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대가 외롭게 느껴지는 것은 시선 탓이다. 등대의 시선을 바다를 향한다. 텅 빈 밤바다일수록 등대는 외롭다. 7년을 등대로 지낸 사람들이 있다. 언제 온다는 보장도 없는 배를 기다리며 두 사람은 등대가 되어 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7월 31일 배 한 척이 이들이 바라보던 바다에 나타났다. 그리고 기다리던 소식 하나를 꺼냈다. 거기엔 국가유공자 상이등급 7급에 판정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기다림의 세월은 참 모질었다. 보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당당하게 싸운 것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어쩌면 당연한 ‘인정’을 받는데 7년이 걸렸다. 무려 7년이나. 잊지 못 할 장면은 전역을 두 달 앞두고 일어났다.

    고경락, 김면주 두 사람은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참수리 357정의 승무원이었다. 2002년 6월29일 NLL을 넘어선 북한 함정은 갑자기 포격을 해왔다. 김대중 정권의 ‘교전수칙’에 묶인 참수리 357정은 기습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동료들이 쓰러져갔다. 그들도 북한 함포 파편을 맞았다. 고경락 씨는 병기병, 김면주 씨는 기관병이었다. 부정장 이희완 대위의 오른 다리가 적탄에 잘려나가는 모습도 지켜봤다. 전역 선물로 해군 반바지를 선물한 박동혁 의무병이 끝내 나뒹구는 것도 눈물로 지켜보며 싸워야 했다.

  • ▲ 참수리 357정. ⓒ 뉴데일리
    ▲ 참수리 357정. ⓒ 뉴데일리

    아픔을 안고 이들은 전역을 했다. 하지만 사회는 더 큰 상처를 그들에게 선물했다. 손발 묶인 채 한 싸움, 그래도 적에게 큰 타격을 입혔는데 패잔병처럼 쳐다보고 수군거렸다. 아예 전쟁놀이 하다 온 사람처럼 취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동료들을 보내고 살아남은 이의 아픔을 아는가?
    전우들은 밤이면 꿈에서 “살려달라”고 신음했다. 함께 열심히 싸웠지만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은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괴롭히던 피의 현장과 포탄 소리, 총알 나르는 소리는 차라리 지옥이었다.

    불면증은 그들을 하루 3~4시간 토막잠만 허락했다. 몸무게가 10㎏ 이상씩 빠지고 가깝던 친구들은 “군대 다녀오더니 성격이 날카로워졌다”며 대화를 꺼렸다.

    학업을 마친 고씨는 경북 구미에서 힘겹게 일자리를 잡았다. 김씨도 안양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 됐지만 몸도 마음도 아팠다. 의사는 부상 후유증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의 전투를 외면하고 정당히 평가하지 않으려는 세상과는 맞서고 싶었다. 그래서 당당히 대한민국 해군으로서의 긍지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고민 끝에 낸 국가유공자 신청은 단 5분 만에 심사가 끝났다. 보훈병원 심사관은 “유공자가 많아지면 나라 세금만 쏟아져 나가게 된다”고 그 자리에서 각하시켰다.

    군에서 생긴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이 생긴 사람도 국가유공자가 되는데, 실제 전투를 겪은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은 “모든 것을 다 집어치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과 동료들이 희생해 지킨 NLL마저 평가절하 하는 대통령을 둔 나라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올해까지 두 사람은 각각 4번과 3번째 국가유공자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날(7월 31일) 결국은 7급 판정을 받아냈다. 이들은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아직 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전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은 전우들의 노력도 가감 없이 바르게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 중엔 몸에 8개의 파편이 박힌 채로 살아가고 있는 김승환 씨도 포함돼 있다. 김택중 씨는 전공인 토목과의 진로도 접어야 했다. 토목과는 건설현장에서 활동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몸에 박힌 파편 4개가 지장이 될까봐 꿈을 접었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말이 쉽지, 7년이라니.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빈 바다를 바라보는 등대로 서있다. 기다리는 배는 언제나 올지….