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반란 '헤어스프레이'

숏다리에 뚱뚱한 몸매, 게다가 이 아이 동그랗게 만 앞머리에 한껏 부풀린 우스꽝스러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며 최신 트렌드라고 하고 다닌다. 요즘말로 '루저'에나 속할 법한 트레이시 (박경림 권소현 김민영 트리플 캐스팅)는 절대 기죽는 법이 없다. 아니 도리어 '주제도 모르는지' 언감생심 볼티모어 최고의 댄싱퀸 '미스 헤어스프레이'를 꿈꾸고 있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곡도 버릴 수 없는 OST다. 첫 장면에서 트레이시가 잠을 깨며 부르는 Good Morning Baltimore (굿모닝 볼티모어)는 10대 소녀같은 통통 튀는 음색과 멜로디로 시작한다. I can hear the bell(종소리 들려)도 상큼함을 더해준다. 형형 색색 옷을 입고 나와 신나는 디스코 리듬에 맞춰 춤추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진다. 극 후반부에 관객석 통로를 통해 나타나는 배우들의 깜짝 등장도 관객을 위한 서비스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형형색색의 화려한 무대를 구성함으로써 10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비컬(1988년 존 워터스 감독의 동명 영화가 원작)이 그렇듯 헤어스프레이 역시 원작의 한계는 못 넘을 듯하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뮤지컬임은 확실하지만 전형적인 스타마케팅의 아쉬움을 남겼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좋은 뮤지컬 음악에 비해 작품에서 주연의 활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트레이드마크로 가진 박경림은 연신 터지지 않는 목소리를 내 답답한 느낌을 줬고 김민영 역시 목소리는 좋지만 호흡 조절이 약해 불안했다.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역을 맡은 개그맨 문천식은 대표적 예다. 뮤지컬 첫 도전인 그는 개그맨 출신답게 적절한 애드리브와 맛깔나는 대사로 관객에게 재미는 주지만 뮤지컬의 중요 요소인 보컬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뮤지컬 배우로서 그의 음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저음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문천식은 음이 내려가지 않아 소화하기 벅차다는 느낌을 준다. 또 지나친 현대적 대사 남발은 자칫하면 극의 몰입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듯 했다.

트레이시의 아버지 윌버 역을 맡은 배우 이인철 역시 마찬가지. 무르익은 공연 중간에 문천식과 즉흥 만담을 구사할 정도로 관록은 있으나, 그의 성의 없는 안무를 보고 있자면 연습부족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엔딩부분에서 전체 배우가 나와 공연을 선보이는 장면에서는 안무를 못 따라가 혼자만 눈에 띌 정도다.

그나마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가 주연급 배우의 모자란 연기를 상쇄시켜준다는 게 위안이다. 앰버의 엄마이자 왕년의 미스볼티모어였던 벨마 역의 황현정은 연신 '꽃게아가씨~'를 연발하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으로 극중 감초 역할을 한다. 모터마우스의 역의 태국희 역시 저음의 폭발적 가창력을 통해 흑인 고유 음색을 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또 코니 콜린스 역의 배우 박송권은 카리스마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주연급에서 눈에 띄는 배우로는 꽃미남 링크 역을 맡은 정동화가 있다. 그는 극중 '우린 인연이야'(it takes two)라는 곡에서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가창력을 보인다. 그는 이 곡에서 한국적 요소를 가미해 꺾어지는 트로트 창법을 구사했는데 미국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 녹음보다 더 끈적한 노래를 선보인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역할인 링크를 표현하기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커튼콜에서도 그는 손으로 머리를 빗어 내리며 관객에게 능청스러운 답례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여학생 관객들의 환호가 터진다.

제작 신시컴퍼니. 2010년 2월7일까지 공연, 4만~8만원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