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중대결단' 발언으로 세종시 국민투표 가능성이 정치권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2일 청와대는 "현재로선 검토하지 않고 있다. 국민투표의 '국'자도 얘기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정치권의 지리한 공방 자체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대결단'을 부르고 있는 양상이다. 거듭된 정쟁에 국민들은 피로감마저 느끼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3월말까지 한나라당 중진협의체의 논의를 지켜본 뒤 지지부진할 경우 6월 2일 지방선거 이전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으로 지난 2월 정운찬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결정했다는 일부 언론보도까지 나오면서 관심은 국민투표 실시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2월 둘째주 정 총리의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현재 정치권 구도로는 세종시 수정안이 돼도 문제고 안 돼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국민투표는 지방선거 전에 실시하되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뜻을 밝혔다고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어 문화일보는 보도했다.

    △ 17대 국회가 의결한 세종시 특별법에 대한 18대 국회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성 △ 국회 수정안 처리의 경우 지방선거.차기 총선 및 대선 등 각종 선거에 다시 정치쟁점화할 부작용 △ 그리고 법률 검토 결과 국민투표 실시가 문제없다는 결론이 난 점 등을 세종시 국민투표의 근거로 꼽았다.

    그러나 "사실무근"(청와대) "사실이 아니다"(국무총리실) 등 정부는 완강히 보도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당으로 공이 넘어가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했겠느냐"면서 "민주적 절차라는 것은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다른 생각을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밟고 결론이 내려진 후에는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이 평소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대결단'에 대해서도 "방점은 국민투표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토론해 결론을 내주길 기대하는 것에 있다"고 못박았다.
    그는 "당에서 결론을 내놓기 전에 청와대가 앞장서서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대통령도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역대 국민투표는 모두 6차례 실시됐다.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5차례, 유신헌법에 대한 재신임 형태가 한 번 있었다. 그러나 세종시와 같은 법령을 이유로 국민투표를 실시한 예는 없었다. 때문에 이 사안이 국민투표에 부칠 조건이 되느냐의 문제도 쟁점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국민투표는 지난 1987년 10월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위해 실시됐다. 이 제6공화국 헌법 확정에 대한 국민투표는 78.2%의 투표율에 93.1%가 찬성했다. 나머지 헌법개정에 대한 1962년(이하 찬성률 78.8%), 1969년(65.1%), 1972년(91.5%), 1980년(91.6%)에 실시한 국민투표에서는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비난여론에 대항하는 성격을 가졌던 1975년 유신헌법 존속여부에 대한 국민투표에서는 투표율 79.8%, 찬성률 78%를 기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중간평가'를 내걸었지만 실현되지 않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말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집권 3년차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다분히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라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여도 야도 부담스러운 결정이라는 의미다. 청와대도 국민투표가 '마지막' 고려대상일 수는 있지만 국회 논의를 충분히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기본 입장이다. 여당내 친이계에서도 "아직 논의나 검토할 시기가 아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23년만의 국민투표 제안은 그 순간부터 모든 사회 현안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 3.1절 기념사에서 '국민 통합'을 강조한 이 대통령이 극심한 국론분열 과정을 치러내야 하는 국민투표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중대 결단을 내릴 순간이라는 분석이 엇갈린다. 국민투표 제안 여부는 전적으로 이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