗어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대응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짙다.
결국 유엔을 통한 국제적 대응이 현실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 헌장 위반을 근거로 이번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가 국제사회의 대응을 이끌어내는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의 과거 두차례 핵실험 이후 정부가 유엔 제재결의를 추진했던 프로세스를 상정해볼 수 있다.
여기에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별도의 재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방국과 함께 경제 제재 등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이란 것이 전례에 비춰볼 때 실효성을 갖기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응 방식과 파장에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예단은 금물"이라던 미국은 입장의 변화 조짐이 읽힌다. 미국은 북한이 소행임을 가정한 상황을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다. "6자회담 재개는 천안함 침몰사고의 원인이 규명된 이후 추진할 것"이라는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의 발언에 이어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연루됐을 경우 6자회담 재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해온 미국의 정책 방향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16일 "결론이 나오는 단계에서 결론을 근거로 다음 단계를 준비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선규 대변인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것을 결정할 수가 없다"며 거듭 신중을 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